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전환연구부장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외부와의 관계를 맺고 살게된다.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어머니을 포함한 가족들과의 인간관계이다. 갓태어난 어린아이는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본능(배고픔)을 갖고 가족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기억의 한곳에 저장되어 ROM(Read Only Memory)과 같이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인생관이 된다. 이렇게 차곡차곡 채워지는 기억들과 태초에 창조주께서 생명체에게 부여한 약육강식의 생존원리가 외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부의 개념이 나타나게된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의미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남을 다스리거나 복종시키는 힘으로 규정되어 있다. 자기의 생각과 행위를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외부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힘이 바로 권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富의 개념은 무엇일까?  경제적 가치로 통칭될 수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계량화 한다. 계량화의 필수조건은 논리의 정당성이 검증되어야 모든 사람이 동의하게된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있을까?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등 신과의 관계를 제외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주로 쓰고 있는 단위 중 미터, 킬로그램, 초 등도 그 정의를 살펴 보면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부의 가치도 원 또는 달라 등의 화폐단위로 그 크기를 나타내지만 이 또한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부의 가치를 계량화 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일뿐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대적인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많이 알려져 있고 홍보가 잘되어있고 모든 사람이 귀중하다고 느끼면 그가치는 상대적으로 치솟게 마련이다.


프로야구선수 박찬호, 골프스타 위성미, 축구선수 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들은 대중의 인기속에 경제적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인생에 있어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상대적으로 높은 대우 받는 이면에는 어떠한 사회적 환경이 있었을까? 분명히 선수 자신의 개개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이들을 이용하여 인간 관계를 증폭시키려는 사회적 현상이 있지 않았을까? 정치 지도자가 사회 단합을 목적으로 스포츠 경기 대회를 유치하고 그를 통하여 일치된 국민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그들을 이런 좋은 대우 받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사회에 있어서의 과학 기술자의 대우는 어떠한가?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30대 중반에 연구원에 입소하여 20년이상 근무하신 분의 대우는 어떠한가에 대해 가끔은 생각하게된다. 이분들의 가치가 스포츠 스타의 가치만 못할까? 가치가 상대적인 것이고 그분들 노력의 결과가 단시간내에 나타나지 않는다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 일들은 그것을 미시적(micro)으로 보느냐, 또는 거시적(macro)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 들도 상대적인 것이 되어 그 기준을 정할 수는 없지만, 과학 기술의 개발은 macro적으로 이루어진다.

 

macro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micro적 관점에서 판단하게 되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우리사회의 근대화 속도의 대명사가 “빨리빨리” 문화로 대변된다. 뒤떨어진 사회를 선진사회로 추월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의 성장이 필요하다.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진국을 모방하는 후진국의 경우는 이것이 통할지는 모르나, 창조가 필요한 선진국의 경우 “빨리 빨리”는 부실을 낳게된다. 창조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모방을 통한 실용화는 micro적이며 쉬운 방법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후진국에서 쓰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어떤가? 사회전체는 선진국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후진국의 방법이 아직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과학기술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돈이 투자되었는데, 왜 성과가 없느냐, 투자한 돈에 비해 경제적가치가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들 한다. 그렇지만 연구개발 특히 원천기술의 경우  그 결과가 10년 아니 20년이상 지난 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특히 연구자가 죽은 뒤 20년후에 연구결과가 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일예로 맨델의 유전 법칙의 경우 맨델이 죽은지 50년후 후배과학자가 이를 재검증하여 노벨상을 탄 경우를 보면 알수 있다. 우리의 과학 기술의 발달을 위해서는 “빨리 빨리” 문화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그 기초를 다질 때, 그것이 누적되어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되지 않을까? 스포츠맨의 가치, 한류의 가치 등은 당대에 그칠수 있으나, 과학기술의 가치는 과학기술이 macro적인 만큼 한세대 이상으로 계속성 유지된다.


이러한 과학 기술의 가치 창조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자의 사회적 신분 상승이 매우 중요한 인자 이다. 연구개발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풍토가 조성될 때 과학기술의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신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면 연구에 대한 열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한달전에 노동자의 성과금 지급 문제에 대한 의견을 달리 하는 현대자동차의 노사 분규를 보면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한편으로 처음에는 조립공장에 지나지 않던 자동차 회사에서 독자 엔진을 개발하고 그 엔진을 유수한 자동차 업체에 공급할수 있도록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한 엔진 기술 개발자의 노력이 있기에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엔진 개발자가 봉급이 적다고 파업하고 개발에 불성실했다면 엔진이 개발될 수 있었을까? 현대자동차의 미래는 묵묵한 성격의 엔진 개발자가 얼마만큼 존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많은 엔진 개발자 즉 과학기술자의 양성이 선진화로 가는 첩경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과학기술자의 양성 정책이 구호에 그친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도 매우 크지만, 사회 분위기에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학교선생님이 정년을 맞이하면 그분들은 그동안 수고했다고 국가에서 훈장도 주고, 연금도 있고, 거대한 정년퇴임식, 재직시절에 양성했던 제자들 등 그들 나름대로의 대접을 받으며, 후배들이 선생님 되겠다고 경쟁률도 매우 높다. 과학기술계는 어떤가? 얼마전 정년 퇴임하신 분의 경우를 보자, 정년퇴임의 훈장은 고사하고 초라한 정년퇴임식과 퇴임후 어떻게 생활을 꾸려가야 하나 하는 걱정에 고민을 하고 계신다. 또한 매년 이공계의 진학 경쟁률을 보자 겨우 정원을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 원인은 연구개발이 “빨리 빨리”문화와 궁합이 맞지않기 때문이다. 연구 개발 없이는 선진국의 진입이 어려워진 작금의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연구개발분야에서 “빨리 빨리” 문화의 개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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