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전원 정지·태양광 변동성 증가로 전력당국 잔뜩 긴장
날씨 따라 발전량 500만~600만kW 출렁…대응책 논의 미흡

[이투뉴스] 지난 수십년간 원전과 석탄화력 위주로 운영돼 온 대한민국 전력망(전력계통)이 최근 들어 연일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 기저발전기들이 고장이나 봄철 임시 가동정지로 대량 멈춰선 가운데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이 들쭉날쭉 발전량을 달리하고 있어서다. 자칫 변동성 대응에 실패할 경우 제대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해 보지도 못한 채 안정적 수급이 위험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국가 전력망 운영을 맡고 있는 전력당국은 이런 이유로 연일 준(準) 비상상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수급 급변 사태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그 조차도 사실상 눈 뜬 장님 신세여서 임기응변식 대응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력망 이상 징후는 발전소 부실건설 운영으로 다수 원전이 정지해 있으면서 일조량이 풍부해 태양광 설비가 대량 설치된 영호남 지역에서 빈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국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보급량이 늘어 하루에도 날씨가 맑거나 흐린 것에 따라 발전량이 500만~600만kW씩 출렁이고 있다. 하지만 실시간 계량이 안되는 20MW이하 발전기가 대부분이라 정확한 현재 상태나 향후 전개될 일을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아직 설비 비중이 높이 않아 유야무야 넘어가지만 가볍게 볼 사안은 결코 아니다. 계측이 안돼 수요가 낮은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양도 상당한데, 정확히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량과 수요를 모른다는 건 치명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력예비력만 충분히 확보하면 문제될 것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력망 운영은 주파수와 전압을 비롯해 다양한 전기공학적 요건이 충족돼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대형발전기 고장 등으로 단일 주파수인 60Hz가 일정 범위 이상 벗어나도 광역정전이 발생할 수 있고, 공급량이나 수요 급변으로 양쪽의 균형이 무너져도 전압이나 안정도가 깨져 예기치 못한 공급중단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예비력이 충분하냐 아니냐하는 문제가 아니어서 정부나 국민을 이해시키거나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당국자들의 하소연이다.

전력피크기간이 아니라 외형적 수급은 평온한 상태지만 전력망 운영을 담당하는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지난달 21일의 경우 발전소 인근 공사용 크레인(천공기)이 송전선로와 접촉해 삼천포 3,4호기(1120MW)가 정지했는데, 마침 이날 전후로 남부지역에 폭설이 내려 전력수요는 늘고 공급 일부를 담당했던 태양광 발전량은 곤두박질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관계자들은 계절적 특성으로 기온이 급상승할 수 있는 내달 이후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순수 재생에너지 비중이 3% 남짓한 현재도 이럴 진데, 향후 태양광‧풍력 설비가 크게 늘어나면 기존 체계로 변동성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발전업계 일각에선 “신재생 발전량 비중이 30~50%에 달하는 유럽국가들도 문제없이 계통을 운영하는데 아직 비중이 미미한 우리나라만 공연히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논의를 일축하는 경향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은 국가나 주정부간 전력 융통이 가능한데다 상호보완적 전력믹스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부와 전력융통이 불가능한데다 공급-수요지 불일치와 경직성 전원(원전) 의존도도 높은 편이다.

이와 관련 전력망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는 조영탁 이사장 부임 이후 계통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조직개편 방안 마련에 나서 기존 시장계통운영 조직을 운영본부로 통합하고 재생에너지 부문을 전담하는 별도 처(處)단위 조직 및 수요예측 전담팀 신설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 유사기관 대비 워낙 가용 운영인력이 부족한데다 실시간 급전 시 전문성을 발휘할 관제인력 확보도 여의치 않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팔을 걷어올린 국가신재생통합관제 로드맵 수립작업은 아직 유관기관간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력수급과 계통운영 방식은 수십년전 만들어진 원자력, 석탄 중심 그대로인데 더 엄격하게 원전안전을 관리하면서 재생에너지는 계속해서 늘고 있고, 이런 가운데 환경급전 개념까지 등장해 석탄 운영정지까지 시행 중이고 그 공백을 실시간 수급 단계에서 인력이 임기응변으로 메우고 있다"면서 "계통의 기본 안정성을 담보할 주파수, 전압, 안정도 등을 무시한 채 수급에 치우친 운영을 반복하다보면 잠재위험만 키울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니 IT기술도 좋지만 기본기를 갖춘 운영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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