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에서 지인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다. 진초록 가로수가 봄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한낮의 풍경에 넋을 잃고 있던 그가 대뜸 "요즘 승용차들은 왜 그렇게 덩치가 큰거야?"라며 혼잣말을 했다.

 

당시는 씽긋 웃어보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지만 꽉 막힌 도심에서 교통체증으로 앞차의 꼬리를 물게될 상황이 오면 '정말 덩치가 커졌네'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균 3~5년 주기로 차량을 교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에 비춰볼 때 그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최근 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승용차 판매량에서 소위 '대형차'로 불리는3000cc급 이상 차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9.2%에 그쳤던 대형차 판매율이 2004년에는 11.0%, 지난해에 15.8%, 올 상반기 16%대까지 증가했다.

 

반면 실용적이며 연비가 뛰어난 경차의 경우 2001년부터 생산량이 꾸준히 줄어 지난해에는 14만3000여대만 생산됐다는 소식이다. 교체주기를 맞은 소형차가 한 두대씩 '대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경승용차에 대해 LPG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그런데 '큰 덩치'를 좋아하는 우리네 성향이 연료비 혜택 정도로 반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경차 타는 유명인, 누가 있나'란 취재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MBC 강재형 아나운서(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는 올해로 19돌을 맞는 87년식 <프라이드DM>을 아직까지 타고 있다. 누적거리만 15만Km를 넘어섰고 엔진과 미션(변속기)도 한번씩 갈아줘야 했단다.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 내게 그는 "연비가 15km나 나오고 생애 첫차로 마련한 것이어서 아직 생각이 없다"면서 "아들놈이 대학에 들어가면 그 때 물려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소형차를 타는 그는 대형차를 선호하고 차를 자주 교체하는 사람들의 다양성도 인정한다고 했다. 차량성능이 좋아진 만큼 갈수록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고, 다양한 편의기능과 에어백 같은 안전장치가 있어 나름대로 만족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차가 최고!'라고 기자에게 자랑을 늘어놨다. "고장없이 잘 달려주고, 방향지시등 잘 들어오고, 라이트(전조등)켜고 키 뽑으면 방전되지 말라고 경보음까지 울리는 기본에 충실한 차"라고 했다.

 

오래된 차다보니 파워핸들과 파워윈도우 기능이 없지만 "창문을 올릴 땐 팔 운동을, 핸들을 돌릴 땐 어깨 운동을 한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수송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20.4%다. 강아나운서의 궁상(?)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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