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영 국회환경포럼 정책실장,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석면은 내화성ㆍ단열성ㆍ내구성ㆍ절연성ㆍ유연성이 뛰어나 슬레이트를 비롯한 건물 실내 칸막이용 밤라이트 등 건축자재(82%),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및 패드 등 자동차 부품(11%), 섬유제품(5%), 기타(2%) 등 다양한 용도로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쓰이고 있으며, 그 제품 수만도 3000여 종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석면을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였다. 각종 역학조사에 따르면 석면은 약 30년이란 잠복기를 통해서 체내에 축적되어 폐암ㆍ악성 중피종ㆍ석면폐 - 모두 직업성 암에 해당 - 등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죽음의 물질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매년 3,500명이 석면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계하고 있으며, 호주는 2020년까지 18,0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96년 미국에서는 사망진단서로 확인된 석면에 의한 악성 중피종은 510명에 이르고, 이로 인한 연간 직업성 암에 의한 손실비용은 40?1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보고되었다. 일본은 한 석면 건축자재 생산업체 근로자 79명이 석면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간 것을 계기로 2008년 전면 사용 금지 계획을 2006년 9월로 앞당기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백석면에 비해서 유해성이 높은 청석면 및 갈석면 제품을 제외한 백석면 - 전 세계 석면 생산량 가운데 99%에 해당됨 - 제품은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치명적인 유해성 때문에 이미 1980?90년대를 전후로 사용을 금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석면에 노출된 근로자와 일반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사후 관리를 위해 범정부적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행정력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모든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석면 제품에 석면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석면 폐기물은 적정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건물 해체ㆍ철거 등 석면 관련 일용 근로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석면 관리 실태는 어떤가? 현재 제조ㆍ수입ㆍ사용ㆍ해체ㆍ철거ㆍ폐기 등 석면의 생애주기(life-cycle)에 대한 관리의 난맥상으로 인해 때와 곳을 가리지 않은 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우선 석면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다. 예컨대 주요 관련 법령상의 소관 부처를 살펴보면, 수입 관련 업무는 관세청, 건물 멸실 신고는 건설교통부, 공산품 자재는 산업자원부, 석면제품의 제조 공장과 해체ㆍ철거 과정의 노동자 안전은 노동부, 그리고 폐기물은 환경부다. 

 

특히 건축법에 따라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건물의 - 사실상 대부분의 건물이 해당 - 해체ㆍ철거ㆍ멸실ㆍ증축ㆍ개축ㆍ대수선의 경우에는 시ㆍ군ㆍ구에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의무조항이 아니다 보니 처벌규정도 없다. 따라서 이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석면 함유 건물을 해체ㆍ철거할 수 있는 업체의 자격요건에 대한 규정이 없다 보니, 관련규정을 무시하고 철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작업자에 대한 사후 건강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석면 업무 취급 3년 이상의 이직ㆍ재직 근로자에 대해 건강관리수첩 발급 및 매년 무료 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폐기물관리법에는 지정석면폐기물과 일반석면폐기물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지정석면폐기물에 대한 처리시설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에 있어 법규대로 처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석면분석전문기관 및 공정시험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어 시험분석 데이터에 대한 신뢰문제는 물론 부정확한 시험데이터 발표로 인한 사회적ㆍ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는 석면관리의 난맥상과 법적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2년 전에 환경부 주관으로 정부ㆍ산업계ㆍ시민단체ㆍ전문가 등으로 ‘석면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몇 차례 워크숍을 개최하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최근에 노동부는 ‘근로자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석면 관리대책’을 발표하고 금년 상반기까지 관련 부처와 협조하여 석면함유 건물의 멸실 신고의 의무화와 처벌규정 마련, 석면전문분석기관 및 석면 함유 건물 해체ㆍ철거업체 등록제 실시를 위한 관련 규정 제정 등 대대적인 제도정비를 단행하겠다는 점을 밝혔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석면 정책의 실효성을 증진하기 위한 토의 및 자문을 위해 시민단체ㆍ전문가ㆍ관련업계(지하철, 철거업체 등)ㆍ산업안전관리공단 직원 등으로 ‘태스크 포스 팀’을 구성하여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이처럼 의욕을 갖고 석면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평가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와 노동부가 마치 따로 가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어 제대로 된 대책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원만하게 추진될지 걱정이다. 문제의 해법은 환경부와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야만 법적 인프라 구축은 물론 제도의 시행에 따른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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