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가능한 투명하고 효율 높은 연구개발 '과제'

신성철 에너지자원기술기획평가원장은 "힘든 산고(苦)를 거쳐 평가원이 탄생했다"며 "국가 에너지ㆍ자원 분야의 핵심기술과 산업을 육성해 고유가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11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에너지자원기술기획평가원(이하 에기평) 개원식에서 "뜻 깊고, 기쁘다"는 짧은 일성과 함께 이같은 각오를 내비쳤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에기평이 공익법인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이날부터 공식업무에 들어갔다.

 

에기평의 모태가 됐던 산업자원부 '에너지자원R&D기획단'이 발족된 지 2년 만이며, 에너지관리공단 노조를 주축으로 재단설립 반대운동이 전개된 지 1년 2개월만의 일이다.

 

이재훈 산자부 차관은 에너지계 주요인사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개원식에서 "정부가 R&D에 쓰는 자금이 올해 5000억원을 넘어섰다"고 운을 떼고,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국민들께 자랑스럽게 쓸 수 있도록 에기평이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차관은 고유가와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믹스(Mix) 등 넘어야 할 난제가 많다면서 ▲기획단계를 거쳐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예측가능성'을 분명히 하고 ▲점차 평가범위를 확대해 투명성을 제고해야 하며 ▲같은 돈을 쓰더라도 성과를 극대화하는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에기평 탄생, 어떤 '산고' 겪었나=이재훈 차관은 "(에기평 설립은) 에관공이나 전력연구원, 신재생에너지센터 등 에너지자원기술개발에 처음부터 힘써 온 곳에서 기득권을 포기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간의 에너지 R&D사업은 전력연구(전력기반조성센터), 신재생연구(신재생에너지센터), 에너지절약연구(에너지관리공단) 등으로 분리돼 일부 연구개발 과제가 중복되고 성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에기평 한 곳으로 모아 과제 기획단계부터 사업자 선정, 사업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혁신형, 성과중심형으로 개편한다는게 에기평의 설립 취지다.

 

 

그러나 에기평 출범은 난마처럼 얽힌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준비 과정부터 진통이 뒤따랐다. 애초 정부는 에기평을 에관공 부설기관으로 둔다는 계획이었으나 한전이 이에 반발하자 뒤늦게 민간법인으로 설립형태를 변경했다.

 

이에 에관공은 R&D기획부터 보급에 이르는 공단의 고유업무 일부가 신설 조직에 흡수될 것으로 보고 노조가 중심이 돼 정부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반대로 한전은 전력분야 연구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변경안을 관철시키는데 힘썼다.

 

정부-산하기관-공기업으로 이어지는 대립구도가 형성되면서 에관공은 산자부를, 한전은 에관공을 견제하는 유례없는 갈등이 빚어져 에너지계의 이목이 한 때 이 사건에 집중되기도 했다.

 

이날 개원식에서 차관 재임시절 에기평 설립에 관여했던 이원걸 한전 사장이 "(개원까지) 꽤 산고가 있었다"고 표현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에기평 구성안에 대한 공방은 결국 양 기관의 의견차를 좁히는데 실패하고 차기 장ㆍ차관과 국회 몫으로 떠 넘겨졌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당시 정책결정자였던 이원걸 전 차관이 에관공과 대척점에 있는 한전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에기평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당장 내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시간 압박 속에 민간법인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 '에기평號'에 남겨진 과제=산자부의 최종 결심은 '에관공은 못 미덥고, 기존처럼 R&D를 분할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으로 축약된다. 해외 어느나라도 에너지R&D를 여러기관에 나누는 경우가 없으며 큰 틀에서 집행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은 에기평 설립이 유일하다는 결론이다.

     

산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은 에너지기술개발 분야의 혁신적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에너지부 산하에 에기평과 유사한 'ARPA-E(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Energy)'를 설치키로 했다.

 

또 일본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50% 감축한다'는 아베총리의 'Cool Earth 50' 목표를 달성키 위해 태양전지 등 주요연구테마에 대한 에너지혁신기술계획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세계 각국이 에너지기술개발 추진체계를 정비해 가는 시점에 기관간 이해관계 논란을 이유로 현행 에너지기술체제 정비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당국의 고뇌가 에기평 설립을 한층 앞당긴 셈이다. 

 

원장공모로 시작된 에기평 구성은 이날 개원식까지 불과 3개월만에 일사천리로 마무리 됐다. 다만 정부는 국가에너지R&D투자가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R&D투자를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에기평 운영을 관장하는 이사회에 에관공과 민간기업이 참여토록 했다.

 

또한 각 연구개발 과제를 선정 및 평가하는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에기평의 중요기능인 기획ㆍ평가 부문을 이사회의 영향권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우여곡절 끝에 '에기평號'는 이날 진수식을 갖고 항구를 떠났다. 이해관계에 있던 기관들이 대립구도도 일정부분 의사권이 보장되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산고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에기평 출범은 '난산(産)'으로 비쳐지고 있다.

 

에기평 출범을 지켜본 에너지계 한 인사는 "에기평은 어느 기관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객관적이며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생명"이라며 "미래지향적 에너지믹스 체제를 만들기 위해 설립 초기 제기됐던 투명성 확보 문제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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