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트렌드에 부응하는 기업, 뒤처진 정부
RE100 트렌드에 부응하는 기업, 뒤처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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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덕종 기자
  • 승인 2018.12.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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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드와이저는 100% 재생에너지 사용, 한국선 제도상 불가
[전문가기고] 이진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사업자와 장기구매계약 체결 시 재생에너지 선택권 확보 및 보급 확대 선순환"

▲이진선 그린피스 캠페이너
▲이진선 그린피스 캠페이너

[이투뉴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우리가 잃게 될지도 모르는 것 중에는 맥주도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연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맥주의 원료가 되는 보리 생산량이 줄고 있어, 갈수록 맥주는 더 귀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다국적 맥주 회사이자 오비맥주, 버드와이저를 판매하는 에이비인베브(ABInBev)는 2025년까지 전 세계 사업장에서 100% 재생가능에너지만을 사용하는 목표를 세웠다. 홈페이지에는 “맥주를 제조하는 것은 건강한 자연 환경에 의존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미국에서 제조해 판매하는 버드와이저는 이미 100% 재생가능에너지로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맥주병에 “Brewed with 100% Renewable(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제조함)”이라는 마크가 부착돼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버드와이저는 화석연료(67%) + 원자력(27%)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왜일까?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캠페인을 통해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은 관심이 있어도 정책과 제도가 없어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캠페인을 통해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은 관심이 있어도 정책과 제도가 없어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 일상으로 다가 온 기후변화 위협
사실 맥주는 예로 들었을 뿐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다. 이미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의 일상을 곳곳에서 위협하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도 그 중 하나다. 과학자들은 최근 세계 곳곳의 극단적인 한파가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겨울철 해빙이 줄고, 북극의 한기를 가두고 있는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지면서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온다. 지구 평균 기온은 올라가지만 한파나 대설과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은 잦아지는 것이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폭염에 이어 숨통을 죄는 미세먼지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정체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약 1°C 가량 올랐을 뿐인데, 이상 기후 현상과 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는 지구 평균 온도가 금세기 말까지 1.5°C 이상 오르면 안 되는 과학적 근거를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구평균온도 1.5°C 상승과 2°C 상승은, 비록 0.5°C 차이밖에 안되지만 그 결과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구평균온도가 1.5°C 오르면 2°C 오를 때보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환경 위험에 노출되는 인구를 최대 천만 명 줄일 수 있다. 이러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핵심적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재생가능에너지다. IPCC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를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50년 전 세계 소비 전력의 85%까지 재생가능에너지가 생산해야 한다.

◆기후변화 해결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들
세계적인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이 바로 기업들이다. 기업들은 세계 전력 소비의 40∼50%를 차지하고, 이들이 모두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을 약 15%까지 줄일 수 있다. 기업들이 변하면 우리는 훨씬 빠르게 기후변화의 위기와 미세먼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많은 기업들이 이미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58개 이상의 기업들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세웠다. 게다가 이 숫자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 50개 기업은 “이미"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고 있으며, 200개 기업은 절반 정도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RE100 참여기업 및 재생에너지 사용량(2018년 12월 17일 기준)
▲미국에서 기업들이 PPA 등 구매계약을 통해 조달한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지난 6년 간 빠르게 증가했다. 괄호  안 숫자는 기업별 연간 구매계약 체결 건수(자가설비 및 운영 중 설비 제외)

2011년 페이스북의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 선언 이후 선언에 동참한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늘어 지금까지 15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선언에 동참했다. 그리고 약 7년이 지난 지금 그 효과가 실제 세계에 나타나고 있다. 2017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의 기업들이 소비한 재생가능에너지 전력량은 약 465테라와트시(TWh)로, 세계 10위 전력소비국인 프랑스가 일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 소비량과 맞먹을 정도다. 만일 이 정도 전력을 화석연료로 생산했다면 발생했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도 줄일 수 있었다는 의미다.

◆RE100 참여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 창출
이익에 눈이 밝은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것이 기후변화 해결 이상의 이득을 기업들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사업자 또는 전력회사와의 장기 계약을 통해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구입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이 전력 구입 비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도 더욱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재생가능에너지 구매가 불가능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매년 탄소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대기업은 매년 탄소배출권 부족분 40만톤을 구매하기 위해 7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일 방법은 재생가능에너지 사용밖에 없는데도, 국내 제도 여건상 힘든 것이다. 한국에는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RE100 캠페인을 이끈 기후 그룹(The Climate Group)에서 발간한 보고서에는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운 기업들이 비슷한 다른 기업들에 비해 어떤 이점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100% 재생가능에너지 목표를 세운 기업들이 더 ‘잘 나간다'는 것. 3400여개의 기업들을 분석했고, 이 중 RE100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대체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할 순 없다 치더라도, 많은 기업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통한 비용 절감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보고서에는 제너럴 모터스가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으로 연간 500만 달러를 절약했다고 보고한 내용도 담겨 있다.

◆한국에서도 시작된 변화, 그 이유는?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린피스가 작년부터 진행한 캠페인에 삼성전자가 응답하면서부터다. 그린피스는 2017년 10월, 전 세계 주요 IT기업들의 친환경 점수를 분석한 보보고서 결과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에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세우도록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전 세계 5만 여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고, 삼성전자는 결국 올해 6월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발표했다. 2020년까지 미국, 유럽, 중국의 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월에는 SK하이닉스 역시 2022년까지 미국, 유럽, 중국에서 100% 재생가능에너지만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11월에는 모두 12개의 국내외 기업들이 모여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이행 계획을 수립, 발표할 것(재생에너지선택권 이니셔티브)’을 천명하고 ‘재생에너지 구매제도가 국제적 흐름에 맞춰 구축되기를 바란다’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두 곳의 삼성전자 협력업체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참여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렇게 앞다퉈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국제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은 100%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세운 글로벌 기업들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애플의 반도체와 칩을, LG화학이나 삼성 SDI가 BMW와 같은 전기차 업체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식이다.

애플, BMW 전부 100% 재생에너지 선언 기업이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요 협력업체인 우리 기업들에게도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애플의 공급업체 23곳은 이미 100% 재생에너지 전환에 동참했다. 얼마 전 발간된 포스코경영연구원 보고서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로 “점차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적은 국내 기업들의 입찰수주 활동, 외국계 기관(펀드) 투자 유치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된다"는 점을 짚었다. 이와 같이 글로벌 고객사들의 요구, 투자자와 소비자들의 관심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사용에 관심 갖는 국내 기업도 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국내에선 달성 불가 
글로벌 트렌드에 더 밝은 건 역시 정부보다는 기업이다. 정부는 2030년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고작 20%에 맞추고, 야당과 친원전 세력은 이것조차 지나치게 빠르다며 공격하고 있는 사이 기업들은 100% 재생가능에너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실 글로벌 트렌드에 밝은 정부도 세계에 몇 몇 있긴 하다. 전 세계 57개 국가가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목표를 세웠으니까 말이다.

세계 경제 규모 순위 5위로 남한 전체 GDP보다 큰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2045년까지 주 전체 전력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게다가 우리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들어갈 2040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겨우 25%로 하느냐 40%로 하느냐를 두고 다투고 있는 동안, 선진국들은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구매를 통해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열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가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와 확대를 견인해온 미국이나 유럽처럼, 구매를 열어주면 산업이 성장하고 그 비율도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이미 국가 전체 전력의 20% 가까이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미국은 특히 전력구매계약(PPA)과 같은 직접 구매 방식이 시장과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기업들의 구매를 통해 2018년 10개월간 신규 설치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용량은 약 5GW에 달한다. 미국은 덕분에 재생에너지 산업 일자리도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돌아가는 논의를 보면 시장이 클 수 있는 환경은 막아 놓은 채 우물 안 개구리 논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국내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막아 놓은 채 에너지 전환을 논하는 꼴이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구매 제도를 도입해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100% 재생에너지’ 라벨 단 맥주 마시려면
무엇보다 기업들이 장기 계약을 통해 발전사업자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자가 발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를 구매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고, 각각 장단점이 다르다. 글로벌 시장에서 구매 방식의 트렌드는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이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발전사업자에게서 직접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기업들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모두에게 비용적 측면의 안정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늘리는 데에도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 요금제를 제공하는 ‘녹색요금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해외사례들을 보면 ‘녹색요금제'는 어떻게 설계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겉으로만 ‘친환경 증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기 계약'이 가능한 방식으로 적정 요금이 책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와 설비를 실질적으로 늘리고, 더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구매에 참여할 뿐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운 국내 기업들이 그 목표를 국내로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또한 장기 계약이 가능해져야만,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가 바뀌더라도 에너지전환의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곧 “100% 재생가능에너지” 로 만든 수많은 맥주 종류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진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캠페이너 jinsun.lee@greenpea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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