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 상승시 제품가 상승은 中의 5배

서울 증산동에서 의류부속을 생산하는 소규모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형(53ㆍ기업가) 사장은 “월말 정산 때만 되면 장부를 정리하다 신경질이 난다”고 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은 점차 줄어드는데 기름값은 되레 매년 올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란 불평이다.

 

이사장의 회사는 현재 거래처 납품을 위해 배송차량 2대를 운행하면서 매달 100여만원의 고정적 유류비를 지출한다. 또 사내 사무실과 현장 냉ㆍ난방을 위해 약 50여만원(등유), 프레스 기계 등 각종 섬유설비를 가동하는데 40여만원의 전기료를 지불한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운영경비(유류비 등)가 100만원 안팎이었는데 요즘은 200만원을 넘기는 때도 많다”면서 “기름값이 올랐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지만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기는 어제오늘의 얘기도, 이사장만의 고민도 아닌 듯하다. 최근 한 중소기업 사장은 고유가와 원자재난에 시달리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의 선택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가상승이 전체 산업에 끼치는 악영향은 당연한 결과라지만 이처럼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유독 유가상승에 취약한 이유는 뭘까.

 

최근 이 같은 궁금증을 일부 해소해주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산업연구원 한기주 박사팀은 7일 ‘국제에너지 가격변동이 국내제조업에 미치는 영향분석’이란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제조업과 유가상승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 제품 생산가격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였으며 다음으로 일본과 중국 순이었다.

 

유가가 지난해보다 10%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산업분야의 제품 생산가 상승은 우리나라가 0.76%인 반면 일본이 0.17%, 중국이 0.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나라별 산업구조와 생산여건에 따라 상대적이긴 하나 수치로만 보자면 똑같이 유가가 상승해도 우리나라가 중국의 5배가 넘는 부담을 받는다는 결과다.

 

제조업 업종별로는 석유화학분야가 총 생산비 기준 9.7%가 상승하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금속광물 산업도 0.94%가 상승해 유가상승에 취약한 업종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서 예시된 이사장의 회사처럼 섬유 및 의류, 목재ㆍ펄프 등의 제조업도 유가상승에 취약한 주요업종으로 분류됐다.

 

한기주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중국이 우리보다 고유가의 영향을 덜 받는 것은 중국이 에너지 총 소비 가운데 석탄의 비율이 68.9%로 높고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아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연구원은 “석유화학 등 제조업 가운데서도 부가가치 비중이 큰 산업은 에너지 효율이 개선됐지만 섬유나 목재, 인쇄ㆍ출판 등 상대적으로 경기가 부진했던 산업들의 에너지효율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고 지적하면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비중을 낮추고 효율이 악화돼 온 산업분야에 정책적 노력이 기울여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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