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영 국회환경포럼 정책실장 /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1998년 12월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는 ‘EU 자동차협회(ACEA)’와 자동차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하여「신차로부터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의 핵심은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교토의정서에서 할당한 제1단계 의무감축 기간이 시작되는 2008년까지 킬로미터 당 1995년 수준(186g) 대비 25%를 감축한 140g 목표를 달성하고, 2012년까지 120g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자발적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의무감축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본 협약이 여타 국가의 자동차 업계에 미칠 파장은 매우 큰 것이었다. 문제는 ACEA가 이처럼 자발적 협정을 맺는 전제 조건으로 EU 회원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과 일본 업계에도 자신들과 동일한 이산화탄소 감축을 요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에 EC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에 협상을 요구하였고, KAMA는 1999년 6월 11일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감축 이행에 관한 자발적 협약서를 제출하였다. 협약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치를 ACEA와 동일하게 하되, 감축 목표 년도를 1년씩 유예시키고, EU 역내에서 새로 판매되는 승용차 전체 평균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본 협약서의 특징은 1차년도 감축 목표량(140g) 달성 연도를 2009년으로 했지만, KAMA는 2000년 이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120g/km 모델을 출시하고, 교토의정서상 제1차 공약기간이 끝나는 2012년에 120g을 추가로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서 1999년 7월에는 EC와 일본자동차공업협회(JAMA)가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이것의 핵심은 2009년까지 EU 회원국에 수출하는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킬로미터 당 140g까지 낮추기로 한 것이다. 대형 승용차를 많이 수출하는 JAMA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내용이었다. 

 

그런데 2007년 2월 7일 EU는 자발적 협약 시행 1년을 앞두고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당초 120g으로 줄이는 것을 130g으로 줄인다는 다소 완화된 내용을 포함한 법안을 금년 12월 말 공식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발의되면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EC와 ACEA가 1998년도에 맺은 자발적 협약의 기준보다는 다소 완화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EU가 법적 규제 장치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자동차 업계의 부담 강도는 자발적 협약 당시보다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에 대해서 EU 자동차 업계는 감축목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차량 1대당 평균 3천 유로의 추가 비용이 소요되는 등 높은 비용 증대로 공장폐쇄와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국가들의 자동차 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EU 역내 국가로 수출되는 우리 업계의 자동차 가운데 약 85%가 승용차란 점에서, 우리나라는 EU 국가들보다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이번 EU의 발표에 대해서 환경단체들은 업계의 로비에 밀려 당초 120g에서 130g으로 완화시켰다고 비난했다. EU 순회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차량 배출가스 감축 법규는 대형 승용차 생산업체를 고사시킬 법안이라며 반대하였고, 페어호이겐 집행위원도 제동을 걸었던 것이 사실다. 따라서 향후 환경단체들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스타브로스 디마스 EU 환경담당 집행위원이 ‘EU는 자동차 배출 이산화탄소를 줄이지 않고서는 교토의정서에 따른 의무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밝힌 점으로 봐도, 갈수록 규제 수준이 강화될 것이 확실하다. 

 

앞으로 국제사회는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포함하여 자국의 환경문제 해결과 업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EU라는 강력한 집단의 힘을 이용하거나, 미국과 같은 단일 초강대국의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무역보복과 같은 국내법적 수단을 최대한 발동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EU의 협약서 체결에 이어서 법적 장치 마련까지 자국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더욱 노골적으로 동원할 것이 확실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제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대체연료 자동차 개발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할 것이다. 이번 EU 발표를 계기로 정부와 자동차 업계가 긴밀히 협력하여 자동차 산업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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