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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배만 불리는 ESS시장
배터리 공급 부족으로 자금력 부족한 中企 울상
KT 등 대기업이 대·중·소 ESS 시공입찰 싹쓸이
  [484호] 2018년 01월 29일 (월) 08:00:43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이투뉴스]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국내 배터리 제조사의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자금력을 가진 일부 대기업만 물량을 확보해 에너지저장장치(ESS)시장을 휩쓸고 있다. 대·중·소규모 입찰을 가리지 않는 공세적인 마케팅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의 시장 참여가 거의 말라버릴 지경이다.

ESS업계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의 급격한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ESS관련 지원정책이 단순하게 제품 보급만 유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렇다보니 구매력·영업망을 가진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비난이 나온다. 신규 시장 및 일자리 창출을 고려한 정부 지원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통상자원부 및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시장규모는 누적기준으로 1GWh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까지 누적된 배터리 공급량은 770㎿h에 달한다. 지난해 보급된 배터리 용량만 300㎿h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확대는 정부의 전폭적인 ESS 지원제도가 톡톡히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ESS 피크감축량에 따른 기본요금 할인(내년까지 기본요금을 3배까지 할인) ▶태양광 연계 ESS 신재생 공급인증서(REC)가중치(올 상반기까지 5.0적용) ▶ESS 전용 특례요금제도(지난해 1월부터 시행, 경부하 시간대 심야 충전전기 10%까지 전기요금 할인-최대 50%까지) 등이다.

하지만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가격은 오히려 오르는 추세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 삼성SDI 등 두 제조사의 공급물량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6~7월 배터리 가격은 ESS용량 10㎿h를 기준으로 kWh당 26만원 수준이었다. 현 시세는 kWh당 31만원 수준이다. kWh당 35만원까지 거래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ESS분야 벤처기업 관계자는 “국내 ESS 배터리 시장이 국산 제품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LG화학, 삼성SDI 등 두 제조사의 시장 예측 실패에 따른 생산 부족이 야기한 상황으로 판단한다”며 “문제는 국내 시장 활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투로 생산 증대를 위한 설비 투자를 꺼리는 데 있다. 미래 먹거리로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십 수년 전부터 과감한 선행 투자를 추진했던 기업 정신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배터리 제조사들도 할말이 없지는 않다. 우선 정권 교체에 따른 인센티브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성장 한계가 있는 국내 시장만 고려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생산설비를 증대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계시장에서 중국기업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비용출혈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두 제조사가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미주시장은 이미 중국 기업 BYD가 70%이상 차지했다. 소위 치킨게임 식으로 끝없이 가격경쟁을 벌여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에선 국내시장을 발판으로 수출 증대를 기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 의미가 퇴색됐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미주시장의 배터리 시세는 한화기준 kWh당 24~25만원 수준. 일부 업체에선 배터리 제조사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고가 시세가 형성된 국내 시장에 안주한다는 날선 지적이다.

또 배터리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국내 시장에서 KT, 효성중공업, SK D&D, 현대일렉트로닉스 등 자금력과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기업만 수혜를 입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량의 배터리 구매 능력과 대규모 사업에서 상대적으로 신용이 뛰어난 대기업이 어느 정도 시장을 차지하는 건 이해하나, 무차별적으로 작은 규모의 사업까지 뛰어들다보니 ESS솔루션을 제공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의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KT의 경우 방대한 국내 통신 영업점을 활용해 소위 ‘쌍끌이 식’으로 대·중·소 규모를 가리지 않고 수주에 나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입찰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일정 마진만 취한 채 실제 공사는 하도급 업체에 넘겨 시장 안정화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중소·중견업체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길다. 대기업들이 ESS구축을 위한 설계기술 및 능력, 응용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가진 게 아니라는 점에서다. 일부 대기업 건설사 중에는 입찰과정에서 중소·중견업체의 설계 아이디어만 베끼고 실제 시공은 자회사에 맡기는 ‘덩치 값 못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부 역시 구매력과 영업망을 가진 대기업만 선호하는 게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ESS업계 한 전문가는 “단순히 배터리, PC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제품만 조합해 파는 식이라면 대량 구매를 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진 대기업만 시장 참여가 가능하다. 미국·호주 등 선진국이 ESS와 관련해 하방산업 측면에서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응용제품 개발에 치중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및 응용제품 개발에만 수많은 중소·중견 및 벤처기업이 참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정책이 단순히 배터리 보급 확대만 유도하도록 설계되면 안 된다. 각각의 상황과 환경에 맞도록 배터리를 조합해 응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을 선회해야 정부가 기대하는 수출 및 일자리 창출 등 정책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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