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역대 최대피크 때 DR자원 4200MW 대기하다 정부발표 당황
수요자원사업자 "정부가 원칙 훼손, 적극 활용해야 국민부담 낮춰"

▲한 전력수요관리사업자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고객사업장 수요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한 전력수요관리사업자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고객사업장 수요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이투뉴스] 원전 4기분 이상의 수요자원(DR. Demand Response)을 확보해 놓은 정부가 일부 보수언론의 네거티브 공세를 의식해 DR 발령조건이 충족된 역대 최대피크 때도 이 자원을 일체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전력 수요관리 중요성과 DR 효용성을 강조해 온 정부가 원칙과 소신도 없이 여론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전력수요관리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요가 역대 최대값(9248만kW)을 경신한 지난 24일에도 전력시장에 DR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오후 4~5시 사이 평균 예비력과 예비율이 최저 각각 709만kW, 7.7%까지 떨어졌지만, 미리 발령 가능성을 차단한 채 사실상 최대피크가 경신되도록 방조했다.

앞서 정부는 DR업계에 올여름 DR 발령조건을 목표수요 8830만kW 초과나 예비력 1000만kW 이하일 경우로 사전 통보한 상태였다. 또 산업부 소관 전력시장운영규칙은(제 5.3.1조 급전지시 조항) 동·하계 전력수급대책상 목표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당국이 DR을 발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따르자면 지난 24일에는 당연히 적정 DR자원을 투입해 최대 피크를 낮춰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정오께 산업부는 “공급측면에서 (수요가)대응 가능한 수준이고, DR 참여기업 의견수렴 결과 휴가철을 앞두고 다수기업이 조업 막바지라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돌연 DR 시행을 유보한다. DR 발령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업계에 조차 어떤 예고도 없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전력당국은 수요관리사업자들을 만나 이상 폭염에 대비한 자원관리를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업계 역시 "충분한 감축자원이 확보돼 있으며, 차질 없는 이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 스스로 DR 운용원칙을 깨고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자원을 묵힌 셈이다.

DR 업계에 의하면, 올해 7월 기준 당장 가용가능한 DR자원(등록용량)은 약 4.2GW에 육박한다. 2014년 1.5GW, 2016년 3.8GW 순으로 매년 자원을 늘려온 것도 산업부다. 현재 이들 DR시장에 지급되는 비용은 작년 기준 2000억원 안팎이다. DR은 언제든 가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제 발령여부에 관계없이 기본금(CP. 용량요금)도 지급한다.

하지만 올해 현재 DR사업자들에 지급된 정산금(기본금+감축실적금)은 작년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가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보상 매커니즘으로 운용되는 DR을 '강제절전'으로 왜곡하는 일부 언론을 의식해 원전 4기, 석탄화력 8기 분량의 자원을 놀리고 있다는 게 업계 인식이다.

DR사업자들은 수요자원의 본래 기능과 역할을 정부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내헌 수요관리사업자협회(매니지온 대표이사) 간사는 "24일 당연히 감축요청이 올 것으로 알고 미리 참여기업들과 단단히 준비한 상태였지만, 발령이 없어 참여기업에 졸지에 양치기 소년이 됐다"면서 "전력당국과 사전협의 때도 분명 DR자원을 믿고 마음껏 활용하라고 했는데, 이번 조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간사는 "고비용 발전소 건설 대신 1년에 몇번 없는 요즘과 같은 피크 때 쓰려고 만든 게 DR시장 아니냐. 참여기업들 자발적 동의 아래 시장에 형성됐고, 발령요건이 충족되면 정부가 자신있게 활용하면 되는데, 일부 언론 눈치나 보면서 기준을 산업부 스스로 어기고 있다"며 "이러다 오히려 DR무용론이 나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확한 기준도 마련돼 있고, 사업자들 역시 평소 끊임없는 DR자원관리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사업자로서 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니 제도를 만든 취지를 살려  요건이 되면 DR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전체 전력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 부담은 낮추는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전력업계 한 중진인사는 "나라가 원칙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번 최대 피크 때 예비력이 예상보다 낮아진 건 원전 부실운영, 엉터리 정비에 따른 것이지 수요예측 정확성이나 전력수급계획과는 무관하다"면서 "이미 수급계획은 올여름 이상기온과 예측 불확실성에 대비해 추가 예비력을 확보했다. 정부가 자신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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