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8차 전력계획서 발전량 변화·송전계통 미검토
8차 송변전계획도 대책 누락…전환정책 실현 '경고등'

[이투뉴스] 정부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중장기 에너지전환계획을 수립하면서 각 전원(電源)의 예상 발전량이나 전력계통 조류(흐름) 변화, 송전망 확충계획 등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력수급 여건이 완전히 달라지는 전환기 정책계획을 다루면서 설비용량만 따지는 옛 수급계획 방식을 고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전이 올 하반기 수립한 8차 송변전설비계획에도 에너지전환정책 이후 전력망 변화에 대한 대책이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수급계획 전문가들에 따르면, 작년말 확정된 8차 전력계획에 이어 지난 9월 8차 송변전계획이 발표됐으나 계획대로 전력믹스가 변경된 후 송전망 운영여건이 어떻게 변화할지, 대거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 경로로 전력을 수송할지 등은 다루지 않고 있다.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각 전원비중과 발전량, 조류 등이 시시각각 달라질텐데, 이를 간과하거나 경시한 산업부가 기존 설비증설 방식으로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과 원전 단계적 감축방안을 담은 에너지전환로드맵을 8차 전력계획에 최종 반영하면서 목표년도(2031년) 연간 발전량 전망치만을 제시하고 송전방안은 8차 송변전계획으로 미뤘다. 당시 산업부는 원전+석탄화력 설비용량을 2017년 50.9%에서 2030년 34.7%로 줄이고, 신재생은 9.7%에서 33.7%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또 2030년 발전량 목표 비중을 석탄 36.1%, 원전 23.9%, 신재생 20.0%, LNG 18.8% 등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이 때도 수급계획의 이행성을 담보할 송전망 확충계획이나 운영대책은 다루지 않았다. 이런 내용을 담겠다던 8차 송변전설비계획도 마찬가지. 한전이 작성한 8차 송변전계획은 기존 수급계획에 반영된 원전·석탄·LNG와 이미 접속신청이 끝난 확정 재생에너지 설비만으로 설비보강 계획을 세웠다. 8차 수급계획 재생에너지 누적설비  목표(58.6GW) 중 이미 계통접속 신청한 14.8GW외 43.8GW를 언제, 어디에, 어떤경로로 수용할 지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전력계획과 송전계획의 정합성 확보를 위해 7차 계획부터 송전계획을 선행, 또는 최소 동시 수립하고 계통계획도 사전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애초 전기사업법상 수급계획에 포함된 송전계획 업무를 고시로 떼어내 한전에 이관한 것도 정부다. 당국 한 관계자는 "최소 주요 간선망 계획이나 파급영향 분석 정도는 했어야 한다. 그걸 안하니 어설픈 HVDC(초고압직류송전) 확충계획만 나온 것"이라고 했다.

전력망을 고려하지 않은 에너지전환계획은 전력수급은 물론 계통운영 측면에서도 머잖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재생에너지 설비확충은 단기간에 가능하지만 송변전망 확충은 최장 10년 이상 소요되는데다, 재생에너지 특성상 수시로 발전량이 달라져 ESS나 다른 전원의 뒷받침이 필요해서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설비용량 확정 후 이를 발전량으로 환산해 기존 계통에 적용해 본 뒤 보강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수차례씩 반복한다.

입법부와의 소통도 필수다. 독일의 경우 수시로 의회에 전력계통 확충 이행사항을 보고하면서 기존 계획을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40%(에너지기본계획 잠정안) 등을 운운하면서도 머잖아 완전히 뒤바뀔 송전여건이나 선제투자 비용에 대해선 함구하는 분위기다. 지금이라도 통합 관점에서의 종합계획을 마련해야 대규모 송전제약이나 수급불안, 불필요한 송전망 투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계통 한 전문가는 "급격한 전환기는 설비를 일부 넣거나 빼는 방식의 기존 방식이나 시장보상 시그널 등으로 대처가 어려우므로 정부 주도 국가계획으로 종합대책을 세워야한다는 것이 앞서 나간 국가들의 권고 내용"이라면서 "그럼에도 전문가들조차 정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정부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외면하고 있다. 진정 에너지전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역시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고 판을 바꿔보겠다는 진정성이 아니라 에너지전환을 정치적 수사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정부에 재생에너지 20~40% 시대를 위한 사전준비를 독촉해도 모자를 판에 새만금에 가서 4GW 계획 발표하기 급급했다"면서 "3차 에너지기본에는 향후 수급계획 수립 시 정부가 책임지고 송전계획을 완전 재편한다는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통합 송전망계획 수립을 위한 투명한 플랫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재생에너지 컨설팅사 관계자는 "발전사업 허가단계부터 계통접속, 송전망 확충까지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 사업자 등 누구나 진행경과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자체 따로, 한전 따로, 거래소 따로인 현 구도로는 온갖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건 액션플랜이다. 지금처럼 컨트롤타워도 없고 문제에 관심도 없다는 건 무지하다는 뜻이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진정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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