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FR용과 풍력발전 연계설비 이어 태양광ESS도 불타
누적보급량 2000MWh 상회 올해만 1000MWh 넘어설 듯
전문가들 "인증체제 구멍 점검하고 소방안전대책 세워야"

한전 경산변전소에 설치된 주파수조정용 ESS 설비 전경. 컨테이너 내부에 리튬이온배터리들이 적층돼 있다.
한전 경산변전소에 설치된 주파수조정용 ESS 설비 전경. 컨테이너 내부에 리튬이온배터리들이 적층돼 있다.

[이투뉴스] 전력망이나 재생에너지 설비에 연결한 ESS(에너지저장장치)에서 배터리 등의 부품이상으로 추정되는 화재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사이 한전 변전소와 민간 풍력발전소 ESS가 화재로 전소됐고, 최근에는 태양광 전력을 충·방전하던 ESS가 불에 탔다.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나서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24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12MWh규모 전남 영암풍력 ESS가 배터리실에서 시작된 화재로 완전히 불에 탄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19MWh규모 새만금 햇빛누리태양광발전소 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17㎡ 크기 설비를 태우고 자정께 진화됐다. 중국계 태양광사업자와 B가 손을 맞잡고 설치한 이 설비는 최초의 기설 태양광연계 ESS사업으로도 주목을 받았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한전 경산변전소 ESS가, 작년 8월에는 고창 전력연구원 전력시험센터 ESS가 각각 화재로 불에 탔다. 한전이 석탄화력 FR을 대체하기 위해 설치한 ESS는 물론 산업부가 높은 보조금으로 설치를 독려한 태양광·풍력 연계 ESS 역시 화재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 2016년 울산전철변전소 화재까지 포함하면, 3년째 크고 작은 ESS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모두 국산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했고, 배터리가 적층된 공간에서 발화했다.

정부 당국 잠정집계에 의하면, 이달 현재 국내 누적 ESS설치량은 2000MWh를 넘어섰다. 이차전지를 비롯한 신산업을 육성한다며 정부가 ESS 충전요금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태양광·풍력 연계 운영 시 최고수준의 보조금(REC 가중치 5.0)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2015년 163MWh였던 연간 설치량은 지난해 625MWh로 치솟았고, 올해는 1000MWh를 가볍게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송·배전망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각종 공장·빌딩에 설치된 ESS에서 언제든 유사 화재·폭발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한전은 본지 보도(6월 18일자 1면 ‘펑펑 터지는 ESS 배터리, 잠자는 폭탄 될라’ 기사참조) 이후 신사업처 차원의 내부조사에 착수했고, 배터리 제조사들도 제품결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원인규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ESS정책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정작 강 건너 불구경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잇따른 ESS 화재와 관련,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워낙 설치개소가 많아 세세하게 상황을 알 순 없고, 리튬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많은 건 알지만 (화재원인이) 그 문제인지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원인규명이나 실태조사 필요성에 대해서도 “민간기업 일이라 조심스럽다. 아직 안전에 대한 이의제기나 규제강화 요청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본적인 품질 안전관리와 인증체계 등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성토한다. A 재생에너지기업 대표는 “산업부가 배터리 대기업들의 영업부로 전락한 이후 ESS를 신산업으로 포장해 왜곡된 제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최근 현장에서 다발하는 사고가 단순사고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런 제도를 지속 유지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ESS 배터리 역시 인증체계를 운영하는데, 인증제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제품과 기업에 대한 보증을 해주는 것”이라면서 “인증제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과거부터 진행된 ESS 관련 실증사업부터 최근 사고까지 일체 점검해 보완대책을 세워야 한다. 단순히 행정편의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나 제도가 최소한 안전개념을 챙기고 그에 걸맞는 보급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소방안전 전문가는 ESS 특성에 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선제적인 화재예방 및 재난대응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B 교수는 “축전상태 리튬전지는 다량의 에너지를 품은 폭발물과 같다. 화재로 열폭주 상태가 될 경우 진화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재발화 위험도 높다”면서 “ESS는 전기에너지와 배터리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치·운영·관리해야 하고, 별도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소방서 등 일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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