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적지에 투기꾼 몰려 … 부지전용도 못 막아

전남 고흥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권모(52)씨의 휴대전화는 하루종일 쉴 틈이 없다. "발전소를 지을 만한 땅이 있느냐"며 서울 등 대도시에서 걸려 오는 시외전화가 하루에도 서너 통이 넘는다고 했다.

 

권씨는 "대부분 3000평(9917.4m²) 이상을 찾는데 조건이 맞는 매물 찾기가 쉽지 않다. 마땅한 곳을 찾아도 끝까지 성사되는 것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값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도 문의가 계속 오고 있다"며 "군(郡)이 허가 내고 환경영향평가도 없는 3000평 이하를 권해도 손님들이 큰 물건만 찾아 우리 같은 일반업자만 허탕을 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발전소 지을 땅 없다=태양광발전소 건설이 잇따르면서 일조량이 많은 남해안 일대가 투기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한가로운 해안마을에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고, 평당 몇 천원씩 하던 땅값은 4~5배씩 뛰어올랐다.

 

권씨에 따르면 고흥군 G리의 일반농지는 불과 2년전까지 평당 5000원 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만5000원을 줘도 구할 수 있는 땅이 몇 안 된다. 특히 MW급 발전소 건설이 가능한 5000평(1만6529m²) 이상 단일부지는 최대 7만원을 웃돈다.

 

"쓸 만한 땅은 이미 외지사람이 매입했거나 부동산 업자가 끌어다 놓은 물량"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남해안에 머물지 않고 점차 전국화되고 있는 추세다. 입지 조건이 나은 편인 서ㆍ남해안과 경북도 일부 지역까지 투기꾼이 몰려다닌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규모 발전사업을 검토중이라는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실사를 나가보면 '발전소 하실려구요?'하면서 접근해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는 업자들을 많다"면서 "이들이 제시하는 땅은 시세보다 부풀려진 게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업자들이 대량으로 후보지를 사놓고 '장난(투기조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며 "땅값 비싸고 좁은 나라에서 태양광을 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지 않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 실질적 투기제한 불가= 태양광 업계와 현지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발전소를 짓기 위해 일단 허가가 난 토지는 소유주 마음대로 전용이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15년간 안정적인 발전차액도 챙기고, 이후에는 해안에 걸맞는 위락사업을 벌여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고흥의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자는 "일단 허가가 나면 잡종지가 되는 거다. 15년 뒤에 별장을 짓든, 리조트를 세우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며 "10년 이상 묵어두는 장기투자라면 이 사업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매입을 적극 권유했다.

 

발전사업을 빙자한 투기세력이 이처럼 횡행하고 있지만 인ㆍ허가기관은 속수무책이다. 조건을 충족하는 사업을 명분없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현재 전남도로부터 발전사업을 허가받은 업체는 200개에 육박하고 있다. 또 50여개 사업이 추가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덕빈 고흥군 경제산림과장은 "중앙정부는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세수나 고용창출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면서 "산자부든 도든, 허가를 남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과장은 "발전사업에 있어 군은 개발계획이나 개별법에 저촉되는 여부만 판단해 인ㆍ허가를 내는 상황이라 투기로 의심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신재생에너지 확대도 좋지만 앞으로는 지역경제나 주민생활에 끼치는 영향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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