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김선교] 지난 여름, 우리는 ‘뜨거운 여름이 무엇인지’를 자각했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선풍기만 애용하며 여름을 보내셨던 집안 어르신께서 에어컨을 주문하시는 것을 보고 111년만의 폭염이 무엇인지를 경험하였다. 가뜩이나 더운데, 우리를 열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며 크고 아름다운 기존 형식의 발전설비를 계속해서 지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기존 전력산업의 중심 세력이 있었다. 

거대함은 언제나 우리를 압도한다. 자연물이든 인조물이든 상관이 없다. 고속도로를 오가며 송전선로가 하늘과 태양을 가르는 모습을 무심코 지나치는 고압 송전선로의 총 길이는 2017년 기준 3만3955c-km에 이른다. 서울과 부산을 가로지르는 416km의 경부고속도로를 40번 왕복하는 길이보다 더 길다. 

구전으로 전달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불과 3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집 근처에 전봇대가 박히고, 하늘 위로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손뼉를 쳤다고 한다. 드디어 밤에도 불을 손쉽게 밝힐 수 있는 전기가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력설비가 일으키는 전자기파가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나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집과 토지 가격이 오르지 않는 문제는 이때는 인지되지 못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1882년 9월 4일 오후 3시, 에디슨이 뉴욕에서 최초로 중앙 집중식 전기 발전을 시작한 이래 전력산업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였다. 전력시스템은 지난 100여 년의 시간 동안 그 덩치를 키우고, 더 복잡해졌다. 혹자는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공학적 성취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에너지보다 안전하고, 손쉽게 전기를 사용하고 일상의 안락함을 즐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시스템을 앞으로도 더 크고 아름답게 구축하면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동기는 몇 마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중요한 것은 전력산업에 변화의 물꼬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되었고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F&S에 따르면 올해 재생에너지는 154.6GW가 설치될 전망이며, 투자 규모는 2283억달러(약 254조원)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규모인 4771억달러의 절반에 다다른다. 

우리 다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전력산업의 주요한 변화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의 확장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바람과 태양을 사용하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그 발전량이 급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력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데 근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도적인 연구자와 사업가들은 새로운 방식을 오래된 산업에 도입하였다. IT기술을 활용해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전력망과 발전기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스마트그리드(Smartgri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시스템을 완전히 변환시키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존재한다. 아파트 베란다 혹은 가로등에 부착된 태양광처럼 분산될 수도 있고, 얼마 전 발표한 새만금 태양광 발전단지 계획처럼 대규모로 구축될 수 있다. 위대한, 꿈꾸는 사업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몽골에 11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자원을 설치해 한·중·일의 전력망이 연결되는 동아시아 슈퍼그리드를 만들자는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2030년까지 200조원이 넘게 투자해 200GW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손 회장은 모든 국가의 재생에너지가 연결되는 세상이 50년, 100년 후 미래에 반드시 온다는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 에너지 전환의 끝에는 분산되고, 독립되고, 한편으로는 더 크게 연결된 전력시스템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태양과 바람이 있다.

2050년 인구는 현재 약 76억명에서 100억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선진국들의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와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에너지 소비는 지금보다 약 2배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빠르게 설치되고, 낮은 규모로 구축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이 지역의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전 세계 에너지 기술 R&D 투자가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에 쏠려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환(Transition)은 본래 사회적 변화를 내포하는 단어이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10년, 20년이 지나면 종료되는 과정이 아니다. 세대에 걸쳐, 시대와 시대를 지나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로 다가가는 빠르지만 느리고, 느리지만 꾸준한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은 그 과정의 출발점에 서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미래를 위한 논의의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정,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사회적 학습 과정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협의와 학습을 통해, 일상 속에서 에너지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갈망한다. 
 

김선교 박사(sunkyo@kis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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