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헌 농업법인 성우 대표의 첨단 돈사·지역에너지순환센터 도전기

▲이도헌 농업법인 성우 대표가 홍성 신축 돈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도헌 농업법인 성우 대표가 홍성 신축 돈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이 구역에 설치된 센서만 13개입니다. 온도, 습도, 복사열,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농도까지 측정해 서울 여의도에 있는 클라우드 서버로 보냅니다. 그러면 서버가 돼지 체감온도 등을 계산해 최적 상태로 환기시설이나 히터를 제어합니다. 필요한 만큼만 설비를 돌리니 에너지비용도 최소화 됩니다."

이도헌 농업법인 성우 대표<사진>가 돼지가 출하된 3번 비육사 내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실내온도는 15℃. 난방을 하지 않았지만 단열이 잘돼 한기(寒氣)가 없다. 2~4개월 돼지 270여 마리가 들어찬 건너편 육성방은 26.5℃를 유지했다. 이 대표는 “돼지도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해줘야 잘 먹고 잘 자란다. 올여름 바깥이 41℃까지 올랐을 때도 여긴 26~27℃를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남리 성우 돈사(豚舍). 깔끔한 콘크리트 복도 양쪽으로 각 우리로 통하는 문과 쪽창이 따로 있고, 각방은 격리된 채 별도 팬(Fan) 제어기가 환기를 조절했다. 수천두의 돼지가 수시로 쏟아내는 오물은 줄무늬 바닥 홈으로 빠져나가 700톤 규모 지하 분뇨저장고로 직행했다. 분뇨 배출-수집-저장과정이 모두 돈사 내부서 이뤄지니 악취가 한결 덜했다.

2017년 7월 완공된 이 축사는 이 대표의 고민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2013년 여름 폭염에 그는 자식같은 새끼돼지 100여 마리를 잃었다. 농장 CEO가 된 첫 해였다. 빚을 내 돈사에 에어컨을 달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뭄에 관정까지 말랐다. 매년 이웃과 경쟁적으로 더 깊이 지하수를 팠다. 기후변화가 자신의 삶에 그처럼 지대한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분뇨저장시설을 축사 지하에 만들어 악취 발생요인을 줄였다.
▲분뇨저장시설을 축사 지하에 만들어 악취 발생요인을 줄였다.

사실 돼지농장 사장이 되기 전 그는 잘 나가던 금융인이었다. 증권사에서 파생상품을 처음 다뤘고, 뉴욕 주재원으로 월가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기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 해외 자문역 등을 거쳐 임원 땐 CDM(청정개발체제) 펀드에도 관여한 경험도 있다. 그러다 2010년 사표를 던졌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결과물이 쌓이는 일을 하며, 평생 지속가능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2개월간 여행 삼아 전국을 유랑하다 우연한 계기로 농업법인 성우의 3대 주주가 됐다. 양돈은 시설원예, 양식 등과 함께 그가 현직에 있을 때 투자자들에게 추천한 농업종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구제역이 터졌고, 수입돼지가 밀려들어오면서 돈가(豚價)가 폭락했다. 가뜩이나 생산성이 낮던 농장은 사료값을 못 댈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 “속아서 투자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창피했다”고 했다. 유상증자를 거쳐 계획에도 없던 농장의 새 CEO가 된 배경이다.

농장 재건은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자신은 최저임금을 받고, 기존 비정규직 직원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 월급을 올렸다. 수시로 투명하게 성과를 공유하고, 5년 이상 근속한 직원은 대학 등록금을 농장이 댔다. 돼지값이 바닥이라 가장 어려울 때 거꾸로 돼지 키우는 사람들에게 투자했다. 사실상 파산한 농장이 돈가 회복과 함께 생산성 전국 1% 이내 우량 농업법인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산을 넘어서니 준령이 나타났다. 기후변화와 한계에 다다른 국내 축산업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홍성을 비롯한 충남은 경작지 대비 축산밀도가 높아 소위 ‘경축순환농업(耕畜循環農業)’이 어렵다. 자체 소화하지 못하는 분뇨를 정화해 흘려보내고 있지만, 환경에 부담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면, 양돈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똥공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발상을 바꿨다. 이 대표가 찾은 해법은 첨단농업과 자원순환이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축산은 첨단기술을 동원해 대응력을 높이고, 축산은 에너지 생산과 접목해 비용을 수익으로 바꾸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런 도전은 새 터전이 된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에서 마을주민이 주축이 되어 시도되고 있다. 이 대표는 마을발전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틈날 때마다 온난화가 농업에 끼칠 영향과 마을단위 에너지자립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제 원천마을 주민은 기후변화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작년초에는 농림부 가축분뇨에너지사업자로 선정돼 지역내 축산분뇨로 운영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 110톤 규모 이 설비가 내년 4월 준공되면,  250~350kWh 규모 전력이 생산돼 지역내 분뇨를 자체 처리하면서 친환경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수익을 내기보다 자체 발생하는 분뇨를 처리하면서 마을 전체의 자원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일부 농지에 시범적으로 포플라나무를 심어 연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포플라는 일반 작물대비 온실가스를 최대 15배 이상 빨아들이는 속성수이자 발전연료다. 소규모 발전시설에서 발생한 폐열은 마을 유리온실로 공급돼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현행 농업정책과 관련, "인구는 줄고 쌀은 남는데, 언제까지 직불금만 지급할 것인가. 가칭 에너지직불금을 만들면 추가 예산 필요없이 축산폐수와 농촌경제 활성화 등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서 "정부 부처간 사일로 뷰(Silo view)가 문제다. 농림부와 환경부가 각각 투입하는 예산보다 훨씬 적게 들이면서 큰 효과를 낼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농업 역시 제철, 반도체, 자동차처럼 에너지집약 산업이 된지 오래”라면서 "해외 사례를 복사한 모델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는 지역에너지순환센터를 만드는 게 이번 바이오가스 사업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가 운영하는 홍성 돈사는 첨단농업의 시험무대다. 에너지와 물을 적게 쓰면서, 앞으로 심화될 온난화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모델을 완성하는 게 그의 포부다. 실제 성우 돈사는 내부로 유입되는 모든 공기가 땅속에 묻어놓은 파이프를 거친다. 지열을 이용해 별도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덜 차갑다.

지역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농장은 언제나 시험이 허용된 혁신농업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가끔 뉴스를 보면,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단 생각이 든다. 전기료 등 에너지비용은 현실화 할 수밖에 없다"면서 "가장 안타까운 건 농촌에 대한 차별과 무지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현 정책들이 과연 그 기조에 맞게 추진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홍성=이상복 기자 lsb@e2en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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