국회 산자위 인사청문회서 대리전으로 여·야 진땀
적격 vs 부적격 병기해 20일 경과보고서 최종 채택

[이투뉴스] 한 부처의 장관 후보라면 세세한 수치까지 꿸 순 없지만 최소한의 관련 지식이나 식견 정도는 갖춰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비교적 평이한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 잦았고, 아예 동문서답으로 질문자를 황당케 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얘기다. 백 후보는 대내외에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로 알려졌으나 산자위 의원들과의 논쟁에서 맥없이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산업 무역 통상 등 산업부 비(非)에너지 분야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 수준의 안목을 드러냈다. 외부 교수 출신으로 인사 청문회 준비과정이나 현장에서 기본적인 주무부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날 백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문회 개의와 함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청문회장 의석 모니터에 ‘무자격 인사’, ‘국민무시’, ‘5대 원칙훼손’ 등의 피켓을 붙여 놓고 백 후보가 의원실 자료요청에 불성실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최연혜 의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로 검증자료가 전혀 없다. 국민들이 후보 자질을 검증할 수 있도록 자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개인정보법을 이유로 안하고 있다. 청문회가 깜깜이가 될 수 있다”고 항의했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과 손금주 같은당 의원도 후보자 병역면제 의혹 등에 반박 근거 자료의 신속한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백 후보는 오전 중으로 최대한 조속히 요구자료를 제출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런 뒤에야 야당의원 자리에서 피켓이 물려졌다.

이어진 후보자 모두발언에서 백 후보는 탈원전 에너지정책 추진을 시사했다. 백 후보는 “안전성과 환경 우려가 있는 원전과 석탄발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고, 대신 청정에너지인 신재생과 가스기반 전력공급을 늘리겠다”면서 “특히 미래 청정에너지인 신재생은 경제성 개선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발전비중을 확대하고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해 신산업을 새 먹거리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는 공급 못지 않게 수요 측에서 낭비를 줄이는 게 중요한 만큼 ICT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요관리로 저탄소·고효율 에너지 구조로 전환하고, 에너지정책은 국민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탈원전 등 에너지믹스 전환은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충분논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힘없는 발언은 미리준비한 원고를 읽는 모두발언까지였다. 백 후보의 답변은 의원들의 본질문 시작과 동시에 기계음처럼 간명해졌다.

백 후보는 정운천 바른정당 의원이 “대통령이 원전 중단 지시했나. 38개월간 진행된 원전 공사(신고리 5,6호기)를 그리 급하게 중단 지시한 게 옳은 일이냐”고 따져 묻자 “정부가 공론화 위원회의 민주적 절차를 밟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이 재차 “중국서 20기 가동하면 우리만 해결한다고 되겠나. 뭐가 그리 급해 졸속으로 했나. 중국과 교류해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자 “일련의 절차가 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논전만 피했다. 하지만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2년 전력정책심의회 위원 활동 이력이 경력에서 누락된 것과 심의회 대면회의에 모두 불참한 사실을 거론하자 “죄송하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물러섰다. 김 의원은 “책임감도, 소신도, 전문성도 없다”고 각을 세웠다. 그러자 홍의랑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가 발전하면서 시대정신이 있다.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야하는데 속도는 논의해봐야 한다”며 후보자 견해를 물었고 백 후보는 “정확한 지적이다. 동감한다”고만 짧게 답했다.

야당측 공세는 의도적인 병역면제 의혹 대목에서 강도를 높였다.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학 때 취미가 테니스라고 기재돼 있던데, 무릎 수술 후에도 잘 쳤다는 얘기”냐고 추궁했다. 또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은 “87년 가로수 추돌사고 있었다 하는데 차수리 내역도 없고, 파열 가능성이 있어 수술했다고 하는데 사고기록이 없다. (청와대)인사시스템 가동시킨 사람들이 병역의혹이 있는 사람을 보내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으나 백 후보는 머뭇거릴 뿐 즉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의원은 “후보자는 문 대통령 위해서라도 국무위원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몰아붙였고, 백 후보는 “병역의무를 못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은 수술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새 정부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놓고는 여야가 찬반 양론으로 갈려 대리전을 치르다시피 했다. 백 후보는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신고리 5,6호기 중단은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국무회의서 문제제기 하고 (주형환)장관은 아무말도 안했다. 직무유기 아니냐”고 견해를 묻자 “제가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이에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탈원전 정책이 한국만의 사례가 아님을 강조하며 “미국은 원전을 2050년 11%까지 줄인다. 원전 천국 프랑스도 2026년 50%로 줄인다”고 했고, 같은당 김경수 의원도 “전 세계적으로 원전 비중과 발전량이 줄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는 원전 17기 폐쇄를 결정했다. 결국 원전은 생존과 안전권 문제다. 신고리 5,6호기 3개월 중단은 매몰비용 중단을 위한 조치다”라며 후보자 견해를 물었다. 백 후보는 “공감합니다”라고만 단답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 핵폐기물과 폐로 기술은 어느정도냐”고 물은 뒤 “선진국 대비 80% 수준”이란 답변을 나오자마자 “제가 말씀드리겠다. 최소 10만년 정도 격리시키는 방법밖에 없고 안전 담보 안된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아무 기술도 없다”며 후보 대신 야당 측에 맞불을 놨다. 반면 백 후보는 계속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수준의 답변을 반복했고, 결국 “전문가가 맞습니까?”란 핀잔을 듣어야 했다. 이에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통상 부문 질의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후보를 겨냥해 “산업부는 분야가 다양하고 난마처럼 얽혀 있고 통상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나무랐고,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은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오랫동안 연구만했고, 폭넓게 산업부 관장하기엔 벅차보인다”고 촌평했다.

논쟁이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겨갔으나 ‘에너지전문가’란 수식도 무색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재생에너지 한계가 있고, 원자력은 에너지안보와 깊은 관계가 있는데 에너지포트폴리오를 없앤다 하니 문제다. 반대편 얘기는 안듣냐”라고 따져묻자 “각층의 전문가와 경청하면서 듣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또 최연혜 의원이 “5년간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하고 원전을 2080년까지 가동한다는데 그럼 이 정부의 에너지믹스는 목표가 어떻게 되고 어떻게 가는거냐”는 묻자 “공약대로 신규 안 짓고”라며 말을 흐렸다. 질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동문서답식 답변에 야당 의원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신고리 5,6호기 영구정지 시 보상주체가 누구냐는 질의에 백 후보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될 사안”이라고 반복 답변하자 “그게 아니고, 보상주체가 누구냐고. 빨리 답변해. 답변해 보세요”라고 윽박지르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보다못한 장병완 위원장이 행정법상 최종결정은 정부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란 취지로 설명했고, 그제야 백 후보는 “공론화 위원회 결정을 존중해서 (산업부가) 진행하도록 하겠다”는 보완 답변을 내놨다. 김규환 의원은 “주무부처 수장으로 주체를 갖고 소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보면 모든 것이 우유부단한 표현이어서 대한민국의 에너지와 FTA 모든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백 후보는 “조직에서 많이 경청하겠다. 실국장 책임 아래 운영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연혜 의원은 “학자로서는 몰라도 한나라의 에너지정책 등 굉장히 중요한 역할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내내 답변에서 균형감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국회 산자위는 20일 백운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에는 적격 의견과 부적격 의견이 병기됐다.

일부 청문위원들은 백 후보자에 대해 "신상, 도덕성과 관련해 후보자가 교수 재직 시 총장의 허가 없이 사외이사를 지낸 것에 대해 지적하자 이를 인정하고, 수용했다"며 "병역면제와 관련해 수술 결과 연골 파열 사실이 치료기록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자와 특정기업과의 유착으로 이해충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으나 산학협력의 일환이고, 후보자가 장관 수행 중에는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한 만큼 중대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적격 의견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청문위원들은 "백 후보자는 교원인사규정을 위반해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교통사고에 따른 수술로 인한 군 면제와 관련한 요구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았다"며 "모친의 국민임대주택 자격과 관련한 소득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또한 "통상업무 경험이 전혀 없어 통상 협상을 이끌 역량이 있는지 우려된다“면서 ”후보자가 산자부 장관으로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부적격 의견을 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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