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몰제' 추진에 농어민 반발

농수산물 시장 개방으로 국내 농업계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올해말 일몰(시행 유예시한) 예정인 농어업용 유류 면세혜택기간을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농어촌의 어려운 현실은 인정하나 조세형평상 '일몰제'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농민단체는 '영구면세'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농어업용 면세유 적용시한은 올해 6월30일 종료돼 7월부터 12월말까지는 75%의 감면을 받게 되며, 그 이후에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농어업용 유류 면세혜택은 단순히 '일몰제' 또는 '영구면세'만을 놓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연간 3000억원 상당의 면세유가 불법으로 유통돼 석유유통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석유유통업계 관계자는 "면세유 공급이 연장되면 면세유 불법 유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이에 대한 보완책 없이 단순히 '농어민 달래기'식으로 제도가 추진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농어민 면세유는 지난해 380만㎘가 공급됐으며 이를 통해 정부가 농어민에게 지원한 세금은 2조원이다.


◆농업소득 감소…농가 어려움 '악순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05년 면세유 가격이 20% 상승할 경우 농업소득은 최소 5.9%에서 최고 11.6%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는 내놓았다.
유류에 대한 세제혜택이 없어지면 이는 곧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져 농어가 소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업용 난방기 수요가 많은 시설하우스 농가는 농업경영비에서 영농광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5.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세환 농협중앙회 자재부장은 "면세유는 시설농업의 농업경영비 절감에 필수적 요소"라며 "시설고추 농가가 100% 과세유 사용시 33.1%의 소득이 감소하는 등 농가소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오부장은 또 "FTA 등 농업여건 변화에 대응해 안심하고 농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면세유에 대해 일몰제가 아닌 영구화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농기계·농업시설 등은 교통 혼잡·도로 파손 등의 유발요인이 거의 없는 만큼 교통·에너지·환경세 및 주행세 과세는 적절치 못하다"고 설명했다.


◆면세유 영구화는 형평성 '어긋'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농어촌의 어려운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부문간 형평성을 이유로 '일몰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승호 재정경제부 부가가치세제과장은 "조세특례제한법상 일정 기한을 정하고 그 기안이 도래하기 전에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일몰제'가 원칙"이라며 "면세유만을 (영구화로) 인정한다면 부문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진 과장은 또 "다만 기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토론 등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재경부의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황기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장은 "농수산 부문에 대해 유류세 면세혜택을 계속 허용할 경우 운수업계와 같이 연료비 비중이 높은 타 부문에서 형평성 문제를 들어 동일한 면세혜택을 요구하게 된다는 게 정부의 논리"라며 "그러나 미국·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농수산 부문에 대해서는 유류세 면세혜택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서비스업에 대해 동일한 혜택을 주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면세유 불법유통이 쟁점
이번 논란의 속내를 살펴보면 그동안 면세유의 불법유통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은 "면세유 일몰 연장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불법유통문제나 제도운영 현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면세유의 불법유통에 대한 불편한 심리를 내비쳤다.


실제로 정해진 기준보다 면세유를 더 받아가거나 아예 대상도 아니면서 면세유를 타간 농민들이 이를 시중에 팔아 넘기면서 석유유통시장이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농어민·주유소·농협 직원 등이 짜고 면세유를 빼돌리는 일마저 적지 않게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가 당초 면세유를 폐지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게 석유유통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석유유통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연간 면세유 불법유통으로 탈루되는 세금이 3000억원을 웃돈다는 분석도 있다"며 "면세유 공급을 연장하면 이 같은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세환 부장은 "면세유 5000리터 이상을 사용하는 농가는 전체의 6.6%에 불과하지만 이들 농가가 전체 면세유의 66.4%를 사용, 이중에서 불법유통이 주로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 5000리터 이상 사용농가에 대해 면세유 중점관리제 도입을 통해 불법유통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부장은 또 "면세유를 불법유통시키는 주유소에 대한 처벌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면세유 판매지정 주유소 제도를 시행해 면세유를 부정유통시키는 주유소를 지정 해제하는 방법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경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정 정책조정회의를 통해 농어업용 유류 면세혜택 기간을 2010년까지 3년을 더 연장한다는 방안이다.
김진표 우리당 정책위의장은 "농어민 면세유 혜택으로 인한 재정수익 감소가 상당히 큰 규모"라며 "이에 따른 논란이 있지만 어려운 농업환경에 따라 면세의 근본적 취지가 살아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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