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고위험 수출 대신 출구전략 찾을 때"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투뉴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2009년 12월 27일 20조원 규모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 소식이 전파를 탔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대선 과정의 투명성 문제로 지지율이 바닥이던 이명박 정부로선 단숨에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였다. 당시 정부는 이날을 ‘원자력의 날’로 정하고 원전수출산업화전략을 수립했다. 2012년까지 원전 10기,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5000억원의 R&D자금을 투입해 기술자립이 미진했던 기기 및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을 착수했다. 2500명의 UAE 투입인력을 확보하는 계획을 수립, 석·박사 양성을 위한 국제원자력전문대학원도 조기 개교했다. 또 10개의 원전 특성화대학을 지정하는 야심찬 인력양성대책도 추진했다. 호기로운 수출목표는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모든 원전 가동중지, 독일의 탈원전 정책발표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원전수출정책은 변함없이 추진됐다. 동시에 자원외교를 명분으로 상당규모 적자투성이 해외투자까지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머잖아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1년 2월 언론을 통해 UAE에 28년간 100억달러의 수출금융을 장기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로부터 불과 10여년전 IMF 국가부도 사태 시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돈이 200억 달러이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당시 야당은 이면계약으로 원전을 수출했다며 국정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금융조달 능력은 이후 프로젝트 수주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2013년 전후 터키와 베트남 입찰에서 일본에 연달아 패했다. 시장소멸로 절박해진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한 조건의 프로젝트 금융을 제안한 것이다. 여기에 그해 8월 원전수출 리베이트로 8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마침 원전부품 품질인증서 위변조 사건까지 터지면서 복마전으로 얼룩진 원전사업의 민낯이 드러났다. 또한 UAE 수출계약 후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미국승인 과정에서 원 설계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규제기관으로 상당한 금액이 빠져나가면서, 단독수출이란 포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확인됐다.

원전은 국가 최고보안시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자체 금융조달로 건설·운영해 투자금을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수십 년의 투자회수 기간 중 핵 테러나 안전 및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이로 인한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UN상임이사국도 아닌데다 일본 수준의 경제력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는 후세에 큰 짐을 떠안길 수 있다. 최근 UAE 바라카원전이 상당한 규모의 정비사업을 국제입찰로 띄웠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국제분쟁 조정능력 한계에 따른 것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에너지전환정책과는 무관한 듯하다. 원전사업 여건 자체도 악화되고 있다. 저렴해지는 재생에너지와 점점 비싸지는 원전 발전원가의 장기적 변동성과 대형 건설사업의 간헐성은 대형 적자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건설한 웨스팅하우스도 프로젝트 간헐성에 따른 막대한 적자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2006년 한화 6조원에 도시바로 인수되었다. 자국 4기 건설 중 발생한 적자로 고전하다 올 초에는 캐나다 투자펀드에 5조원에 인수합의 되었다. 이와 달리 정부가 원전사업을 추진하는 우리나라는 사업적자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이처럼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전수출을 감행하려는 이유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앞뒤 따져보지 않고 원전수출이 애국인냥 무조건 추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원전시장은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의해 주도되어 현재 수출가능 지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찌감치 재생에너지에 집중하는 유럽은 신규수요가 거의 없다. 그나마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은 경쟁에서 이미 탈락했고, 민감기술을 확보하려는 사우디와 체코 정도만 남은 상태다. 체코는 러시아의 VVER 노형만 6기를 운영하고 있어 러시아를 뿌리치고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경우 입찰참여는 가격협상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다. 민감기술 확보에 관심이 많은 사우디는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능성이 거의 없는 20조원 규모 사우디 원전수출에 목매는 동안,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현지서 보란 듯이 200조원짜리 태양광사업각서를 체결한다. 이미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수출시장 규모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나마 한 가지 원전수출 가능성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하는 수출에 국제 분업 형태로 참여하는 정도다. 2009년 무리하게 원전수출을 성사시킨 이후 2030년까지 80기를 목표로 야심찬 수출정책을 추진했지만, 지금까지 수출실적은 ‘0기’이다. 지금도 재생에너지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고, 원전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이 시장에서 지난 정권이 무리하게 원전수출을 도모한 것은 지지율 반등이라는 정치적 목적과 이에 편승한 자원외교 비리와 같은 부가적 목적 외에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까지 원전 수출정책으로 방만하게 운영되었던 인력과 조직은 당연히 합리적으로 축소 조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핵심 설계기술 인력과 핵심 기기 공급업체를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원자력과 일반 산업에 적용 가능한 기기는 사업전환 등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핵심 설계인력과 기기공급자에 대해서는 기술력 보호를 위해 재생에너지 등 비원전분야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우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 시 이들의 참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풍력연구소처럼 원전 설계자는 해상풍력발전 설계 참여도 가능하다. 또한 원전 안전밸브와 열교환기, 계측기인 MMIS 등은 비원전 분야로 얼마든지 적용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핵심역량을 유지시키는 전략의 조기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급망은 설계자가 잘 관리할 수 있는데, EPC(설계자가 구매 및 건설) 형태의 사업구조가 취약한 우리나라 원자력계는 특히 기술적으로 세심하게 잘 관리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확장일로였던 전국 원자력공학과는 신입생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부과정을 굳이 운영할 필요가 없다. 해외의 경우처럼 에너지공학 또는 유사 기계공학과에서 일부 다룰 수 있으며, 주로 대학원 과정에서 충분한 연구비와 함께 소수 정예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주로 원전 플랜트 설계를 위한 교과목으로 구성된 원자력공학과는 원자력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요가 그리 많지 않으나 가동원전 안전을 위해서는 꾸준한 인력양성이 필요하다.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원전보다 시장잠재력이 훨씬 큰 방사선 응용분야의 산업화를 촉진할 것이 요구된다. 미국의 경우 원전시장 보다 방사선 응용 산업분야의 시장규모가 실제 4배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산업 규모가 방사선 산업 보다 9배가 오히려 더 크다. 원자력산업계는 고급직업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하며, 이미 시장이 포화된 원전건설과 원전수출만 계속해서 고집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지난 정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한 원전수출에 목을 맬 때가 아니다.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투자위험성은 매우 높다. 냉정하게 원전시장의 현실과 미래, 에너지시장의 세계적 추세를 직시해 최적의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원자력 안전과 함께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의 성공과 원자력 산업의 다양성 확장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immjy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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