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예상은 했지만 관료들의 무사안일, 탁상행정, 복지부동은 그대로다. 에너지전환과 관련한 근래 정책속엔 어떤 혁신의지도 발견할 수 없다. 어제 하던 대로 해선 내일이 바뀌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에너지전환은 소리만 요란했던 구호나 최악의 경우 현 정부 실패 사례로 회자될 것이다.

전력계획을 조금 바꿨다고, 요로에 친(親) 정부 인사를 배치했다고 에너지전환이 실현되지 않는다. 한국의 전환속도는 개도국 이하다. 여기에 방향과 내용까지 부실하면 결과는 뻔하다. 이럴 바에야 속도를 늦추더라도 원점에서 전략을 재정비하는 게 낫다. 좌표없이 달리면 아무리 속도를 내도 엉뚱한 곳에 도착한다.

요즘 관가 안팎에선 대통령 혼자 에너지전환을 뛴다는 말이 나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나 환경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청와대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그 틈에 보수언론과 구태 세력은 현 정부 에너지전환을 길가의 깡통처럼 차고 다닌다. 그런데도 발끈하는 이 하나 없고 오히려 그들 심기를 살피기 바쁘다.

자기설득이 안되니 자신감이 없고, 동기부여가 안되니 되는 일도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왜 에너지전환을 이루려 하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할 관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윗물이 그럴진대 아랫물은 오죽할까. 적당히 시늉을 하면서 시간을 끌거나 제 실속 챙기기 바쁘다. 이쯤 되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애초 그들의 관심사는 에너지전환이 아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니 헛발질까지 해댄다. 산업부 장관은 원전수출하고 전기료 붙잡아 두는 게 상책인냥 뛰더니 최근에는 주변까지 챙긴단다. 관료들에겐 꼼짝 않는 게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니 바닥부터 들어내야 할 사안이 쌓여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권도 곧 바뀔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전기료 누진제 일시 감면, 해묵은 전력시장 현안 방치, 각종 재생에너지 규제 창출 등이 단적인 예다.

온실가스 감축과 화석에너지 전환에 앞장서야 할 환경부는 어떤가. 4대강 사업 때는 스스로 눈을 가리더니 갑자기 근본적 생태주의자가 되어 돌아왔다. 금수강산을 파헤지는 골프장과 스키장, 묘지는 괜찮지만 태양광만은 안된단다. 그 잣대로 염해간척지란 신조어를 만들어 생태 경계지를 파고드는 자본이나 한번 감시해 보시길. 머잖아 이래서 재생에너지도 공기업이 다해야한다는 다음 시나리오를 꺼낼 판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전환의 속도는 가속화 될 것이다. 정부가 나서든 말든 에너지전환이란 거대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강제로 변화를 요구받게 될 터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 때 대통령 메시지는 진심이었나. 그렇다면 지난 1년반 동안 정부가 몇발자국이나 움직였는지, 방향타가 어떻게 틀어져 있는지 직접 챙겨보시길 권한다. 적(敵)은 의외로 가까이 있고, 등잔 아래가 가장 어두운 법이다. 

혹여 에너지전환의 최대 걸림돌이 현 정부 자신으로 판명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마시길. 어차피 이 나라는 각료 인선도 대통령이, 하다못해 누진제 검토 결정도 대통령 몫이다. 여전히 한국 에너지산업은 관료사회가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할만큼 전근대적이다. 하루 아침에 산업과 시장을 바꿀 자신이 없다면 관료들부터 바꿔야 한다. 과연 위정자의 메시지는 명확한가. 갈 길은 멀고, 시간도 많지 않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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