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빅터 차 보좌관 주역중 하나로 부각

북·미 베를린 회동에서 시작돼 2.13 북핵 합의로 마무리된 미국의 외교과정이 2.13 합의 후 조금씩 미 언론에 흘러나오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4일 미 정부 관계자들 말을 인용, 지난달 17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쿠웨이트를 방문한 후 귀로에 베를린을 들러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양자회동이 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만난 게 전환점이었다고 전했다.

 

힐 차관보는 김부상과 회동에서 북한이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내용을 적은 한쪽 자리 메모를 라이스 장관에게 넘겨줬으며 라이스 장관은 처음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이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이것을 토대로 계속 진행할까요”라고 물었고 부시 대통령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이후 과정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보는 전환점은 다르다. 그는 방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에서 자신이 강한 어조로 핵무장한 북한은 미국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의 문제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게 북핵의 전환점이라고 동료에게 말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베를린 회동 자체의 성사 과정에 대해선, 지난해 12월 베이징(北京) 공항에서 빅터 차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우연히 조우한 것을 비롯해 북한 사람들과 비공식 대화들을 가진 것”이 베를린 북미 회동으로 이어졌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한 미 외교관이 당시 크리스마스 직전 6자회담을 마치고 귀국하기에 앞서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조용히 방문,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북한 계좌에 대한 동결을 해제할 수도 있다며 북·미 양자회동을 제안한 게 베를린 회동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외교관’이라고 했으나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 내용을 감안하면 빅터 차 보좌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럴 경우 국무부 소속이 아닌 백악관 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측이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6자회담이 아무 성과없이 끝났음에도 김계관 부상이 한국측 천영우 수석대표에게 미국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인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14일 기자회견에서 2.13 합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초기조치 가운데 1,2단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꿰고 있음을 설명함으로써 이번 북핵 외교에 직접, 세밀한 부분까지 개입했음을 방증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초기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 합의된 중유 100만t 분의 지원을 돈으로 환산하면 4억달러라고 보도했다.

 

한편 2.13 북핵 합의 과정의 미국측 주역중 한 사람으로 미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빅터 차 보좌관은 한국계로서 이른바 ‘매파 포용정책(Hawk engagement)’을 주장해온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매파 포용정책이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말리지 않기 위해 강압 수단이 수반된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으로 당근과 채찍 병행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입장은 전통적인 포용정책도 아니지만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북 무시 전략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대북 정책을 “북한을 무조건 돕는 게 아니라 대북 징벌을 위한 한 단계가 될 수 있으며 국제연대를 위해서도 가장 실용적 방안”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조지타운대 교수로 있던 중 2기 부시 행정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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