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관치경영', 정유사는 '해바라기경영'
유류세 올바른 이해 필요

▲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

[이투뉴스] 지난달 석유시장 발전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는 국내 정유사가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국내 정유사는 표면적으로만 민영화가 된 것이지, 아직 알맹이는 국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소신있는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 그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더 들어 봤다. 그는 현재 국내 석유산업 전반이 엉망진창이라고 한탄했고,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 '국내 정유사는 국가 의존적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정유사 경영에 대해 간섭하는 정부가 일차적인 문제다. 민영화가 진행된지 30여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정유사 윗선의 문제다. 민영기업으로 독자적인 생존전략을 찾아야 하지만, 정부에 의존하는 마인드가 아직 있는 듯하다. 진정한 독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정부는 정유사를 컨트롤하려는 '관치경영'을, 국내 정유사는 정부에 의존하는 '해바라기경영'을 하고 있다.

양쪽 다 이 사실을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우린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고, 정유사는 정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 탓만 하고 있다. '닭이 먼저다 달걀이 먼저다' 식으로 상대에게 책임만 미루고 있는 형국이다.

알뜰주유소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하나.

알뜰주유소가 바로 대표적인 정부의 관치정책이다. 알뜰주유소, 전자상거래. 이런 것들은 다른 분야에서는 말도 꺼낼 수 없는 정책이다. 현재 알뜰주유소는 겉으로는 입찰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산업부가 정유사 기름을 뺏어다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알뜰주유소 2부 시장의 경우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물량을 끌어다 쓰면서 알뜰주유소라는 다른 상표로 출고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만들었는데, 상표를 떼고 다른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떻게 가능하냐? 산업부가 가운데서 압박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 이에 대해 명백한 '상표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것은 정유사가 크게 반발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버젓이 내 상표가 있는데, 상표를 포기하고 팔아라? 심각한 상표권 위반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왜 아무 말도 없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왜 본인의 상표권을 지키려 하지 않느냐고 정유사에게 수차례 의견을 전달했었다. 하지만 힘들다는 것도 사실 잘 알고 있다. 좀 전에 말한 '해바라기경영' 또는 '관치경영'이 문제되는 이유다. 

이 상표권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크게 문제가 된다. 소비자는 알뜰주유소라는 브랜드명을 보고 제품을 구매했지만, 사실 안에 내용물은 4사 정유사 제품 중 하나다. 돈을 지불하면서도 어디 물건인지 모르고 사는 셈이다. 

또 상표를 뗐으니 정유사에서는 책임을 미루기 쉽고, 책임이 없는 제품의 품질은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소비자는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출처가 불분명한 제품, 어디서 만든 것인지 정확히 모르는 물건을 어느 누가 믿고 살까. '알뜰주유소는 찝찝하다'라는 이미지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유사 이미지는 어떤가. '담합'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이도 많다.

국내 정유산업은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그래서 태동 당시 정유사 수는 소수였고, 그 틀이 유지돼 오늘날의 정유 4사 구조가 됐다. 그렇게 소수 정유사 구조가 수십년 지속됐으니 담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가까운 일본은 작은 규모의 정유사가 20여개나 있다. 나라 전체 정제능력은 일본이 하루 360만배럴, 우리가 323만배럴로 거의 비슷한데 말이다.

그럼 일본 정유사들은 경쟁이 심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석유라는 제품은 인화성, 폭발성이 있기 때문에 운송이 어렵고 그 비용도 많이 든다. 저장의 문제도 있다. 그래서 각자의 구역을 나눠 가지면서 소화하는 시장 형태가 된다. 예를 들어 화장지를 만들어서 파는 기업은 만약 서울에서 만들었다면 부산·제주 각지에 운송해서 판매할 수 있겠지만, 석유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어쨌든 정유사가 소수인만큼 정부가 제도적으로 막아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현재 정유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반대로 규모가 큰 국내 정유사의 장점은 없나? 

우리는 정유사 하나하나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고, 전 세계에 경유·항공유·휘발유 등을 판매하는 수출 강국이 됐다. 실제 올 상반기 국내 수출품목을 보면 '석유화학제품'이 4위, '석유제품'이 7위를 기록했다. 이 둘을 합치면 1위인 '반도체' 판매 금액와 비슷하고, 심지어 2011~2012년 고유가 시절에는 '석유제품' 하나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반도체, 조선, 핸드폰, 디스플레이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석유제품은 아직 그 그룹에 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유사와 언론은 석유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같은 의미로 산업부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을 묶어서 수출품목 순위를 매겨야 한다. 같은 산업군이기 때문에 합치는데 문제가 없고, 그래야 홍보 효과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 [who is] 1954년생으로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과 석사 과정을, 코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이론화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재 유류세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국내 석유 유통구조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한국은 물 1리터가 석유 1리터보다 비싼 나라'라고 하겠다. 너무 단순하게 비교하긴 했지만 어쨌든 물 값은 상대적으로 비싸고, 석유 값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됐다. 제주도, 강원도에서 퍼오는 물이 중동에서 한 달에 걸쳐 넘어오는 석유보다 비쌀 순 없다.

- 석유 값이 싸다? 그럼 국민들이 '석유값은 비싸다'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됐다는 얘긴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유류세 때문에 석유 값이 비싸다'라고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오피넷을 보면 휘발유 1리터 세전 가격은 500~600원 선이다. 생수는 1리터에 세전 600~800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본래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싸다. 그러니까 500~600원에서 출발해 800~900원의 유류세가 붙고, 유통마진 100원 가량이 붙어 우리가 아는 1500원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유류세는 DJ 정부 때 왕창 올랐다.

여기서 더 기가 막힌 건 이런 유류세가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작 주유를 하고 영수증을 보면 부가가치세만 달랑 적혀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교육세, 주행세 등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은 유류세임에도 알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러니 소비자는 기름 값이 비싸다고 항상 불만을 터트린다. 1500원을 다 정유사가 가지고 가는 줄 아니까. 실상은 정부 몫이 절반 이상이다. 이것은 정부가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정부의 거짓말이다. 

실제 과거 고유가 시절 이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정유사가 이에 대해 요구를 한 적 있는데, 산업부가 칼같이 잘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다시 '관치경영', '해바라기경영' 얘기로 돌아온다. 

-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어떻게 해야하나.

국내 석유산업은 한반도를 지탱하고 있다. 석유산업은 독자적으로 떨어져 있지도 않고 모든 산업의 밑바닥에 얽혀 있다. 그러니까 정부는 석유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제대로 인정하고, 제대로 보호·육성해야 한다. 여기서의 보호는 지금의 '관치경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업계가 투명경영을 하도록 유도하고, 시장 감독을 훨씬 더 잘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일을 주고 이익을 챙겨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도 석유산업에 대해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석유산업은 공해산업이 맞지만 결코 없어질 순 없다. 단순히 '석유 값은 비싸다'라는 일차원적인 생각만 가지고는 신뢰를 쌓아가기 어렵다.

정유사가 관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눈치를 보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김동훈 기자 donggr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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