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석탄화력 정부 방침 놓고 주민·단체간 대립

▲ 원전 주변지역 주민단체 관계자들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 한전 남서울본부 대강당에서 고성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투뉴스] 원전 주변지역서 상경한 ‘○○발전협의회’, ‘○○번영회’ 등의 주민단체 대표들은 “탈원전 반대”, “월성 1호기 폐쇄 반대!”라고 적힌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르고 시종 고함을 질렀고, 다른편에선 원전 반대단체가 “남아도는 전력설비, 핵발전소 건설 즉각 중단하라”, “탈핵 없는 기만적 8차 전력수급계획 다시 수립하라” 등의 현수막과 구호로 맞섰다.

그런가하면 석탄화력 조기착공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지역의 절박한 현실을 이해하고 염원을 저버리지 않은 정부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같은 지역 또 다른 주민들은 “발전소 주변 인구만 4만5000명, 전체 인구의 65%다. 이미 우리지역은 다른 발전소와 시멘트공장으로 미세먼지가 포화상태”라고 열변을 토했다.

새 정부의 첫 장기 전력정책계획인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한전 남서울본부 안팎에서 28일 연출된 풍경이다. 이날 오전 예정된 공청회를 앞두고 일찍이 행사장과 지하철역 주변은 전세버스를 동원해 상경한 주민들로 붐볐다. 여기에 각 단체가 건물외곽서 잇따라 회견을 갖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경찰은 1개 중대 규모 의경을 건물 정문 등 주요 출입구에 배치, 인터넷을 통해 사전 방청신청을 하고 입장권을 받은 250여명에 한해 공청회장 출입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 행사장 진입을 통제 당한 일부 주민과 경찰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고, 일부 주민은 공청회장 진입 후에도 작심한 듯 한동안 욕설 섞인 고성으로 행사진행을 저지했다.

특히 일부 원전인근 주민은 의자에 올라서 “이 공청회 무효야. 무효!”, “전력수급이 잘못가고 있어. 태양광이니 풍력이니, 당신들은 전기 쓰지마!”, “원자력이 그렇게 위험하면 다 세우란 말이야”라며 험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청경과 주최 측이 이를 제지하자 한층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시작된 공청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박원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인사말을 통해 “이 자리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다시 실험하는 자리다.오신분들의 절절한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어진 전력거래소 발표와 각 전문가 워킹그룹 전문가 발언도 이들의 고함소리에 묻혔다. 박 실장은 인사말 후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사전질의와 현장질의는 같은사안에 놓고도 극단으로 갈렸다. 사전질의에서 한 시민은 “석탄화력 감축 없이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에너지전환을 위해 기저발전을 축소해야 하는데, 삼척화력은 그대로 가지 않냐”고 지적했다. 이에 조영탁 한밭대 교수(설비분과장)는 “사업자 얘기로는 주민들 유치가 압도적이었다. 이미 들어간 투자금도 많고 LNG전환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감축은 고민이 많은데, 신규설비라 그런 부분은(저감능력이) 탁월하다”고 답했다.

반면 삼척시번영회 측은 삼척화력 건설 시 송전선로 신규 건설로 동해권에서 밀양수준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계통분과장)는 “삼척화력을 짓지 않아도 기존 신한울 1,2호기와 삼척그린파워로 송전선이 필요한 상황인데,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765kV를 HVDC로 바꾸면 지중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삼척시번영회는 이후 현장질의에서도 “인구 7만의 삼척은 발전소 지역 5km 반경에 GS 2기, 삼척그린파워 2기, 동해화력 1기 등이 있고, 거기에 시멘트공장이 2곳이나 있다. 오늘은 공청회가 아니라 토론회로 해야 한다. 삼척 포스파워는 하루 1640톤의 연료를 때고 온배수가 시간당 32만톤이 나온다. 1년에 70만명이 오는 맹방해면이 완전 유실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원전도 8차 전력계획 조치가 미흡하다는 쪽과 과도하다는 쪽으로 양분됐다. 울진군 관계자와 환경운동연합, 영덕원전반대 측은 탈원전로드맵 반영과 전체 원전기수 추가 축소를 촉구했고, 기존 원전 인근 지역주민 대표들은 조기폐로 방침 철회와 원전 대안경제 대책을 주문했다.

영덕발전소반대범국민연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최초 수급계획을 총평하자면, 후보시절 공약 파기를 위한 꼼수로 밖에 안 보인다. 탈원전을 선언했으나 탈원전이 아니"라면서 "더 빠른 탈핵을 위해 퇴임전에 진짜 핵발전소가 축소되는 탈핵으로 가야한다. 이런 식이면 (찬핵‧반핵)양쪽에서 다 얻어맞는다. 힘들지만 똑바로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월성원전 주민은 “40여년전 지역주민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원전을)건설하고 2012년 수명이 만료돼 2015년 계속운전 협의 시 정말 위험하다고 반대했는데 동의해 달래서 1310억원의 상생합의금을 받고 진행한거다. 그런데 느닷없이 올해 대통령이 후보시절 폐쇄공약 하나로 폐쇄한단다. 이제와 위험해 폐쇄한다는 건 뭐냐. 월성 1호기 정상가동을 희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울진 원전 찬성 측 주민협의회 관계자는 “김대중 정권서 강제로 해놓고, 어느 날 갑자기 탈원전 한다고 지역주민들 의견도 들어보지 않았다. 오죽하면 새벽밥을 먹고 여기 왔겠냐"면서 "우린 눈만 뜨면 핵연료 저장된 돔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뭐가 겁난다는 거냐”고 역정을 냈다.

또 다른 원전지역 주민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정부 정책이 신뢰를 받으려면 관련법규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방식이면)어떻게 국민이 신뢰하겠나. 40년간 정부서 일방적으로 강요 당한 원전 주변지역주민이 먹고 살 대안이 필요하다. 원전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한 희생을 탈핵이란 이름으로 강요할 때 지역주민의 삶은 누가 보장하냐”고 성토했다.

전력수급계획 인‧허가 사항은 아니지만 풍력발전단지 난개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일호 영양희망 사무국장은 “지금 영양군에 풍력 66기가 이미 가동중인데 20기가 추가 공사중이고 11기는 공사중단 상태다. 이 상황에 앞으로도 전기위원회 허가가 떨어진 것이 30기와 18기"라며 "영양군이 아무리 산이 많지만 이런 밑에서 어떻게 살고 송전선로는 어쩌나. 지역 고충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 하나로 허가를 내주면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청회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도 개선해 지난 40년간 주민들 입막음하던 것을 어떻게 바꿀지, 대안적 경제는 어떻게 만들지 등이 같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공청회의 경우 인원을 제안하고 2시간만에 끝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해외 원안위의 경우 3~6개월전에 (안건을)주고, 최소 2~3주간 논의한다. 새 정부라면 다음부터 분야별로 심도 있게 검토하고 이런 공청회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뼈아픈 지적에 산업부 당국자는 고개를 숙였다. 최우석 전력산업과장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현실에 와닿는 지역이야기와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국가적으로보면 합리적이지만 지역에선 모순일 수 있고,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 에너지정책이 이렇게 국민 및 산업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그동안 행정편의적으로 많은 시간을 내 얘기를 듣지 못한 것을 거듭 반성한다”면서 “8차 전력수급은 이제 시작이다. 이번을 계기로 좀 더 경청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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