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예고 없이 한전 본사로 들이닥친 MB의 노기에 관료들과 발전사 사장들은 사색이 됐다. 순환정전 이튿날(2011년 9월 16일)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돌아가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얘기하라는 지시에 고해성사가 시작됐다. 한전은 단전을 미리 알리지 못했다고, 전력거래소는 늦더위 수요를 제대로 예측 못했다고, 발전사들은 하필 이때 정비를 했다고 각각 자아비판했다. MB는 그래도 분이 덜 풀렸던지 “여러분 수준은 형편없다”며 한참 더 독설을 퍼부은 뒤 돌아갔다. 이후 정전 책임을 지고 지경부 장·차관이 옷을 벗었고, 전력당국 인사 17명도 징계처분을 받았다. 앞서 국제유가 고공행진 때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료 조정을 미룬 건 그들이 아니다. 전기가 1차 에너지보다 저렴한데 수요가 쏠리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기료 인상 최종결정은 대통령 몫이다.

그럼에도 MB정부는 생각을 바꾸지 읺았다. 수요가 늘면 그보다 공급을 더 늘리면 된다고 봤다. 이듬해말 6차 전력수급계획에 석탄화력 12기 10.7GW, LNG 6기 5GW 등 무려 15.8GW의 새 발전소 건설계획을 허가했다.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원전 수용성이 떨어지자 급한대로 석탄을 대안으로 앞세웠다. 원전증설을 대놓고 재개한 건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바통을 넘겨받고서다. 신고리 5,6호기 등 계획원전 6기(15GW) 건설을 기정사실화 한 뒤 7차 수급계획에 2기를 추가로 얹었다. 전국이 토목공사장이 됐고, 곳곳에서 발전소·송전탑 갈등이 불거졌다. 정부는 "그래도 모자란 것보다 낫다"고 했다. 하지만 전력수요(연평균 증가율 기준)는 2012년부터 이미 예측치를 벗어나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원전·석탄에 가스발전만 천덕꾸러기가 됐다.

MB정부의 정책유산은 상당부분 불가역성이 확인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석탄 비중이 역대 최대값을 기록할 공산이 크다. 전기공학상 전기가 남아도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돌지 않는 발전소는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원전·석탄이 아니라 정부가 비중을 늘리겠다는 가스발전이 멈추고 재생에너지 경제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경제급전 원칙을 따르는 전력시장 제도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은 한 안전·환경을 만족시키는 에너지전환은 요원하다. 게다가 현 정부는 임기내 전기료 상승은 없다고 이미 실언했다. 추가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국민동의가 있어도 쉽지 않은 게 에너지전환이다. 혈액(전력공급력)이 충분한 지금이 낡은 제도를 수술대에 올릴 적기다. 이런 여건을 만든것도 MB정부라니 아이러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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