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6.27 3만호 정전사고도 반복돼 온 설비이상 원인
설계·기술 결함 규명 않고 육상 대형사업 확대 시 재앙

지난 6월 27일 제주 정전사고 때 HVDC 설비이상이 발생한 진도변환소 ⓒKAPES 홍보영상
지난 6월 27일 제주 정전사고 때 HVDC 설비이상이 발생한 진도변환소 전경 ⓒKAPES 홍보영상

[이투뉴스] 정부와 한전이 수조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육상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Transmission) 확충사업이 향후 ‘전력(電力)분야 4대강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같은 기술로 건설·운영중인 기존 HVDC가 지속해서 고장이나 정전사고를 일으키고 있고, 그 원인이 설계·기술 결함과 관련돼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어서다. 송전당국이 HVDC 확충에 투입하는 사업비 규모는 8조~10조원에 육박한다.

8일 전력당국과 계통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오전 8시 43분부터 20~30여분간 제주지역 3만1780호에 발생한 정전은 육지와 제주를 잇는 제2 HVDC 연계선로 2개 회선(Pole)이 동시에 작동 불능상태에 빠지면서 터졌다. 정전 20여분전 1회선 제어계통에 문제가 발생해 점검차 휴전(休電, 송전을 중단한 상태)하던 중 다른 회선마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장을 일으켜 제주로 보내지던 전력 80MW가 돌연 증발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제주지역 계통 주파수가 정상값(60Hz)에서 규정 하한선(59.2Hz) 아래(59.16Hz)까지 급락했고, 파급정전을 막는 장치(UFR)가 자동 동작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 일대 전력공급이 예고없이 중단됐다. 통상 이런 상황에서는 또 다른 연계선로인 제1 HVDC(해남~제주)가 상황을 즉각 간파해 필요부하를 대체 공급함으로써 주파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데, 이날은 제1 HVDC도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HVDC 연계선로 고장이 매우 잦다는 건 본지 보도(2월 12일자 ‘육지~제주 HVDC 툭하면 고장’ 기사 참조) 등을 통해 알려진 바 있으나, 선로 단순고장도 이번처럼 제주지역의 예기치 않은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2015년부터 이달까지 육지~제주 HVDC 누적 고장정지 건수는 13회에 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전의 긴급수전 조치 등을 통해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실제 고장정지 건수는 2~3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초고압직류 송전선로 운영 및 건설계획 현황. 최근 당국은 수도권 주변에도 HVDC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초고압직류 송전선로 운영 및 건설계획 현황. 최근 당국은 수도권 주변에도 HVDC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전사고가 발생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거래소, 한전 등으로 구성된 사고조사반을 진도변환소 현장에 급파, 원인 규명에 나섰다. 변환소는 육상에서 생산된 교류 전력을 해저케이블에 실어보낼 수 있는 직류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HVDC는 글로벌 소수기업이 독점하는 외산기술이라 고장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정전사고 역시 제1 연계선로 제어기 설계 문제 등만이 확인됐을 뿐이다.

제2 연계선로는 2012년 한전과 GE(옛 알스톰)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KAPES사가 관리운영한다. HVDC 설계-조달-건설-관리기업을 표방하는 KAPES는 통상 한전 고위직 출신이 CEO를 맡아왔다. 이 회사는 북당진~고덕 육상 HVDC사업을 건설 중이며, 향후 제3 제주 연계선로와 신한울~신경기(신가평) HVDC사업도 맡을 예정이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된 원전과 석탄화력 전력수송을 명분으로 육상 HVDC 건설을 추진 중이다. 약 200km 길이 동해~수도권 사업은 조만간 확정될 8차 장기송변전건설계획에 반영돼 있다. 만약 기존 제1,2 HVDC처럼 육상 HVDC에서 고장이 발생하면, 이 구간은 접속 발전설비가 대형인데다 수송량이 많아 그 파급영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북당진~고덕 수송량은 2GW(회선당), 신한울~수도권(EP 프로젝트) 송전용량은 무려 8GW에 달한다.

고장 여부는 차치하고 기존 제1,2 제주 HVDC처럼 설계용량대로 설비를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논란은 적지 않다. 수조원짜리 국가기간 전력설비를 절름발이 형태로 운영하는 셈이라서다. 일각에선 기존 제주연계선로에서 이같은 파행운영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선로당 하루 1000만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HVDC 선로는 최소 50~60년운영을 상정해 건설하며, 일반적으로 600km 미만은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본다.  

당국 한 관계자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사정이 이렇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라며 "공론화가 필요한데 한전 합작사란 이유로 아무도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학계도 동반 침묵하고 있다. 모두 자기 재임 때만 문제가 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미 건설된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아직 짓지 않은 건 분명 짚고넘어가야 수조원대 국민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통상 HVDC 송전선로의 고장확률이나 실제 고장정지는 기존 교류 송전선로 대비 크게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 건설된 HVDC의 경우 해외설비와 비교해도 과도하게 고장이 잦고, 문제가 발생해도 정확한 원인규명이나 설비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돼 왔다는 게 HVDC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편 대륙 동서간 장거리 송전을 위해 HVDC를 다수 건설 운영중인 중국은 고장이 잦은 HVDC가 기존 교류 선로에 미치는 파급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연계 HVDC를 아예 분리 운영 중이다.

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HVDC 설비는 파워스위치, 제어, 통신 등의 기술이 접목돼 하나의 송전선로 역할을 하는 복잡한 설비"라면서 "현재, 국내는 HVDC 설계 및 제조 기술이 없어 운전 중 문제가 발생해도 그 원인을 알기 어렵고 이번 제주계통 정전에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런 기초 기술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HVDC는 기존 AC(교류) 전력망과의 상호작용, 발전기와의 상호 작용, 신재생제어기와의 상호 작용에 의한 안정성 등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HVDC를 대량 도입한 중국이 최근  HVDC 안정성 문제로 결국 계통을 분리한 것이 단적인 예"라면서 "전력당국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HVDC 도입을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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