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론엔 한목소리…실행엔 이해 엇갈려/IMF때 "부족한 외화 조달" 이유로 부상/국내 산업전반에 영향…인수위도 신중 접근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산업계와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마무리하며 후속 작업으로 규제 및 공공부문 개혁 작업에 접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기업 민영화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대적으로 전개될 전망이어서 관련 기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의 민영화는 국가 기간망인 전력산업이 국민의 생활과 직결돼 있다는 이유로 새 정부도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남동발전 등 5개 자회사를 증시 상장을 통해 순차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발전부문의 경우 2009년 12월30일까지 매각해야 한다는 전력산업구조개편 관련 특별법이 살아 있어 법 개정도 필요없다는 분석이다.

가스공사도 여러 개로 분할, 시장에 팔아도 될 분야부터 매각하는 방안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전력, 가스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기업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도 매우 높은데다 노동계의 반발에 따른 진통도 예상돼 새 정부로서는 자칫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여하튼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는 모두 새로 출범될 정부에서 이뤄지는 만큼, 관련기관들은 공식적인 답변을 꺼리며 매우 움츠려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기관들의 노조는 기관과 달리 보다 자유로운 발언권이 보장돼 있어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강도 높게 주장하고 있다.


전력산업 민영화 등장 배경
산업자원부는 전력산업의 판매 부문에 경쟁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력산업, 가스산업, 지역난방 등 에너지 분야 공기업 구조 개편 추진 방향을 보고했으며 발전·판매 회사의 단계적인 민영화 등이 포함된 로드맵을 올해 상반기 중 수립할 예정이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조만간 산자부가 보고한 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대통령 취임 이후 공기업 개편 방향을 확정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전력 및 가스 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기업이라는 특수성으로 매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며 여론의 추이까지 지켜보고 있다.

전력산업에 대한 구조개편론이 등장하게 된 것은 대외적 여건 변화로 전력산업 개편이 세계적인 추세로 등장하면서 나왔다. 1990년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이 전력 산업에 경쟁을 도입하는 구조개편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소용량 발전기의 개발에 따른 발전부문 진입장벽의 완화, 전자식 전력량계의 개발 및 저가 대량생산, 텔레미터링 등 전력계통운영의 효율화를 위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라는 기술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IMF 경제위기 이후 가속화된 경제전반의 규제완화와 시장편향적 경제구조개혁의 흐름이라는 국내적 여건의 변화 때문이다. 전력산업 민영화론의 등장은 IMF 외환금융위기와 직접 관련된다.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은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기업체제 유지를 전제로 개편안이 모색되다가 경제위기 발발 이후 1998년 7월에는 이 방침을 바꾸어 한국전력의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배경으로 최근 공기업 민영화=구조개편론이 득세하면서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의 비효율성이 집중적으로 성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화의 이유도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부족한 외화 조달’이라는 명분이 내세워졌으나 그 이후 외환보유고가 늘자 한국전력의 과다한 부채, 방만한 경영 등 부실경영 때문에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전력산업을 이끌어온 한전은 그동안 고도성장을 뒷받침해 온 건실한 공기업에서부터 경제적 비효율의 대표적인 온상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다.

구조개편론자들이 제시하는 논거로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쟁이 없어 생산성 향상과 경영효율화의 유인이 부족하다고 하는 독점기업으로서의 폐해, 다른 하나는 주인 없는 공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을 꼽고 있다.

구조개편론에서는 전력산업의 비효율이 공기업과 독점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며 전력산업의 규모의 경제가 소멸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또 전력산업의 기술변화로 실질적인 경쟁 도입 가능하다고 보고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쟁적 시장구조 구축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적 상황이 찬반양론 불러
전력산업의 민영화에 대한 찬반 양상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에 있어서 전력산업의 구조적인 상황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산업 구조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전국 독점체제라는 점이다. 전력산업은 한전이 발전, 송전, 배전 및 판매를 수직적으로 통합한 독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000년 12월 제정된 전력산업 구조개편 법률에 따라 한전의 발전부문을 분리하고 화력발전 5개사 및 원자력 1개사 설립, 전력거래소가 출범되며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른 발전부문의 분할 및 발전경쟁체제가 도입됐다.

정부는 독점체제인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전력산업 투자 재원을 민간으로부터 조달하기 위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게 됐다. 1994~1996년 한전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고, 1997~1998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위원회’를 운영해 전문가 및 이해 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통해 전력산업 경쟁 도입방안을 검토했다. 그리고 1999년 1월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2009년까지 3단계를 거쳐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키로 했다. 1단계는 발전경쟁단계로 발전부문 분할 및 민영화 추진, 2단계는 도매경쟁단계로 배전 부문 분할 추진, 3단계는 소매경쟁단계로 완전경쟁을 실현하는 단계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에 따라 2001년 4월에 한전 발전부문을 6개사로 분할했고 2002년 4월엔 발전회사 민영화 기본계획을 확정, 남동발전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경영권 매각 방식으로 추진된 남동발전 민영화는 입찰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이 최종 입찰단계에서 입찰 참여를 포기해 무산됐다.

배전 부문의 경쟁도입을 위한 배전분할 계획은 노사정위원회 공공특위에서 공동연구단을 구성한 후 16차례의 회의를 개최하고 해외조사사례를 실시해 배전분할을 중단하고 배전 부문에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정책 권고를 수용하고 관련 연구용역을 거쳐 배전 독립사업부제 도입을 추진했다.

한국 전력산업은 전국 독점체제임과 동시에 공기업으로서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은 앞에서의 유형구분에 따른다면 공기업을 통한 전국적 독점체제에서 민간기업 위주의 경쟁체제로 전력산업의 구조를 변경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은 우리나라 전력산업을 전국적 독점체제에서 공기업을 분할해 경쟁체제로 전환시키는 한편 공기업을 매각, 민간기업 위주로 재편성한다는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은 시장구조 측면에서 본다면 장기적으로 발전과 배전 및 판매부문에서 경쟁을 도입하고 송전은 전력거래시장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경쟁도입 방법을 적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조개편론자들은 한국 전력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전력시장에 대한 정부규제의 문제, 소유구조에서는 공기업 경영의 문제, 시장구조 측면에서는 독점구조의 문제라는 세 차원에서 찾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시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는 전력산업연구회(회장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최하는 ‘경쟁으로 가는 전력산업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 세미나에서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다시 제기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문제를 다뤘으며, 특히 전력산업을 중심으로 경쟁도입과 민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외 공기업 전문가, 에너지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부터 시작해 전력산업 경쟁도입에서 제기되는 구체적인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다뤘다.

김현숙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공기업 민영화 경험과 성과를 분석해 공기업 민영화가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었음을 보여줬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참여정부의 공기업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정리하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공기업 정책방향은 경쟁도입과 민영화를 중심으로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또 전력산업에서 민간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주제로 발표가 이어졌다.

김영산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 교수는 새로운 정부가 경쟁도입과 민영화 방안를 정책방향으로 채택할 때 구체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와 새로운 이슈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이 진행되는 각 단계별로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 공급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 방안, 발전 및 판매부문의 경쟁도입 동시 추진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김영산 교수는 전력산업 판매부문도 소매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관심을 모았다.
전력산업 발전부문의 경쟁도입에서 오는 혜택이 최종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려면 판매부문의 소매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교수는 “전력산업의 소매판매부분이 여전히 송배전망과 통합돼 있어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력산업의 발전부문의 분할은 상당히 진전됐으나 소매판매부분은 경쟁이 도입되지 않고 있다”면서 “복수의 판매업자들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하기 때문에 전력산업 도매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며, 소매경쟁을 통해 수요의 가격 반응성도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소매경쟁 도입을 위한 방안으로 ▲배전과 판매를 묶어 분할 후 판매하는 방안 ▲한국전력의 판매부문을 이미 분할된 발전 자회사로 분할 이전하는 방안 ▲현 상태에서 판매부문만 개방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또 “발전, 판매 부문은 기본적으로 민영화 대상이며, 민영화 이전이라도 관련 사업자들을 한전의 자회사가 아닌 독립적 기업형태로 전환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업이 부채, 인력 등의 규모 면에서 너무 비대해졌고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노동조합은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력노조는 공기업의 민영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전력산업 구조개편 및 민영화 정책의 중단과 전력부문을 통합한 공기업 출범을 주장한 건의서를 대통령직 인수위에 지난달 전달했다.

전력노조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요금 폭등, 보편적 서비스의 중단, 전력공급대란 등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시장 경쟁과 규제 완화를 강조한 것은 공공성을 포기함과 동시에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적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정책건의로서 전력산업 구조개편 및 민영화 정책 중단을 촉구하며, 발전회사의 민영화 정책 중단, 전력관련사의 증시상장 등 기업공개 중단을 요구했다.

나아가 현행 원자력과 발전회사 및 한전을 재통합하고 전력과 관련된 설계, 정비, 연료, 전력통신 등 전력관련 산업을 통합한 전력공기업 출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력거래소를 폐지해 전력거래소 업무 가운데 전력 계통운영 업무는 통합 전력공기업으로 이관하고, 전력거래제도를 폐지해 경제급전시스템(EMS)으로 전력 계통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력 규제기관으로 출범한 산업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인 에너지위원회의 사무국으로 전환해 전력 및 에너지 정책의 전반을 관장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력노조는 이외에도 한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력산업의 해외진출을 국가적 차원의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력관련 제조업 및 공사업체 등 민간 기업과 한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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