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 에너지부문에는 정부계획이 몇 개나 될까?

 

법에 명시된 것만 들어도 (농어촌)전화사업계획, 석유비축계획, 석탄산업장기계획, 탄광지역진흥사업계획, (송유관)시설관리계획, (송유관)공사계획, 전력기술진흥기본계획, 전원개발계획,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집단에너지공급기본계획, (폐광지역)개발촉진기구의개발계획, 폐광지역환경보전계획,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 해외자원개발사업계획, 가스의공급계획, 가스의수급계획, 가스공급시설공사계획,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지역에너지계획, 비상시에너지수급계획, 에너지사용계획, 에너지공급자의수요관리투자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기본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실시계획, 에너지기술개발계획, 대체에너지기술개발이용·보급기본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력산업기반조성계획 등 13개 법률에 28개 계획이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정부계획 없이는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무슨 일이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필자도 아침에 출근하면 하루 할 일을 생각하고 이를 적어가며 일한다. 하물며 에너지정책과 같이 중차대하고 오랜 세월을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일의 경우에는 계획이 없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꼭 계획을 법으로 규정해 제도화할 필요까지 있는지는 짚고 넘어갈 일이다. 일례로 전기사업법에 장기전력수급계획이 규정된 1989년 이전에도 한전과 정부는 전원개발계획을 세워서 발전소를 잘 건설했다.

 

계획이 법에 의하여 규정되고 집행될 때 규제기능을 갖게 된다. 또한 공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여러 사업기회, 정보와 자원을 선점하면서 진입장벽을 쌓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서 계획은 각종 에너지요금의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게 되고 지역간, 소비자간, 사업자간 교차보조를 시행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법에 이처럼 많은 정부계획을 규정하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일본은 시장과 산업을 정의하고 정부가 이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각종 개별 사업법에 정부계획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의 정부계획을 우리나라 정부가 그대로 답습하였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개별적인 사업법을 그대로 번역하여 적용하면서 개별적인 사업법의 중추를 삼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일본식 정부계획을 많이 이식받게 되었다.

 

정부가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는 로드맵이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또는 연구의 차원에서 수행하는 것이지 자원을 통제하고 규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에서도 민간과 시장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에너지부문의 정부계획이 꼭 법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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