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인 핵융합연구센터 소장

카다라쉬 부르스

프랑스 남동 지중해 연안에 항구도시인 마르세유(Marseille)가 있고 그 서북쪽에 예쁜 시골도시 카다라쉬(Cadarache)가 있다. 제법 큰 강이 흐르고 바위산들이 키가 큰 소나무들을 껴 안고 바둑돌처럼 솟아 있어 풍치가 매우 수려하다. 여기에는 예전부터 프랑스 원자력청의 카다라쉬 분소가 들어와 있었고 군사적인 목적의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두꺼운 철조망으로 허리를 감았다.


2006년 초부터 이 곳에 낯선 이방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유럽연합(EU)과 우리나라 그리고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가 이 곳에 합심해서 규모가 제법 큰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하기로 하고 일부 부지가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ITER는 2030년 부근에 핵융합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6개 국가와 유럽연합이 회원국으로 참여하여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건설하는 공동 실험장치다. 50억 유로 달러의 건설비가 회원국들에게 분담되었고 건설기간은 무려 10년이나 된다. 이 국제 공동 과학기술프로그램에 따라 먼저 7명의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카다라쉬에 파견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약 40명의 추가인원이 여기에 파견될 예정으로 있다.

 

금년 1월에 파견자 가족들의 생활환경 여건을 조사 분석하였다. 물론 앞으로 파견될 우리 사람들의 가족들을 위한 일이었다. 가족 모두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외국어로는 영어권에 속해있는 우리가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생활해야 하는 주변의 프랑스 사람들, 관청이나 병원 그리고 학교 행정직원들까지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높은 물가를 지적하였다. 가족들이 임대할 수 있는 주택이 한정되어 있어서 각 국의 파견자 수가 늘수록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다. 자동차의 구매가격도 우리나라보다 많이 비싸고 휘발유 값도 더 높았다. 우리의 일상 감정에 크게 차이가 있는 괴리는 공공기관의 행정처리속도다. 우리처럼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6개월 이상 걸리는 거주허가증이나 거주허가증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는 자동차면허증도 불평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없고 김치나 고추 가루와 같은 우리 고유의 식료품이나 재료를 구매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생활비의 증액 요인이 되었다.

 

한국 부르스는?

얼마 전 언론에 ‘한국에 R&D 센터 짓기 너무 힘들어’ 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한국정부가 R&D 허브를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생활 환경이 외국인들에게 매우 불편하고 법적인 지원도 없어 외국기관의 연구센터를 유치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로 열거된 내용들을 살펴보니 생활지역이나 항구 등지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언어문제, 한국자동차면허증을 획득해야 하고 본국 면허증을 운전시험장에 보관해야 하는 제도문제, 대표이사와 등기 임원이 필요한 한국식 연구소 설립 행정절차 복잡성 문제, 국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일, 높은 물가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입국한 외국인들이 우리는 익숙해서 전혀 불편하게 느끼고 있지 못하는 생활조건에 적응하지 못해 귀국한다는 내용도 당혹스러웠지만 그 내용이 카다라쉬에 파견되어 있는 우리 과학기술자의 가족들이 느끼고 있는 어려움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더욱 더 당혹스러웠다.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는 모양이다. 기술개발의 국제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연구환경보다도 생활환경의 세계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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