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2018년 1월 사이 韓 납품 中 난징공장 생산 JH3모델
배터리 품귀 때 공장전환 과정서 결함 가능성…초동대처 비판 거세

▲화재로 전소된 ESS 설비
▲화재로 전소된 ESS 설비

[이투뉴스] 2017년 8월부터 이달까지 발생한 20건의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중 LG화학 비중(배터리기준)은 11건이다. 그런데 이중 대다수가 특정기간 현장에 납품 설치된 특정 배터리 모델로, 제품 자체결함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배터리 제조사가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도 보상책임 탓에 쉬쉬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투뉴스>가 2018년 6월부터 이달 15일까지 발생한 LG화학 ESS화재 11건의 상업운전 착수시점을 확인해 봤더니, 화재는 대부분 2017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현장에 설치된 JH3(1~3시간 주기용) 배터리에서 났다. 불이 난 시점은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납품받아 설치한 동일 배터리 모델이란 공통점이 있다.

실제 작년 6월과 7월 발생한 군산·해남 태양광연계용 화재를 비롯해 충북 영동 태양광(18년 9월), 경북 영주 태양광(18년 11월), 충남 천안 태양광(18년 11월), 문경 태양광(18년 11월), 거창 태양광(18년 11월), 충북 제천 시멘트공장(18년 12월)부터 올해 1월 양산 고려제강, 완도 태양광, 장수 태양광 등의 ESS 설치시기가 2017년말~작년초로 겹친다.

ESS화재 원인은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나 전원관리시스템(PMS) 오류 및 통신 설계결함 등 다양하지만, 특정시기 설치된 특정모델(JH3)서 화재가 집중 발생했다는 점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들 발전소에 해당 모델이 납품될 즈음, 국내서 배터리 품귀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발전사들에 따르면, 정부가 ESS연계용 재생에너지 설비와 피크저감용 설비에 최대 5.0의 REC(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를 부여하면서 2017년 상반기부터 작년 하반기까지 내수시장에 ESS수급난이 발생했다. 공교롭게 이 기간 LG화학 중국 난징 전지차 배터리공장은 현지 보조금 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전기차 공장을 ESS용으로 서둘러 전환해 내수용 JH3모델을 공급하는 과정에 품질하자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ESS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 영양풍력, LG화학 자사 오창공장 등에 대량 설치한 JH2는 화재가 한건도 없는데, 유독 난징공장 생산분으로 추정되는 JH3모델에서만 반복해 불이 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LG화학 측이 분명한 해명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이 사태로 모든 ESS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대기업은 한두달 영업을 못해도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심각한 생존위기"라면서 "(화재가 안나는) 해외공급용은 리스크를 안지려고 오창공장 생산분을, 국내판매용은 난징생산분을 뿌렸다는 가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LG화학의 미온적 대응은 작년 하반기까지 ESS화재로 홍역을 치른 삼성SDI의 대처와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ESS전문가에 의하면, 배터리는 비정상적 고전압 상황이나 이상 발열이 있더라도 이를 BMS나 PMS가 사전 감지해 화재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돼야 한다.

하지만 초창기 연속 화재 때 삼성SDI ESS는 내부단락(서지) 등에 문제가 있었고, 이를 간파해 모든 제품에 별도 보호장치를 달았다. 작년 10월 한전 용인변전소 화재 이후 삼성SDI 배터리는 더 이상 화재가 없다.

업계는 LG화학 배터리 화재 중 8건이 최대 충전(90%) 상태에서 방전 대기중 발생한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는 이미 충전 완료된 상태인데, 이를 BMS 등이 인지하지 못해 과충전하면서 과열을 일으켰거나 배터리 셀 내부 화학적 결함으로 충전상태를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ESS 한 전문가는 "동일 모델 중 특정공장 생산품에서 문제가 있다는 건, 품질관리나 서로 상이한 설계 문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 LG화학 내부서 정말 모른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아직 배터리 화재에 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산업계는 LG화학의 이런 리스크 대응을 두고 '호미로 막을 것을 불도저로 막고 있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과거 일본 소니가 리튬배터리 안전관리에 실패해 세계 시장서 도태된 사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전 세계 배터리시장 선두라도, 한번 소비자 신뢰에 금이 가면 이를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고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 스마트폰 배터리 초동대처가 데자뷰로 떠오른다. 만일 그때 삼성이 손실을 우려해 제때 대처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삼성은 없었을 것"이라며 "(LG화학은)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남탓 만 하고 있다. BMW 결함 은폐와 다를 것이 없다"고 직격했다.

화재원인을 배터리만의 문제로 단정하긴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 조사위에 관여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당장 화재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터리는 물론 설계상의 배터리 정보 주기 문제, 과열에 대한 보호시스템 작동 등 총체적인 문제를 짚어내야 향후 열화에 따른 추가 화재를 방지할 수 있다"면서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조치와 더불어 국가 차원의 배터리 과부하 테스트 및 정밀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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