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서울중앙지법. 푸른 수의를 입은 고석구 전 수자원공사 사장이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수공이 발주한 한탄강댐 공사와 관련, 건설사로부터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평생의 명예를 걸고 결코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간 각종 비리에 연루돼 선배 사장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만은 깨끗히 떠나겠노라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검찰은 고 사장에게 징역 7년에 추징금 1억원을 구형했고, 이후 법원은 지난해 10월 징역 3년6월과 추징금 9000만원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고 전 사장은 수공에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공채출신 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고, 공기업 사장으로 드물게 연임도 했다. 늘 청렴한 공무원상을 강조하면서 직원들 사이에 신망도 두터웠다.

 

백주대낮에 운전기사를 따돌린 채 현금 1억원이 든 종이가방 2개를 받고 걸어가지 않았느냐는 담당검사의 추궁에 고 전 사장의 입술은 가늘게 떨렸다. 당시 고 사장의 연봉은 2억에 가까웠다.

 

한동안 술렁거렸던 수공은 환경부 장관 출신의 '물전문가' 곽결호 사장이 취임하면서 곧 안정세를 되찾아갔다. 그러나 고 사장의 수뢰혐의가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자금과 깊숙이 연결돼 있다는 소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여름, 수공에 또 다시 파문이 인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재검토한 37쪽짜리 보고서가 수공 고위간부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29일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곽결호 사장 등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 곽 사장과 교감을 나눴다는 한 측근은 "(대운하와 관련해)사장께서 마치 체념한 듯한 느낌이 역력하다. 세계 물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할 일도 많고 갈 길이 먼데 정치권 논란에 휘말려 많이 착잡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나라의 수자원을 관리하는 중책기관이다. 댐을 만들어 홍수를 막고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상수도물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다국적 물기업이 우리나라를 타킷으로 공세를 펴고 있다. 넋놓고 있으면 해외기업에 국내 물시장을 넘겨줄 수도 있다.

 

수공은 이를 대적할 유일한 공기업으로 꼽힌다. "매번 정치권의 희생양이었다"는 수공이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이제 그만 놔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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