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확립 차원 '선제적 개방'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걸프협력회의(GCC)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의사를 천명한 것은 중동지역에 대한 능동적인 시장개방을 통해 주요국과의 향후 무한경쟁 체제에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세계적으로 가열되고 있는 자원ㆍ에너지 확보 경쟁 국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원의 보고인 중동에 뒤늦게나마 '선제적 개방' 의지를 피력하고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장기적으로는 시장통합이란 경제적 접근 방식으로 중동지역과의 지리적, 문화적 거리를 좁혀나가면서 아랍권과의 외교관계 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에너지안보 문제에 대한 한국경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국은 원유의 82%, LNG의 50%를 중동에서 도입하는 등 중동지역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특히 세계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 바레인 등 걸프지역 6개국이 가입해 있는 GCC로부터는 원유의 68%, LNG의 47%를 수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경쟁국들이 원유를 노리고 중동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나서면서 가뜩이나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라는 한국경제의 에너지 수급 우려를 더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4년 GCC와 FTA 추진에 합의한 뒤 2005년 4월부터 협상을 진행해오고 있고,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할 만큼 중동에 집요한 관심을 보여온 일본은 물론 미국과 EU(유럽연합), 인도도 GCC와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 주요 경쟁 상대국이 한국보다 먼저 FTA를 체결할 경우 한국의 대(對) GCC 수출규모는 2005년 62억 달러에서 5억 달러 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오일달러'에 힘입어 중동시장 규모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도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에 GCC와의 FTA 필요성을 고조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동은 2005년 이후 고유가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연평균 5%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투자가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중동지역의 플랜트 발주 규모만 해도 2005년 1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최근 3년간 100%씩 증가한 것이 중동의 경제 성장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중국 등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노 대통령이 "올해안에 GCC와 협상 개시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신속 체결 의지를 밝힌 것도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물론 GCC와의 FTA 체결이 국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원유 및 석유제품 관세가 철폐되면 상당한 세수결함과 관련 업계의 손실이 불가피하고, 이 때문에 관계 부처 및 업계 일각에서 중동과의 시장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동에 대한 이번 FTA 제안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임기내 미래를 위해 할 일은 반드시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취임 첫해 한ㆍ칠레 FTA 비준을 관철한 데 이어 임기말 핵심 지지층인 진보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 체결을 추진하는 것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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