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産·學·硏 "시장 근간 흔드는 근시안적 접근" 크게 우려
불가피 허용 시 해외개발량 비례 할당 또는 계통접속제 전면개선 필요

▲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내 한전 본사

[이투뉴스] “가뜩이나 RPS 제도가 공기업과 대기업 중심 시장을 만들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한전 진입까지 허용해 이 판을 아예 ‘그들만의 잔칫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다면서 이런 식으로 생태계를 왜곡하면, 문재인 정부가 얘기하는 에너지전환은 반쪽짜리 전환에 불과할 거다.” (T사 사업개발담당 프로젝트 매니저)

새 정부와 20대 국회가 한전 발전사업 진출을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에 대해 사실상 우호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법개정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해 산·학·연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지금은 득(得) 보다 실(失)이 클 한전 발전사업 허가를 밀어붙일 때가 아니라 에너지전환 과정의 공공부문 역할 재설정과 건전한 시장 생태계 조성을 고민할 때란 지적이다.

전력·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일부 여·야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법률안을 통해 논의되고 있는 한전 발전사업 허가는 당사자인 한전은 물론 이전까지 줄곧 반대입장을 고수해 온 산업통상자원부까지 동조하는 상황이다. 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19대 국회서 같은 안을 놓고 반대논리를 펴던 산업부가 쏙 들어갔다.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되레 힘을 실고 있다”고 전했다.

정가 소식에 밝은 공기업 국회담당도 “찬성이냐 반대냐 논의를 지나 한전 사업을 어디까지 허용해 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까지 간 것으로 안다”면서 “한전이 탈핵·탈석탄으로 어수선해진 정국을 법개정 명분을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는데 성공한 것이나 나름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그동안 여론추이를 관망하던 산·학·연은 "당정이 재생에너지 보급수치에 매몰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발전과 송전이 분리된 상황에서 계통사업자가 발전 일부를 담당한다는 건 망(網)분리라는 전력산업 원칙과 근간을 흔드는 근시안적 접근”이라며 “지금도 한전은 단일 구매자로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고 심지어 발전사 수익까지 결정하는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앞으로 한전에게 발전부터 유통, 판매까지 모두 쥐어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과거 정부나 국회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한전이 신재생만 발전·판매 겸업을 허용해 달라고 해도 극구 반대한 거다. 한전은 망만 갖고 있는 게 맞다”면서 “발전사업 허가로 얻을 수 있는 득보다 실이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당장 재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재생에너지 산업계도 '당정의 성급한 접근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전의 발전사업 허가 추진은 명분도 실리도 불분명한 탁상행정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

T사 재생에너지 사업개발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전의 논리는 중소기업이 손을 못대는 수십MW급 대형사업만 하겠다는 것인데, 어차피 전력계통은 수용량이 한정돼 한전이 수십MW를 선점하면 자잘한 kW급부터 MW급 사업 수십~수백개가 날아간다”면서 “한 마디로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내수시장서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걸 정부가 조장하는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에너지전환 속도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막연한 계획입지나 한전 발전사업허가 같은 무리수를 자꾸 양산한다는 느낌”이라면서 “잘못된 정책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일은 개혁적 새 정책 추진보다 더 어렵고 오래 걸린다. 거국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한전이 자체 사업 후보지라며 공공연히 계통접속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학계도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 업계 중 풍력설비 제조사들은 한전 사업진출 시 계통연계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내심 개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신재생 관련학회 B 임원은 “풍력설비회사를 제외한 대부분 산업계와 학계가 한전 참여를 반시장적 형태로 생각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며 “한전은 자사가 진입하면 계통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다른 민간사업자의 진입을 저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전이 숙원을 성취하더라도 그에 따른 불공정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B 임원은 “모기업이라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한전 산하 6개 발전자회사들도 내심 다 반대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전은 신재생 직접 사업 말고도 할 일이 많다. 향후 거리에 비례해 송전원가를 제대로 회수하는 일부터 바로잡으면 발전원 분산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굳이 한전에 재생에너지 보급에 대한 일정 역할을 부여한다면 해외 개발물량에 비례해 국내 개발 할당량을 주는 방안이 합리적이란 주장도 나온다.

C 컨설팅기업 대표이사는 “한전이 해외서 새로 개발한 신재생 발전사업 용량만큼을 국내 사업용량으로 허용해 주고, 지분투자는 별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일정량만 인정해 주면 된다”면서 “이대로는 우물 안에서 제살 파먹기 경쟁밖에 안된다. 신재생은 늘지 몰라도 공기업이나 대기업만 살아남는, 에너지전환 본래 취지와 다른 구조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C 대표는 “지금 정부가 가장 오판하고 있는 부분은 자본과 인력,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아 신재생 보급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민간섹터는 모든 것이 완비된 상태다. 공기업 중심 RPS가 왜 여지껏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하지 못했는지, 그 안의 비효율과 부조리는 무엇인지, 시장교란 행위는 없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참에 재생에너지 계통접속 제도자체를 선진국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계통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과 민간사업자의 정보비대칭이 논란의 소지인만큼 아예 한전에 모든 신재생사업의 계통접속 의무를 부여하면 불공정 시비도 사라지고 보급량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유럽국가 다수는 발전사업자가 일단 발전소를 건설하면 송전망사업자가 사회적 비용으로 계통접속을 무조건 책임지는 슈퍼셸로우(Super shallow) 접속제를 도입해 풍력 등 대용량 전원을 확보했다"면서 "발전소를 짓고 접속선로를 책임지는 우리 형태로는 보급에 한계가 있고 논란소지도 있다. 에너지전환 초기에 고려해 볼만한 제도"라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한전 시장진입이 불가피하다면 계획입지나 지자체 확보 부지 참여는 반드시 배제해야 하며, 재생에너지 사업분야는 명확히 요금과 회계에서 분리해 성과나 손실을 한전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무분별한 투자와 소비자 부담 전가를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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