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관리원 오창 석유기술연구소를 가다
국내 최대, 최고 분석능력으로 연중 시험 분석

▲ 석유기술연구소에서 분석 대기중인 시료캔.

[이투뉴스] 실험실 문을 열어 제치자 독한 휘발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실험실 연구원은 "매일 맡다보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냄새가) 난다"며 비커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꽃집에서 꽃향기가 나듯, 이곳에서 석유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모든 유류제품의 품질을 판별하는 충북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 한국석유관리원 석유기술연구소라서다.

지난달 19일 방문한 석유기술연구소는 3만㎡(약 9000평) 규모에 225종, 300여대의 첨단 분석장비를 보유한 국내 최고 석유 종합 연구기관이다. 현재 40여명의 연구인력이 석유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있다. 일반 연료를 비롯해 각종 첨가제와 대체연료, 촉매제까지 취급·분석하는 일종의 석유제품 출생 증명소다.

▲ 연구소는 석유제품 품질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 종합에너지연구소를 꿈꾸다
2000년대 초반 석유업계는 세녹스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세녹스 제조업자들은 세녹스가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등을 적게 배출하는 친환경연료이며 환경부에서 인정한 연료라고 홍보했다. 소비자 역시 리터당 300원 가량 저렴한 가격을 외면하기 힘들었고, 결국 세녹스 열풍으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세녹스는 대체에너지'란 주장을 반박하는데 애를 먹었다. 

하종한 석유기술연구소장은 국내 자료가 부족해 해외 자료로 이를 대응했는데, 힘이 부쳤다고 회고했다. 유사 석유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와 인력도 없었다. 이에 석유제품 물성(物性)만이 아니라 성능검사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분석장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를 계기로 2006년 8월 연구소가 설립됐다. 

▲각종 윤활유도 연구소에서 검사한다.

휘발유, 경유와 같은 석유제품만 이곳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차량에 사용되는 윤활유, 첨가제, 촉매제 검사도 연구소 몫이다. 또 운행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인증시험과 건설기계 배출가스 인증시험, 자동차 에너지소비효율 측정시험도 담당한다. 이같은 검사·시험기관 경력을 바탕으로 석유제품 표준화 노력에도 힘써 현재 석유제품 및 윤활유 분야 325종의 표준 개발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석유 종합 연구기관이라 자랑하는 이유다.

이처럼 석유 관련 제품 전반을 중점연구하는 기관은 해외에서도 드물다. 통상 해외는 휘발유, 경유, 윤활유 등을 각각 다른 연구소에서 다룬다. 

▲ 옥탄가 시험기(octane number tester). 

자체 매출로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충당하고 있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연구소는 용역과제, 의뢰시험, 인증시험 등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수익으로 2016년부터 2년째 연간 매출액 50억원을 기록했다. 하종한 소장은 "신성철 석유관리원 이사장이 2007년 이곳에 있었는데, 그때 수립한 중장기 전략이 연구소 매출액 50억원"이라면서 "매출액으로 추가 장비를 구입할 형편은 못되므로 향후 연구소 예산이 추가 확보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종합에너지연구소로의 위상강화를 꿈꾸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성능 시험분야에도 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수소차 시대에 대비해 최근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에도 가입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수소차가 아무리 부산물로 수증기만 나온다 해도 미량의 다른물질을 배출할 텐데,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 하 소장의 포부다.

물론 본연의 임무인 석유연구는 기본이다. 화석연료 이용이 점차 감소하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2050년까지는 석유가 주력 수송에너지의 지위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견해다. 하 소장은 "과거 우리나라는 오직 안정적인 석유 수급만을 위해 달려왔지만, 이제 석유시장은 얼마나 효율이 최대 관건이 됐다"면서 "정유사와 협업을 통해 원유 정밀 분석과 같은 기초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전기차 시장에서 앞서고 있지만 동시에 내연기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연구사업 외 소비자 의뢰 업무정책 업무도 수행
연구소는 종합시험센터, 석유대체연료팀, 석유에너지팀, 성능연구팀 등 4개 부서로 구성돼 있다. 종합시험센터는 소비자가 의뢰한 연료를 시험하고 품질검사를 수행하는 곳이다.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액화석유가스와 같은 석유제품은 물론 대체연료유, 윤활유, 그리스 등 석유 관련 전 제품을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석유 첨가제를 만들었다면, 시장 유통에 앞서 반드시 이곳 연구소에서 품질을 증명해야 한다. 더러 폐유와 항공유도 분석 의뢰가 들어온다고 한다.

의뢰분석은 온라인신청-시료송부-분석-성적서 발급 순으로 이뤄진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의뢰 업무는 연간 1만여건에 달한다. 본사와 지방 10개 본부를 통틀어 가장 큰 부서임에도 항상 분주한 이유다. 석유관리원은 향후 각 지방본부 의뢰 업무를 분할해 특화한다는 방침이다. 윤활유 회사가 몰려 있는 영남권에선 영남본부가 윤활유 의뢰 업무를 도맡는 식이다.

해외기관 대비 저렴한 수수료도 연구소만의 장점이다. 김종렬 종합시험센터장은 "이 사업은 수익 창출이 아닌 업체 애로사항 해소 차원에서 시작했다"면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고객들이 많아서 전화 업무도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토양오염 조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석유관리원은 환경부 지정 국내 유일 석유에너지 전문 토양 관련 전문기관이다. 유류탱크는 5년마다 정기 토양검사를 실시해야 하며, 설치 15년 이후에는 2년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주유소 폐업 시에도 의무적으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 의뢰 업무 절차.

석유대체연료팀은 부서명대로 석유대체연료를 연구하는 부서다. 석유관리원은 녹색성장 실현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5조에 따르면, 석유대체연료는 바이오디젤연료유, 바이오에탄올연료유, 석탄액화연료유, 천연역청유, 유화연료유, 가스액화연료유, 디메틸에테르연료유(DME), 바이오가스연료유 등 8가지다. 

석유대체연료팀은 새 석유제품 연구에 참여해 상용화를 지원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연료 의무혼합제도(RFS) 역시 주 업무 중 하나다. 올해부터 RFS 혼합률은 종전보다 0.5%P 상향된 3.0%다. 연료팀은 이와 관련한 법령 개정이나 품질 기준안 등 정책 관련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 자동차 연비·배출가스 측정하는 차량동력계

▲ 차량동력계 위에서 차량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회색 호스를 통해 배출가스가 포집된다.  차량 앞 파란색 냉각팬으로 엔진 과열을 막는다.

"차대동력계 장비는 매우 고가다. 단품 하나만 10억원 하는 것도 있고, 세트를 구성하려면 30억~40억원 정도 든다. 이 건물 전체 가격은 한 100억원쯤 될까. 하지만 철판으로 연결돼 있어 이동에만 몇달이 소요될거다. 그래서 우린 도둑이 와도 걱정하지 않는다.(웃음)" 

김기호 성능연구팀장이 부서 장비를 소개하며 이같은 농담을 건넸다. 연구소 성능평가동 차대동력계는 실제 차량에 연료를 주유한 뒤 차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연구하는 곳이다. 출력과 연비, 배출가스를 실시간 측정한다. 가짜 석유가 차량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바이오디젤을 넣었을 때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분석한다.

검사는 실제 도로주행과 유사한 조건을 부여하기 위해 가감속을 반복한다. 모의 도로주행이 끝나면 배기구에 연결된 회색 튜브로 배출가스가 옮겨지고, 이를 포집기에 모아 연비를 측정한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테인(메탄),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5가지를 분석한다. 휘발유 1리터에 들어있는 탄소량이 일정하므로 배출된 배기가스량을 통해 연료 소비량을 파악하는 원리다.

동력계가 모든 차량을 검사하는 것은 아니다. 3.5톤 미만 가솔린, 디젤, LPG, 천연가스 사용 자동차 및 하이브리드차만 대상이다. 그 이상은 바로 옆 엔진동력계가 담당한다. 하루 3~4대 가량을 실험한다고 한다.

▲ 차량동력계 실험실은 스튜디오처럼 생겼다.

<오창=김동훈 기자 donggri@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