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특회계ㆍ전력기반기금, 중복과제 '수두룩' … "에기평 통합 능사 아니다"

 

에너지특별회계(이하 에특회계)나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정부의 에너지 연구개발(R&D)사업이 상당부분 중복되거나 과거 종료과제와 유사한 내용의 과제를 버젓이 '재탕'하는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같은 사실은 본지가 에너지관리공단과 전력기반조성센터(이하 전기반센터)로부터 입수한 '신재생에너지개발사업과제(에관공 123건)' , '연도별 R&D 과제목록(전기반센터 1038건)', '신재생에너지사업추진현황(에관공 38건)'등을 비교ㆍ분석한 결과로 나타났다.

 

"에너지 R&D자금은 '눈먼 돈'"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해 온 연구개발 자금의 집행효율성 문제가 각 기관의 과제목록 비교작업을 통해 직접 확인된 셈이다.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기술개발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총 4439억원이며, 전기반센터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투입한 전력기금은 4999억원에 육박한다. 또 올해만 30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이들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조 단위 에너지 R&D사업에 대한 전면적 효율성 제고작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에너지R&D '재탕백태'= 태양전지용 부품 개발업체인 S사는 올해 12월까지 10억여원의 에특예산을 지원받아 태양광 발전에 소요되는 실리콘 양산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연구사업에는 모 대기업과 국책연구기관이 참여기업으로 동참한다.

 

하지만 앞서 2004년 전북도에 소재한 모 대학은 이와 유사한 연구과제를 수탁받아 이미 연구과제를 종료한 바 있다. 이때 소요된 재원은 전력기금에서 충당됐다. 언뜻 과제명은 달라보이지만 결국 양산기술을 개발하는 동일 과제였다.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과제는 얼마든지 더 있다. 한전산하 전력연구원은 석탄가스화복합발전에 대한 실용화 검토연구를 올해 3월까지 마무리 했다. 이 역시 에기연 측이 내년까지 연구할 예정인 IGCC 관련 연구와 다를게 없다.   

 

같은 전력기금을 받는 과제에서 조차 중복 현상이 빚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 대학은 전력기금을 지원받아 풍력발전기의 계통연계(전력망 연계) 연구를 몇년전 마무리했다. 그런데 공공기술연구회 산하 모 연구원은 수십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이와 유사한 계통연계시스템을 지금도 연구중이다.

 

이밖에 다수의 연구과제가 이같은 '재탕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설비자금용 '눈먼 돈'= 문제는 이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난 연구과제 중복문제가 '빙산의 일각'이란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R&D사업을 한다며 300억~400억원이 소요되는 연구사업을 따 놓고 이를 공장설비에 투입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관리기관과 수탁기관(기업)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벌여도 산업자원부나 집행기관 누구하나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역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사업이 계속된다면 국가 차원에서 큰 예산낭비가 아닐 수 없다"며 "'재탕연구'는 물론 내용도 파악되지 않는 중복연구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에특자금과 전력기금을 집행하고 있는 에관공과 전기반센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해당 문제를 부인했다. 다만 이들은 연구중복 부분에 대해 일부 사실을 시인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에관공 기술개발실 관계자는 "모든 과제는 추진이 결정되기까지 평가기관을 포함한 13개 유관기관이 중복문제를 체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신재생분야는 에관공이, 전력분야는 한전(전기반센터)이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력기반조성센터 관계자는 "과거에는 양측이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아 센터나 공단 단독으로 지원을 결정하면서 중복문제가 발생했다"며 "그러나 2005년 이후 업무분장 과정을 거쳐 지금은 최소화된 상태다"고 말했다.

 

◆ 에기평도 해법 안돼=산자부는 연내 R&D연구개발을 총괄조정하는 민간재단 형식의 에너지기술기획평가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선 에관공이나 전력기반센터 모두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관별로 상호협력과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재단설립을 강행하고 있다. 빠르면 내달까지 재단설립을 마무리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장 2010년까지 예정된 각 기관의 연구개발 과제를 살펴보면 외형적 통합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038건에 달하는 전기반센터의 연구과제는 97% 이상이 전력, 원전, 발전소 연구에 집중돼 있다. 이는 자금을 조달하는 한전측이 기존 '밥그릇'을 신재생에너지나 기타에너지 연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실제 올 초 전기반센터의 한 책임자는 "우리돈으로 조성된 기금인데 누가 타에너지 분야에 투입되는 걸 원하겠느냐"고 언급한 바 있다. 제각각 벌이고 있는 연구사업이 각 기관의 이해관계에 얽혀 수탁기업의 '사업자금' 정도로 전락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의 한 보좌관은 "6월 상임위에서 평가원 설립에 대한 타당성을 다시 한번 검토할 것"이라며 "이때 평가원 설립의 타당한 부분은 수용하고,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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