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국제사회에서 인류생존을 위한 공동과제로 정착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교토의정서와 달리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키로 하는 등 강력한 '발리 로드맵'을 채택함으로써 미국도 "당장은 아니지만 2009년까지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내놓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결국 교토의정서에 따른 의무적 감축이든, 각국 정부와 기업의 자발적 감축이든 앞으로는 함부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는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인 우리에게 큰 부담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2013년 이후 감축의무를 지게 될 경우 소요되는 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연간 49억달러(약 4조5800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의무감축분 전량을 사들인다는 전제 아래 나온 금액이다. 국민 한 사람이 1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해 에너지다소비 기업의 경우 막대한 감축비용을 지불하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발 앞서 탄소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탄소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보유한 민간기업 등이 판매자가 되고 공기업이나 정부, 조기 감축실적을 원하는 국내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사고 파는 형태를 만든 ‘프로젝트 탄소시장’이 전부인 상태다.

 

이런 정부의 소극적인 대책으로는 팽창하고 있는 국제탄소시장에 편승하기엔 버겁다.

 

이에 본지는 국내외 탄소시장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유럽과 같은 할당량 거래시장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최근 제시한 국내 탄소배출권시장 개설과 관련한 향후과제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점검했다.

 

 

◆국제 탄소시장 현황

탄소시장이란 기본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을 의미하며 관련사업 전반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도 총칭된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이 체결되면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에 소유권이 설정되고, 배출권의 수급에 따라 배출권 가격이 형성되게 됐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의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한 것은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당시 도입된 ‘교토유연성체제’로 시장기능의 도입을 통해서 신축적으로 배출가스를 감축하는 ‘배출권거래(ET)', '청정개발체제(CDM)', '공동이행(JI)'이 핵심이다.

 

배출권거래란 비용 효율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국가나 기업이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청정개발체제와 공동이행은 감축비용이 싼 다른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이를 자국의 감축실적으로 인정받도록 한 제도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크게 할당량 거래시장(Allowance-based Markets)과 프로젝트 거래시장(Project-based Markets)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각 시장은 교토의정서상의 규정에 따라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컴플라이언스 시장(Compliance Market)과 규정에 상관없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자발적 시장(Voluntary Market)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할당량 거래시장에서 EU ETS(European Union Emissions Trading Scheme)는 대표적인 컴플라이언스 할당량 거래시장으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에 모두 적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EU ETS의 상당 부분은 장외거래로 이뤄지고 있으나 장내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EU는 27개국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을 설정한 후 잉여분 및 부족분을 거래토록 하고 있는데 올해 이후 감축의무 불이행에 따른 벌금이 인상될(이산화탄소 톤당 40유로에서 100유로)될 예정이어서 배출권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또한 EU는 EU ETS의 국제표준화를 꾀하고, 국제협상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EU ETS에 역외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어 지역별로 분리된 탄소시장 간의 연계도 강화될 전망이다.

 

EU ETS의 대표적인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으로는 ECX(European Climate Exchange), Nordpool, Powernext가 있다. 2006년 EU ETS에서 배출권 거래규모는 244억달러 규모로 2005년의 79억달러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에너지 관련 기업과 같은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헤지펀드 등과 같은 투자자의 시장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거래되는 상품 또한 EUA(EU Allowance)뿐만 아니라 EUA 옵션, EUA와 CER 간의 스왑 등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유럽에서의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감독은 일반적으로 시장이 개설돼 있는 국가의 금융감독 당국이 담당하고 있다.

 

CCX(Chicago Climate Exchange)는 대표적인 자발적 할당량 거래시장이다. 이 시장은 자발적이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시장으로 2003년 거래를 처음 시작한 이후 현재 회원수는 약 300개에 이르고 있다.

 

거래소 회원들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의 연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베이스라인으로 해 2010년까지 최소 베이스라인의 6% 이상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이런 목표치 기준 하에 배출 허용량이 결정되고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회원은 그 초과분을 거래할 수 있다.

 

기업들은 CCX에 가입함으로써 홍보효과와 더불어 향후 온실가스 감축이 의무화될 경우에 대비할 수 있고, 실전경험을 조기에 습득해 세계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탄소시장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편 프로젝트 거래시장의 90% 이상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과 연관돼 있다. 2006년 컴플라이언스 프로젝트 거래시장의 규모는 약 55억달러로 2005년 29억달러에서 90% 증가했다. 또한 자발적 프로젝트 거래시장은 2006년 1억달러로 2005년의 4400만달러에서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 CDM 사업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치를 제시한 교토의정서의 감축 의무가 실질적인 이행기간(2008∼2012년)에 돌입하면서 국제적인 탄소시장 규모는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 규모는 2005년 110억달러로 커졌다. 2006년에는 300억달러 선을 넘어섰다. 세계은행은 2010년 15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아직 프로젝트 거래시장만

현재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상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돼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없으므로 컴플라이언스 거래에 참여하기는 어렵고 CDM사업 참여를 중심으로 한 자발적 거래만을 고려할 수 있는 실정이다.

 

3월 24일 현재 우리나라 CDM 사업은 17개 사업이 UN에 등록돼 있고 예상 감축량 기준으로 전세계 CDM 사업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UNFCCC의 승인이 필요한 CDM사업과는 별개로 현재 우리나라는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07년 12월말 현재 103건의 감축사업이 등록, 승인됐으며 이들 사업에서 예상되는 감축량은 연간 이산화탄소 205만톤에 달한다.

 

지난해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신국가 전략’에서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를 통해 발급한 감축실적(KCER)을 탄소시장을 통해 거래하는 ‘프로젝트 거래시장’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배출권 공급을 위해 2005년 에너지관리공단에 등록소를 개설, 50여건의 감축사업을 관리해 왔다. 이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약 205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등록소에 오른 모든 감축실적이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매매가 가능한 실적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나머지 분량을 정부가 톤당 5000원에 사들인 뒤 신재생에너지 공급협약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공기업에 판매한다는 것이 정부의 탄소시장 활성화 방안이다.

 

정부는 지난해 46억8600만원을 들여 94만CO2ton의 분량을 샀다.

 

또한 정부는 감축실적이 높아 UNFCCC의 승인이 필요한 CDM 사업 수준인 것은 CER시장에 수출하고, 미국시장이 인정하는 감축실적은 CCX에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KCER을 통해 정부는 국내 프로젝트 시장을 확산하고 자발적 감축목표 형성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내 탄소시장 단계적 진화 방안이다. 

 

 

◆탄소시장 활성화 위해 풀어야 할 숙제

우리나라도 앞서 말한 KCER 등의 프로젝트 거래시장과 더불어 증권선물거래소가 탄소배출권 시장 개설을 준비하고 있는 등 탄소배출권 시장 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정한 연구위원은 유럽에서 할당량 거래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향후 할당량 거래시장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은 우리나라에 감축의 의무가 부과되기 이전에 개설되어 감축의무 이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탄소배출권시장 개설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초기단계에 있어 시장개설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구 연구위원은 밝혔다.

 

구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선 탄소배출권에 대한 법적 형태에 대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해외에서 많이 거래되고 있는 탄소배출권 선물과 같은 탄소배출권 관련 파생상품의 경우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2009년 2월부터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에서 ‘자연적ㆍ환경적ㆍ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하여 가격ㆍ이자율ㆍ지표ㆍ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은 파생상품의 기초자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소배출권 자체에 대해서는 일반상품인지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CCX와 같이 자발적 할당량 거래시장으로 개설된다면 회원에 대해 감축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현재 증권선물거래소 회원은 증권거래법상의 증권업 허가를 받은 법인 또는 선물거래법상의 선물업 허가를 받은 법인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정부, 기업, 개인 등 이 자발적으로 규제제도를 도입해 감축사업을 개발한 CCX와 같이 다양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권 시장의 회원자격의 범위를 현재의 증권선물거래소 회원자격 범위보다 확대해야 한다.

 

2006년 유럽에서 EUA가 과다하게 보급돼 가격이 급락한 사례에 비춰볼 때 배출권이 과다하게 보급돼 배출권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도록 해 배출권 거래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감축의무 위반에 대한 벌금은 배출권 가격의 상한선이 되기 때문에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벌금도 높게 설정돼야 한다.

 

배출권 할당방식에는 경매 또는 무상배분 방식이 있는데 경매방식은 신규 참여자에 대한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상배분 방식은 절차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비중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신규 참여자에게는 어떤 방식을 적용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탄소배출권과 관련이 높은 419개 기업 대상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거래에 대한 인식수준은 76%로 높은 편이지만, 이 가운데 거래에 참여할 계획이 있는 회사는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시장을 개설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탄소배출권 거래 불참이유 중 50%가 관련 정보부족인 것으로 나타나 홍보 및 교육을 통한 탄소배출권 거래에 대한 정보제공이 시급하다는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부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장의 유동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부는 시장 참여자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탄소배출권 시장의 국제적 연계도 시장개설 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탄소배출권은 세계적인 관심사인 만큼 거래소 간 교차거래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개설된다면 해외사례를 통해 거래규칙 및 절차, 참가자격, 거래단위, 규제, 품질 등을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설정해야 향후 시장 간 연계에 원활히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발적 거래시장을 개설할 경우 엄격한 인증(verification) 절차를 통해 해외 컴플라이언스 거래시장과 유사한 상품의 질을 유지해야만 시장간 연계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장 개설과 관련한 매매ㆍ청산ㆍ결제 등에 대한 인프라 구축은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해 효율적이면서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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