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지진은 철저하게 불연속적이다. 전달되는 다양한 유형의 압력을 지각판이 쏟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흡수한다. 그러다가 지진에너지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고 지각판간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지진은 갑자기 발생한다. 필자는 몇 주 전 일본 고베의 지진박물관을 방문하였다. 1995년 6,300여명이 사망하고 1,400억 달러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진도 7.2의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참상은 필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진이 가장 두려운 이유는 예고 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태풍, 폭설, 폭우, 미세먼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예고가 가능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지만 지진은 대비할 틈 없이 발생해서 그 피해가 크다. 쌓이는 지진에너지가 임계치를 넘을 때까지 지각판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그 압력을 참아낸다. 차라리 조금씩 평소에 충격을 방출하였다면 한꺼번에 엄청난 지진에너지가 폭발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에너지산업에서는 외부적 충격이 방출되기보다 쌓이는 경우가 많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여 경제변수가 반응하면 경제주체가 이에 적응하여 자원이 탄력적으로 배분되는 방식으로 외부적 충격이 방출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력산업이다. 전력산업에서는 가격, 설비의 건설과 퇴장, 기업의 진입과 퇴출, 산업구조 및 소유구조에 정부규제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충격이 바로 방출되지 않고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규제가 심해 외부적 충격이 산업과 시장 내에 축적된다. 문제는 어쩔 수 없는 큰 변수가 나타나면 쌓인 충격이 일시에 폭발한다는 것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9·15 순환정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4년 이래 급등하기 시작한 국제유가로 석탄, LNG 등 연료가격도 동반상승하였지만 전기요금은 거의 오르지 못했다. 그 동안 전국단위 선거가 6번이나 있었던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전력을 제외한 다른 에너지는 충격을 어느 정도 방출하였지만 전력은 꼭꼭 그 충격을 내부로 흡수하고 있었다. 다른 에너지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전력으로 대체수요가 몰리기 시작하였다. 공급증가는 수익성 악화로 지지부진하였다. 그 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지진처럼 9·15 순환정전이 터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2016년 여름의 전기요금 누진제 사태이다. 사실 한전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여야 한다는 논의는 1990년대부터 계속 제기되었다. 꽤 오래된 이슈였다. 정부는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차일피일 미뤘다. 폭염이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발생한 2016년 여름에 마침내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발하였다. 누진제 문제가 소득재분배와도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저항은 걷잡을 수 없었다. 결국 6단계의 누진제가 3단계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안 올린다고 한다. 에너지전환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줄고, 재생에너지가 늘고, LNG 발전소의 가동률이 증가하였으며, 국제유가가 꾸준히 증가하여 연료가격도 올라갔지만 정부입장은 불변이다. 전기요금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매 전력시장도 ‘충격흡수’ 모드로 전환되었다. CP수준은 정상수준 이하이고 각종 기술적인 계수도 실제 지급하는 CP수준을 오르지 못하게 묶어 놓고 있다. 지역자원시설세도 변동비에 50%만 반영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도매 전력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산조정계수를 손보는 TF를 가동하고 있다. 

LNG 발전소는 가동할수록 손해라며 발전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전의 적자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2분기 영업적자가 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전은 공기업이지만 상장기업이다. 2011년과 2012년에 일부 주주들이 한전 사장과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소송을,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기술적으로 따지면 미국 뉴욕주에 외국인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한전 유가증권이 뉴욕증시에도 상장되었기 때문이다. 콩 값보다 두부 값이 싸다는 한전 사장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올 여름 기온이 심상치 않다. 히트돔(heat dome)으로 북반구 기온이 예년보다 꽤 높다. 국제 에너지가격도 오를 것이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할 시점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sbcho@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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