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당시 한국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대부분의 언론이 ‘원전 르네상스’를 연호하던 때였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주의 여흥이 채 가라앉지 않은 시절이라 더했다. 원자력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온 많은 국가가 수소폭발로 원전 지붕이 뜯겨져 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까지 원자력은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이란 삼각다리로 지탱되어 왔다. 그중 하나가 맥없이 부러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국내에서는 고리 1호기 정전 은폐사건과 2013년 대규모 원전 부품비리가 터졌다. 원전 해안가 담을 높여 쌓고, 비리연루자 200여명을 처벌했지만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안전하고,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란 대국민 홍보문구가 무색해졌다. 

한 배를 탄 정부와 원자력계는 회복불능이 된 ‘안전’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대신 나머지 두 축을 더 견고히 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장관까지 나서 “경제성 탓에 어쩔 수 없다. 태양광 발전단가는 원전의 200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없이 온실가스 감축 대응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했다. 원전의 숨겨진 외부비용이 결코 적지 않고, 재생에너지 단가가 그다지 비싸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진 현재까지도 이 전략은 꽤 유효하다. 그러다가 2016년 경주에서, 지난해 포항에서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지진이 났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했는데, 진앙지가 원전에서 멀지 않았다.

대선에 뛰어든 대부분의 정당 후보들이 원전건설 중단을 공약했고, 새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을 공언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공론화, 8차 전력수급계획 등을 거치며 '정부-원자력계는 공동운명체'란 묵계도 깨졌다. 양쪽은 막 갈라선 부부처럼 으르렁댔다. 주류 언론을 등에 업은 원자력계가 무차별 공세를 퍼 부으면, 정부가 도발지점을 타격하는 식의 공방이 지속됐다. 양쪽 모두 상처를 입었지만, 어차피 전세는 원자력 쪽에 불리했다. 경제성은 재생에너지의 빠른 추격에, 환경성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서 말문이 막혔다.

최근 들어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 “싼 원자력이 있어야 태양광‧풍력을 늘릴 수 있다” 등으로 진화한 발언이 원자력 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원전이 불규칙한 재생에너지 출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정말 이 두 에너지원은 오랫동안 손을 맞잡고 갈 동지로 남을 수 있을까? 지난달 12일자 본지 오피니언면에 게재된 전영환 홍익대 교수의 ‘신재생에너지 수용성증대와 원자력발전의 기술적 한계’란 칼럼은 자체 출력조절이 불가능한 국내 원전과 계통 여건상 그런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2030년께 원전 설비용량이 20GW가량 유지되면, 전력수요가 적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많은 시간과 계절에 출력조절이 안되는 두 전력원 중 하나는 발전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외부 전력융통이 어려운 한반도 특성상 비용부담이 큰 ESS를 대거 확충하더라도 그런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높다. 이미 재생에너지 3020계획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제주도에서도 발전믹스에 따른 제약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이래저래 동지가 되기에 먼 사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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