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낡은 신문로빌딩에 '옹기종기'

"이 건물이 1971년에 지은거야, 30년도 더 됐지. 없던 엘리베이터를 나중에 만들다보니 2층부터 승강기가 운행돼. 하지만 교통 좋지, 세(稅) 싸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나"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89-27번지 피어선빌딩. 겉칠이 듬성듬성 벗겨진 11층 짜리 빌딩을 가리키며 '건물이 지어질 적부터 일했다'는 60대 관리소장 김우원(가명)씨가 은근히 건물자랑을 늘어 놓는다.

 

에너지ㆍ환경 시민단체는 공교롭게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모여있다. 당장 이 피어선 빌딩에 에너지시민연대와 소비자시민의모임이 둥지를 틀고 있고, 지척거리인 '경희궁의 아침' 오피스텔에 에너지나눔과평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어 1km의 컴퍼스의 북쪽 외연 끝 자락에 환경운동연합 본부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일대가 우

리나라 에너지 시민운동의 근거지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관상 건물수명이 다한 듯한 이 피어선빌딩은 드물게 시민단체 사무국이 몰려있는 건물로 관계자들 사이에 유명하다.

 

최근 산업자원부와 유사석유 근절운동을 펼치고 있는 소비자시민의모임(공동대표 김재옥. 국가에너지위원)이 603호와 605호를 사용하고 있고, 같은 층 608호에 환경보호구역을 사들이는 내셔널트러스트 본부가 있다.

 

또한 바로 윗층 708호, 709호의 한 자리를 에너지시민연대(공동대표 김석봉 등)가 차지하고 있고, 이들과 에너지의 날 등의 행사를 함께 추진한 여성환경연대가 808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1006호, 시민환경연구소 1009호도 빼놓을 수 없는 한지붕 식구들이다.

 

물론 잠시 머물다 간 환경재단 등의 단체는 빼놓고 추린 집계다.

 

어떻게 이들 시민단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처럼 한 건물에 모여들게 됐을까? 현장 활동가들과 김우원 관리소장에 따르면 광화문 피어선빌딩의 인기는 저렴한 임대료와 지리적 잇점 때문이다.  

 

이 빌딩은 은행이 들어선 3층까지가 피어선법인(평택대학교)의 소유며, 시민단체가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4층 이상은 건축당시 분양받은 개인 임대업자들의 소유다. 워낙 건물이 낡아 아무리 서울 심장부라도 임대료를 비싸게 매길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교통 좋고 임대료 싼' 곳을 찾아헤매던 시민단체들이 이곳으로 하나 둘 흘러들어 시민운동의 맹맥을 잇고, 지금의 피어선빌딩을 터전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버들 에너지시민연대 차장은 "임대료에 대한 부담도 있고 교통편도 생각해서 사무국 소재지로 빌딩이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각 층에 서로 떨어져 있지만 수시로 소통하고 정보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피어선빌딩하면 시민운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이곳이 상징적 의미가 되고 있다"면서 "건물이 오래돼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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