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중개사업·에너지프로슈머 등 관련법 개정 막혀 표류·좌초
보조금 등 시장왜곡 지양…전체 시장 비용하락·유연성 제공 기대

▲ 분산전원에 대한 개인 간 거래를 가능토록 해주는 영국 피클로사의 p2p(개인간 거래) 전력거래 플랫폼 홈페이지

[이투뉴스] #1 2016년 10월 전력거래소는 K-MEG 등 소규모 전력중개사업 추진을 위해 6개 시범사업자를 선정했다. 시범사업은 전력거래소, 중개사업자, 소규모 전력자원사업자 간 모의중개 거래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년 넘게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2 2016년 3월 경기도 수원시 솔대마을에서는 4개 가구가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사고 파는 에너지 프로슈머 시범마을 사업에 참여했다. 주택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된 2가구가 동일 변압기 내에 있는 다른 2가구에 전력을 판매, 생산·소비자 양측 모두 각각 연간 약 36만원, 약14만4000원 가량 전기요금 절감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이후 같은 해 5월에 동일 배전망 이내 학교 및 빌딩 등 대형 프로슈머 시장을 조성하려 했으나 참여가구가 30여 가구에 그쳤다.

두 사업은 개인과 개인 간 전력을 생산·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모두 현재 용두사미(龍頭蛇尾)격인 상황에 놓여있다. #1은 전력소매판매에 대한 전기사업법 개정이, #2는 동일 변압기 또는 배전망 내 거래라는 물리적인 한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제기됐다.

정부는 2016년 1월 소규모 분산전원(풍력·태양광)에 한정해 발전·판매의 겸업을 허용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및 하위 지침(소규모 신재생에너지발전전력 거래에 관한 지침)등의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분산전원 거래를 통해 에너지 프로슈머를 양성, 신규 비즈니스 발굴 등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법안 개정을 할 예정이었다.

당시 계획에는 전력판매시장 개방으로 개인 간 전력 생산·판매 허용, 태양광·풍력 등 소규모 분산자원의 중개시장 개설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만 2년이 되는 현 시점까지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력시장 부분 개방에 대한 찬반은 여전히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산업계나 에너지벤처기업들은 전력의 직접 판매와 자율적인 가격 조정 등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환영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전력공사 등 일부에선 판매 독점권한 상실에 따른 업무범위 축소를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시 반대 측에 있는 전국전력노동조합 성명서에 따르면 이윤추구가 최고 목적인 민간사업자들의 전력시장 진입은 자칫 기업의 전력인프라 독점이나 업체 간 담합을 통한 전기요금 폭등 등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공공성 측면에선 공기업인 한전이 주도적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토록 제도·정책적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실제 유럽국가 중 일부에서는 전력을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몇몇 대기업이 전력공급을 주도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전력시장 개방에 따른 우려는 기우(杞憂)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행 공공이 주도하는 시장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공기업 독점영역인 소매전력시장을 미국, 일본, 유럽처럼 개방해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 전력산업 전체의 효율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전력시장을 개방한 프랑스의 EDF나 일본의 광역계통운영기관 OCCTO, 영국의 NGC등 전력망 감시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도 정부가 오랫동안 투자해온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 역시 현행 고정적인 전력요금체계에선 구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능형전력망은 전력수요에 실시간 반응해 적정수준의 전력을 효율적으로 공급, 전력인프라에 대한 과잉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분산자원 중 하나인 신재생에너지도 발전계획 수립단계에서 적확한 반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주도의 전력수요예측 및 전력가격책정방식만으로 이러한 속응성 전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확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생산처와

전문가들은 한전에서 배전·판매를 독점하고, 한국전력거래소가 가격책정을 하는 현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력을 팔 수 있는 대상이 한곳이고, 일방적으로 거래소가 경제급전 중심의 가격을 정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탄생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 독일 지붕 태양광시스템의 연도별 평균 가격 추이

소규모 신재생 전력거래 통한 연쇄적인 수용성 증진
현재처럼 동일 변압기나 배전망 범위로 생산자와 수요자 간 거래를 제한하거나 소규모 분산전원을 대상으로 한 발전·판매 겸업을 허용하지 않고 가격결정권도 없을 경우, 시장 원리에 따른 친환경 전원 확대는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게 학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친환경 전기를 의도적으로 구매하길 원하는 수요자의 접근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현재 보조금 형식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여건을 탈피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업자와 수요자의 유입을 가능케 해줄 시장이 형성되려면, 민간 주도의 신재생 전력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우선 조성돼야 한다.

특히 한국은 대규모 발전용 재생에너지설비 중심으로 시장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가 많은 역할을 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 값싼 전기요금에 기반한 낮은 수준의 전력시장가격(SMP)과 RPS라는 지원제도만으로 성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주택, 빌딩, 공장을 비롯해 도심지역의 건축물에 설치되는 소규모(자가용) 재생에너지 보급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은 편이다. 물론 보조금 형태나 태양광 대여사업 등 지원제도가 존재하나 상대적으로 발전용이나 타에너지원 대비 규모가 작아 현행 일괄적인 전기요금 체계 변화에 수익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력시장에서 시민 참여가 가능한 규모의 에너지생산자가 운신할만한 폭이 상대적으로 작다.

물론 보조금이나 기타 금전적인 측면에서 경제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가령 값비싼 태양광 생산전력을 판매하고, 한전에서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를 끌어다 쓰는 일종의 변칙적 운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전환이라 말하기 어렵다. 결국 어떤 보조금이나 금전적 지원을 제하고 왜곡 없는 시장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게 최선이다.

이러한 소규모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전체 에너지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 한 연구용역자료에 따르면 에너지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태양광전기를 사용하는 가정과 기업은 십수년 안에 에너지비용이 고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를 제공할 수 있고 변동하는 에너지가격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 독일의 태양광시스템 가격은 불과 8년만에 약 75%가 감소했다.

또 더 많은 소비자가 자가소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에너지협동조합이나 공동구매프로그램,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태양광 대여사업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발굴될 수 있다. 에너지공급자간 차별성으로 최종소비자는 에너지 선택권이 주어지고, 시민사회 참여 등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수 있게 되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믹스 전환이 이뤄진다.

가령 타 에너지원 대비 상대적으로 공급가격이 비싸더라도 재생에너지 설비로 스스로 전력을 생산해본 주민의 경우 에너지전환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 신재생 전력을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 전반의 에너지전환이 궁극적으로 주민 자신에게 환경이나 수익 측면에서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구입하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주민 간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용성이 늘어난다. 대규모 재생에너지에 대한 입지제약이나 지역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이러한 분산전원의 확대는 전력시스템 전반에 유연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 전력저장이나 스마트기기, 소비자와 좀더 유연한 전기구매계약 등 솔루션 개발이 가능하다. 이런 솔루션은 전력망 운영자에게도 혼잡 및 병목 문제를 감소시키고, 부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종국에는 자가소비 증가로 전기요금 절감과 비용경쟁력 있는 태양광 및 에너지저장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자율적인 전력시장 내에서 주민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생산·소비를 확대해야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또한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에 매몰돼있는 원전해체비용이나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비용을 추가할 경우 비용 측면에서 재생에너지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뿐 아니라 전체 에너지시장도 비용 측면에서 건전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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