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한 명분과 실리를…

에너지기술평가원을 둘러싸고 관련기관들간에 불거진 갈등이 수면 아래로 잠복된 채 설립 초읽기에 들어갔다. 5000억원대의 연구개발 자금을 굴릴 기관인 만큼 갈등의 무게도 크다.

 

그간 한국전력과 에너지관리공단이 분리해서 추진했던 에너지 자원 연구ㆍ개발 부분을 통합할 전문기관의 설립은 효율과 능률 면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필요성에 대해서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자원부가 평가원을 에너지관리공단 산하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원래의 계획에서 민간기관 형태로 바꾸면서 문제가 커졌다. 전력자본금을 손에 쥐고 있는 한국전력이 기관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의 반발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연구ㆍ개발을 주 업무로 해왔던 에관공 측은 수요관리나 보급사업만을 책임지는 작은 기관으로 축소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에너지부분뿐만 아니라 항공ㆍ전자 등 모든 기술을 총괄 개발하는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독립행정법인으로 설립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자금을 대고 NEDO가 연구ㆍ개발 부분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NEDO가 정부의 의도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자 '추적 평가'제도 등을 도입했다. 정부의 지원 흐름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시스템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차근차근 문제점을 해소해 나가며 명실상부한 신에너지산업 총괄기구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가원의 역할과 중요성을 뒷전으로 미룬 채 설립단계에서부터 부처간 이익관계만 따지기에 급급하다. 이원걸 한국전력 사장이 최근 "(5000억원의 자금을 맡기기엔) 에관공은 작고 한전은 크니, 한전이 맞는게 맞지 않느냐"는 발언을 해 에너지관리공단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신경을 쓰는 격이다.

 

외국은 화석연료 고갈 시대를 대비, 관련 기관을 갖춰 에너지 연구ㆍ개발 등 준비를 차곡차곡 하는 반면 우리는 기관 설립 초반부터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니 모양새부터 볼썽사납다. 이미 출발부터 난항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관리기관은 돈벌이 수단이 아닌 시민과 국가 경제를 위한 단체이다. 돈벌이나 참가기관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립요건이나 조직구성이 엎치락뒤치락 해서는 설립 이후 올곧은 직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평가원이 설립되더라도 에관공과 한전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앞선다.국민과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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