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공사·광해공단 당사자도 몰랐던 통합안
한국광업공단법 초안까진 만들어진 상황
지방선거 끝났으니 본격 논의 시작될 듯

▲ 광물공사(왼쪽)과 광해공단(오른쪽) 사옥.

[이투뉴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이 합치기로 결정난지 세 달 여가 흘렀다. 그간 양 기관은 통합에 대해 당사자도 몰랐던 졸속 행정이라며 강하게 비난해 왔다. 광업업계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동토(凍土)에 지원마저 끊기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었고, 국민들은 MB정부 자원외교 비리가 해결될까 귀 기울였다. 올 상반기 일어났던 일을 시간별로 돌아봤다.

S#01. 디폴트 위기에 놓인 광물공사
무술년 새해 첫 주부터 광물공사에 비상등이 켜졌다.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광물공사 1조원 추가 지원안이 지난해 12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강원 원주을) 의원은 공사 출자금을 3조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출자금은 2조원으로 거의 바닥난 상태다.

송 의원은 공사 경영 상황이 일순간에 개선되기 어렵고, 저유가 시기가 해외자원개발 투자확대 적기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상임위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무난하게 가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본회의서 반전이 발생했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인천 부평을)이 법정자본금 증액 반대에 나섰다. 그는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국민 혈세를 부을 수 없다며 공기업도 파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같은 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같은 당 의원이 막았고,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서 막힌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출자금 증액안이 부결되자 공사는 올해까지 7400억원을 상환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197명 의원 중 102명이 반대하면서 광물공사 1조원 추가 지원안은 부결됐다. (출처 : 홍영표 의원 트위터)

S#02. 양 기관도 몰랐던 광물공사 통합안
유동성 문제로 고심하던 광물공사에 대안이 등장했다. 3월 5일 제3차 해외자원개발 TF에서 광물공사를 유관기관과 통합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이 나왔다.

TF는 지속적인 자본잠식과 유동성 문제를 고려했을 때 광물공사를 현 체제로 존속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유관기간과 통합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업무는 해외자원개발 직접 투자 업무는 폐지하고, 광업지원, 비축, 해외자원개발 민간지원만 유지하기로 했다. 유관기관이 어딘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움직임에 공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일 TF 회의 현장을 찾은 김영민 광물공사 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 역시 보도를 통해 통폐합 사실을 알았다. 강원도 본사에서 가만히 있을 순 없기에 일단 현장으로 왔지만 비공개 회의라 들어갈 순 없다. 밖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광해공단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TF는 유관기관이라고 표현했지만 공단을 말하는 게 뻔했기 때문이다. 홍기표 광해공단 노조위원장은 당일 상경시위를 벌이면서 "통폐합 이야기는 이미 수차례 나온 얘기인 만큼 그간 공단도 내부적으로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렇게 진전될지 몰랐다. 산업부는 권고안 정도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확정한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 3월 5일 공단 노조가 급하게 서울로 상경해 통합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S#03. 감정싸움으로 치닫은 두 기관
이 같은 갑작스런 결정에 양 기관의 감정싸움은 나날이 격화돼 갔다. 본래 양 기관은 강원 원주에 본적을 두고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3월 12일 광해공단 비상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비대위는 공사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69회에 걸쳐 리스크관리위원회(사업 시작 전 리스크를 점검하는 위원회)를 개최했으나 이중 15개 회의록 원본을 분실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 기간은 광물공사가 해외자원개발에 한창 매진하던 시기다. 

장준영 비대위원장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분실됐음에도 광물공사 자체 감사는 담당 팀장 주의 조치 정도로 마무리했다"면서 "공사가 나서서 부실 흔적을 지워 버린 것 아니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광물공사 측은 다음날 "이것은 전자기록물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실수이고, 공단의 해외자원개발 부실 원인 은폐 시도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공식 해명했다.

공단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TF가 공사 빚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통합안만 제시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원업계 관계자는 "현재 TF는 통합 권고안만 달랑 내논 상태라 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이쯤되면 해외자원개발 혁신TF가 아니라 자원공기업 구조조정TF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S#04.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던 토론회
그렇게 구체적인 방안이 없이 불안감만 커져갈 때쯤 정부가 공식적인 노선을 밝혔다. 3월 28일 열린 해외자원개발 부실 원인 토론회에서 정부는 광물공사를 광해공단과 합쳐 한국광업공단이라는 새 공공기관을 설립한다고 공표했다. 그간 유관기관이라고 돌려 말하던 것을 처음으로 공단이라고 인정했다.

탐사‧개발‧생산 등 자원개발 상류 사업을 하고 있는 광물공사와 광해복구‧방지‧폐광지역지원 등 하류 사업을 하고 있는 광해공단을 통합해 전주기 광업 프로세스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새롭게 출법하는 광업공단은 양 기관의 모든 자산 및 부채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공사의 해외자산 및 부채를 관리하고, 자산매각을 했음에도 잔존 부채가 생길 경우 정부가 상환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같은 결정에 토론회는 폐광지역 관계자들의 거친 항의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폐광지역 관계자는 "플랜카드에는 원인규명 토론회라고 적혀 있는데 왜 자료집 마지막에는 통합기관 설립이 적혀 있냐. 이 자리는 토론회가 아니고 결국 공청회 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약 통합을 했음에도 부실이 재발할 경우 그에 대한 배임의 책임은 여기 있는 사람이 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관은 "공사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하루 빨리 처리안을 내놔야 했다. 재무안정성 문제에 대해서는 "100% 해결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본다. 단 자산 매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정부의 지원액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폐광지역 관계자들이 한국광업공단이 설립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 3월 28일 토론회 현장.

S#05. 통합은 이제 시작…구조조정 어떻게
통합이 사실화되면서 이제 가장 큰 문제는 양 기관을 어떻게 합치느냐가 됐다. 천천히 준비해도 잡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내년 1월 출범(예정)에 맞춰 인위적으로 합치려니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공사는 4본부·10처·1원·해외3사무소, 공단은 3본부·4처·1원·5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양 쪽 핵심 부서는 통합이 되더라도 계속 운영되겠지만 경영부나 기획부와 같은 회사의 일반 부서는 고민 대상이다. 공사는 경영관리본부와 기획관리본부를, 공단은 경영전략본부와 기획조정처를 두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은 이보다 더 민감한 문제다. 현재 공사에는 550여명, 공단에는 250여명이 재직하고 있다. 공사는 통합안이 나왔을 때부터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완강히 거부해 왔다.

이 외에 어디 사옥을 사용하고 매각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설립될 한국광업공단의 새 수장 선임 또한 넘어야할 큰 산이다. 양 측 모두 자신 출신을 앉히고 싶어 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11일 광해공단은 이청룡 전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공단 이사장은 약 8개월 동안 공석이었다.

그는 회계사 출신으로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로 정평나 있다. 과거 알펜시아 리조트, 인천정유, 제일은행 매각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합 이후에도 이청룡 사장 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의 광물공사 관계자 역시 "지금 이 시점에서 공단 이사장이 선임이 된 것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말이 설득력이 있는게 본래 올 11월까지 임기였던 김영민 사장은 지난달 31일 면직됐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광업공단법(가칭)의 초안은 일단 만들어진 상태다. 홍기표 광해공단 노조위원장은 "통합 담당 산업부 팀장이 현재 공석이라 통합안은 일단 스톱된 상태"라면서 "지방선거 등 굵직한 국내 행사가 끝났으니 다시 슬슬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청룡 광해공단 신임 이사장이 5월 18일 열린 광업협회 100주년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onggr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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