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에너지 우리가 바꾸자’…주민들이 직접 나서 교육-실천
20년이상 노후주택 감안 단열강화 등 에너지집수리로 업그레이드

[이투뉴스]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마을인 난곡. 별칭으로 낙골·낙굴·난골로 불린다. 유래에 대해선 여러 설이 분분한데 조선시대 명장 강홍립 장군이 유배돼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서울지명사전)이 가장 유명하다. 과거 없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난곡동은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인구가 점차 감소해 60세 이상이 21%를 차지할 정도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20년 이상된 노후 건축물이 83.7%에 달한다.

난곡동은 과거 오랫동안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에 나섰으나 여건이 좋지 않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후 서울시가 도시재생마을로 지정, 새롭게 재정비에 나섰다. 난곡난향이라는 명칭은 마을 유래에서 따왔다. 난(蘭)이 많은 골짜기에 난초 향기가 가득하다는 의미다.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얘기다.

에너지자립마을은 기후변화위기에 대응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단위의 에너지절약과 효율향상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외부에너지 수요를 최소화,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사업이다. 난곡은 에너지자립마을에 앞서 먼저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해 서울시가 추지하는 도시재생연계형 에너지자립마을에 선정됐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본 난곡동은 우리가 20년 전쯤 살았던 전형적인 도시 뒷골목 모습이었다. 2층 집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반지하와 1, 2층) 다가구주택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과거 일요일 아침이면 순돌이가 나오던 ‘한 지붕 세 가족’ 드라마 2층 집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요즘은 단독세대 등이 늘어나면서 한 가구에 5∼6가구가 사는 곳도 적지 않단다.

올해로 에너지자립마을 2년차 난곡난향마을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위치도 및 에너지 지도.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위치도 및 에너지 지도.

◆ 마을주민 교육부터 차근차근, 축제까지
“난곡난향은 2017년 2월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된 후 이어 7월에 도시재생 연계형 에너지자립마을으로 지정됐어요. 처음에 주민들은 100가구의 LED조명을 교체하는 것이 에너지자립마을인줄 알 정도로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어요”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을 도와주는 김순희 코디네이터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난곡에너지자립마을 회원들은 교육과정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매주 1회 회의와 10여 차례의 교육과 강의를 진행했다. 주민들에게 노후주택 단열부터 시작해 기후변화, 에너지효율개선,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진행했다. 또 태양광자동차 조립, 천연향토 샴푸 만들기, LED 스탠드 만들기 등을 통해 청소년을 포함한 다양한 층의 관심을 유도했다. 이런 교육을 처음 접하는 주민들도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점차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이후 에너지절약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함께 서울에너지드림센터와 산골마을 등으로 탐방을 통해 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지식 쌓기와 함께 앞선 자립마을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배워 나갔다. 아울러 LED조명등 교체와 미니태양광 설치 등을 실천하면서 에너지자립마을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주민들이 자주 모여 소모임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에 에너지사랑방을 조성해 창호 및 단열재 실물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여기 모여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마을 축제는커녕 장터 한번 안 열리던 마을에서 에너지 축제도 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 기대도 안했지만 자전거 돌려서 솜사탕을 만드는 부스 앞에 긴 줄이 섰다. 또 태양광으로 분수가 나오는 걸 보며 물장난을 하는 어린이들과 쓰레기를 가져오면 페이스페인팅을, 에너지 퀴즈를 맞추고 선물도 받으며 즐거워했다. 당시 유종필 관악구청장도 방문해 직접 에코마일리지 가입을 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재미를 느끼고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단체채팅방에 집에서 불을 소등하고 촛불 켠 사진을 올리는 등 활동가들이 점차 늘었다. 철저한 에너지절약으로 전기요금이 2만원 넘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에너지절약 대가들이 곳곳에서 탄생했다.

◆지역현실 고려해 에너지+집수리 접목
처음 1년차에 다른 지역 에너지자립마을에서 하는 보통의 에너지절약 홍보활동과 에너지진단 등을 통해 효율화 방법 등을 알려줘 일부 성과도 냈지만, 난곡난향 마을주민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냐며 섭섭해 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도움도 그다지 받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곡은 공동주택이 대다수인 여타 자립마을과는 전혀 다르다. 20년이 넘는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이곳은 전기코드를 뽑고, 형광등을 LED로 바꾸는 것으로 에너지절약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없는 구조다. 집 자체가 단열이 안 돼 에너지가 많이 샐 수밖에 없는 노후건물이 90%에 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곡은 2년차인 올해 에너지와 집수리를 결합한 에너지집수리팀을 출범했다. 

전문가를 모셔 단열-창호, 도배, 장판 등을 실제 실습하는 집수리교육을 2주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단열(폼블럭)과 도배·장판, 콘센트 교체, 틈새바람막이 설치 등을 주민들 스스로 진행했다. 저소득층은 외부지원을 받아 무료로 해주고, 회원은 재료비를 내면 서로 품앗이 형태로 집수리에 나섰다. 얼마 전에는 KT 도움을 받아 집수리 학교도 열었다.

▲에너지-집수리를 병행하는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에너지-집수리를 병행하는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태양광발전시설 설치 등을 통한 에너지생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외부에서 지원이 들어 온 미니태양광을 설치하고, 일부 주민들은 자비를 들여 태양광패널을 달았다. 특히 마을주민 10명이 모여 태양광 빌리지를 신청, 에너지공단 지원을 받아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들까지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경로당, 유치원 등에는 보일러 분배기를 설치해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까지 난곡난향 마을은 외부 지원을 많이 받아서 에너지 절감 및 생산 관련 시설물 설치가 이뤄지고 있다. 돈을 받더라도 실비 수준으로 받고, 주로 봉사를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면 직접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너무 무료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너지집수리에 품앗이 형태를 도입한 것도 비용은 최소화하되, 주민들이 함께 느끼기 위해서다.

◆에너지자립마을 100곳…향후 발전방향은?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이종열 대표는 명함이 없다. 대표 역시 자립마을 회원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인식을 유지하지 위해서다. 그는 별도의 생업이 있을 뿐 아니라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에너지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집수리 소모임에 들어 같이 배우고, 봉사활동 등을 나누며 에너지 분야의 중요성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이종열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대표.
▲이종열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 대표.

“관악구 관내에서 집수리 봉사단을 하다가, 교육을 통해 이곳 주민들과 알게 됐어요. 교육을 받다가 저층 주거지역은 집수리에 대한 요구가 많으니,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판단아래 전기·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하시는 분들이 모여 집수리를 했어요. 여기에 올해 들어 에너지자립마을+집수리가 합쳐져서 병행하게 됐습니다”

이종열 대표 역시 처음에는 ‘콘센트를 빼는 등 궁상 떨고 살아야 하나’는 물론 ‘우리가 아낀다고 얼마나 아껴질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틈새바람막이 시공을 받은 후 공사 전에는 전기요금 7만원이 나왔는데 3만원으로 줄어 너무 좋다는 분들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한 분, 한 분씩 전파되고 옆집에서 앞집 등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특히 에너지절약과 효율화를 해보니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혀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등을 끄고, 콘센트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곳은 나무로 만든 오래된 창호입니다. 아파트 등의 경우 절약이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지만, 여기는 집을 고치지 않고서는 에너지절약을 말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이런 특성을 살려 에너지와 집수리를 병행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고, 이제 실천방안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난곡난향 에너지자립마을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종열 대표와 정관남 부대표, 김순희 코디네이터는 에너지자립마을 미래에 대한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3년차가 지난 후 졸업을 하면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다. 졸업 이후에는 에너지자립마을에 대한 서울시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에너지자립마을이 이제 100곳 입니다. 서울 각지에서 적잖은 고생을 하면서 열성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가 많이 양성됐어요. 하지만 사업이 끊기면 이 분들이 당장 할 일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봉사만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죠. 성대골마을처럼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을 꿈꾸고는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아요. 자립마을이 사회적 경제를 꿈꾸고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더 많은 고민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에너지자립마을 추이.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조성 추이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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