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근래 들어 에너지 문제 특히 전력수급이나 환경과 관련된 사안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미세먼지, 온실가스 감축, 전기요금, 에너지절감 등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체를 통해 상이한 관점에서 이슈의 재생산이 이워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엉켜있던 전력산업의 묵은 숙제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온 느낌이다. 

계획과 같은 중요한 정책들이 공론화, 언론보도, 찬반논의, 이해집단의 주장, 정부나 전기사업자의 대응, 각종 위원회, 국회 등 다양한 형식의 의사표시와 논의절차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비전과 목표, 추진과제 등을 보고 있자면 눈에 익은 데자뷔를 보는 느낌이다. 비슷한 내용과 논리가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 전력산업의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전력산업의 비용구조도 전력시장운영도 전기요금체제도 국가차원의 에너지믹스도 환경문제 대응도 모두 각각의 그림은 있되 제대로 연계되지 않고 있다. 담대한 목표와 로드맵은 산발적인 시책과 검증하기 어려운 수치들로 채워진다. 시대가 변하고 전력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크게 바뀌었지만, 이 분야의 정책 프로세스나 관행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은 아직도 견고한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벋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이루어진 정책에 얽매서인지 아니면 성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새로운 일을 만들기 싫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라서인지... 이제라도 전력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과거의 구조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앞장서서 하려고 하지 않는 구조와 제도와 생각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지금 우리 전력산업이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기요금 정상화다. 2000년 들어 전력산업 미래를 위해 많은 정책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전력 IT와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신산업 육성, 신재생에너지 보급, 수요반응(DR)과 분산전원 확대, 환경오염 및 온실가스 감축 등이 녹색성장이나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정책구호 아래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산업을 새롭게 형성하고자 기술개발, 보급지원, 기반조성, 제도화 등 다양한 수단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보조금이라는 비효율적인 방식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시장전환을 통해 자생력을 갖춘 산업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전기요금이다. 문제를 알고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기요금이다. 소비자 부담이나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복지와 같은 틀에 박힌 주장과 정치적 부담을 빌미로 기형적인 전기요금체제는 전력산업과 동떨어져 움직이고 있다. 요금문제는 흔히들 주장하는 요금수준보다도 요금체제와 구조가 더 큰 문제다. 비용, 시장가격 등 요금의 변동요인을 주기적으로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요금체계에 있다. 요금의 관리주체도 주무부처나 중립적인 기구와는 동떨어져 있고, 요금조정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정쟁이나 여론의 향배를 바라보는 형국이다. ‘요금조정메커니즘’ 시행을 비롯한 요금문제 정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 전력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가 에너지믹스의 문제이다. 전기에너지는 국가생존과 경쟁력에 있어 필수적 재화이다. 특히 우리처럼 자원이 빈약하고 에너지를 해외 공급선에 의존하는 여건에서는 더욱 더 중요하다. 에너지원의 안정적인 확보, 저렴한 공급, 환경과의 조화, 부존자원 활용의 극대화 등은 에너지정책 결정의 핵심요인이다. 최근 ‘에너지전환’정책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로만 강조되고 있는 현상이 과연 우리나라 에너지의 미래를 온전히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전기에너지의 70%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석탄과 가스, 열병합발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에너지는 현실이다. 경제 상황이나 에너지 가격 그리고 안전과 환경문제에 대한 압력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에너지믹스는 달라질 수 있다. 목표가 비록 원대하나 시행이 따르지 못하거나 방향이 불확실하다면 계획의 신뢰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제라도 이러한 변동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시나리오 개발을 통해 국가계획의 대응력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 에너지전망이야말로 에너지계획의 기본적인 기능이자 핵심내용이다. 현재 우리 에너지수급의 현실을 토대로 앞으로 10년, 20년 이후에 예상되는 경로를 통해 에너지전망과 믹스를 제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력시스템의 재구축이다. 대규모 발전단지, 화석연료, 초고압 원거리 송전으로 특징되는 현재의 전력시스템을 친환경 고효율 분산전원 확대와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기술진입에 대응하여 재구축하여야 한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전력계통 영향이나 변동성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즉, 새로운 기술수요에 맞추어 전력시스템 설비를 재구축하고 운영기술을 확보하여야 한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전력시스템 계획을 명확히 한다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논란과 우려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고 있는 변화가 전력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되어 우리 전력산업에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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