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SS, 보급량만 1등 안전은 꼴찌였다
한국 ESS, 보급량만 1등 안전은 꼴찌였다
  • 이상복 기자
  • 승인 2019.02.0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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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뒤늦게 日 안전기준 등 본떠 4월 KS표준 제정 추진
수소가스, 온도변화 예측제어 실패 등 민간 지목 화재원인 눈길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단상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이)가 31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전기에너지저장시스템 안전 요구사항 KS표준안 공청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단상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는 이)가 31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전기에너지저장시스템 안전 요구사항 KS표준안 공청회’에서 KS표준안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정부가 전기요금 특례할인제, 최고 수준 보조금(REC) 지급 등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에너지신산업 대표선수로 육성한 ESS(에너지저장장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여태껏 기본적인 안전기준도 없이 ESS를 설치·운영했고, 화재사고가 잇따르자 뒤늦게 해외 안전기준을 본떠 KS기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일각에선 전 세계 시선이 한국에 몰려있는데 단기 사태수습과 봉합에만 급급,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ESS 관련기업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기에너지저장시스템 안전 요구사항 KS표준안 공청회’를 열고 ESS 표준기술연구회 주도로 수립 중인 KS표준안을 공개했다.

관심은 뜨거웠다. 180석 좌석이 금세 동났고 바닥에 주저앉거나 아예 회의장 내부로 진입하지 못해 복도에 선 채 설명을 듣는 참석자도 다수였다. 이 자리에서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ESS 표준기술연구회 위원장)는 ESS 안전과 관련한 국내외 기술기준과 기준제정 현황, KS표준안(KS C IEC62933-5-2) 등을 발표했다.

국표원과 연구회에 따르면, 리튬이온전지와 관련한 기술기준은 미국 UL 1642(UL9540A)를 비롯해 IEC 62619의 뿌리인 일본 SBA S 1101 등이 있다. IEC(International Electronical Committee) TC120은 배터리 ESS 안전성시험에 대한 인증을, WG5는 화재 및 폭발사고에 대한 기술기준을 각각 준비·제정 중이다.

TC120은 동경전력(TEPCO) 소속 타시로 팀 리더가 이끌고 있는데, 이 그룹의 주요 관심사는 인버터 스위칭 소자 단락과 이차전지 지락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국 소방방재협회는 2017년 NAPA855로 ESS 설치기준을 제시했고, 이듬해 UL9540A로 리튬이온전지의 열폭주 현상(Thermal Runaway)에 대한 시험기준을 강화했다.

반면 국내서는 전지업계 자체 평가기준인 KBIA 10104(KS IEC62609) 이외에 사실상 ESS 시스템에 대한 별도 안전기준이 없다. 일찍이 리튬전지의 화재 취약성을 간파한 일본이 2013년부터 3년간 논의를 벌여 기존 외부단락, 과충전 평가 외에 열폭주시험, 버닝테스트(내연소성) 항목 등을 추가한 것과 비교된다.

노대석 교수는 “일본은 리튬을 비롯해 나스(NaS) 등 여러종류의 배터리에 대한 시험과 운송, 설치를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 기준을 꼼꼼하게 만들었고, ESS 위해요인을 전기, 기계, 폭발, 전자기파, 화재, 온도, 화학, 통신오작동, 환경(외부) 등 9가지로 규정했다”면서 “국내서도 화재원인에 대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여기에 다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ESS 대량보급에 목을 맬 때 앞서 화재를 경험한 일본 등은 위해요인을 짚어내고 그에 걸맞은 기술기준을 만들어 사실상 국제표준을 주도해 온 것이다. 국표원의 이번 KS표준안은 IEC 기준의 원형격인 일본 SBA 기준을 그대로 번역해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다. ESS 보급은 세계 1위지만, 안전은 꼴찌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공청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참석자들이 회의장 밖 복도에 서서 발표내용을 듣고 있다. 180석 규모 회의장에 300여명이 몰렸다.
▲공청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참석자들이 회의장 밖 복도에 서서 발표내용을 듣고 있다. 180석 규모 회의장에 300여명이 몰려 일부 참석자는 발길을 돌렸다.

물론 안전기준을 만들었다고 모든 위험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ESS의 핵심요소인 리튬전지, PCS(전력변환장치), 통신장치, 전력계통 등이 완벽해도 장비 누적 사용기간이 길어지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면 기존 장비 성능과 내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설계, 보호장치, BESS(배터리저장시스템)가 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고, 적절한 유지보수도 필수다. 리튬배터리 ESS의 고유성능은 우수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조건이 충족돼야 안전이 담보된다.

노 교수는 “PCS를 하는 사람들은 배터리가 완벽할 것이라 믿었는데 설치하다보니 아닌거다. 마찬가지로 배터리 회사는 PCS를 모르고, 점검은 전기만 아는 업체가 하는 식”이라며 “배터리는 아는만큼 정직하고 아는만큼 성능이 나오고 아는만큼 안전하다. BESS 대규모 화재시험이라든지 환경시험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재시험은 셀 단위 배출가스 함량 농도측정이 포함돼 있으며, 가스안전공사의 기존 방폭시험설비를 활용해 랙(Rack) 단위까지 혹독한 조건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번 ESS 안전 KS표준안을 오는 3월 30일까지 e나라 표준인증 홈페이지에 예고고시하고,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4월 KS표준을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사고조사위는 가급적 6월을 넘기지 않고 원인규명과 관련시험 일정을 완료, 산업계 파급영향을 최소화 할 계획이다. 이때까지 기존 신규 ESS 설치 유보조치와 ESS 전면가동 중단조치는 유지될 공산이 크다.

국표원 전기전자표준과 관계자는 '설치유보 조치가 얼마나 더 유지될 것이냐'는 시공업체 질의에 "우리쪽은 KS안을 제정하는 부분을 담당해 언제까지라고 답변할 위치가 아니다"라고 비켜섰다. 또 기존 설비 KS 소급적용에 관해선 "KS는 임의표준으로 소급개념은 없다"고 답했다. 국표원은 "정상적 프로세스라면 국제표준 제정 뒤 1년이나 지나 국가표준으로 갈텐데 (이번에는) 긴급도입했다. 아직 시험장도 결정안됐지만 기준이 있어야 논의가 되고 구체화된다. 그걸 위한 시발점이 KS라고 보면된다"고 말했다.

미궁에 빠진 화재원인의 단서가 퍼즐처럼 제시된 것은 그나마 이번 행사의 성과다. 사고조사위에도 참여 중인 노 교수는 해외기준을 설명하는 과정에 이달까지 발생한 21건 ESS 화재 중 배터리 운송설치 중 바닥에 떨어진 전지가 내부 충격을 받아 화재로 이어진 사례가 몇건 있다고 했다. 또 안전관리시스템의 하나인 환기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전자기파에 특히 예민한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통신오류를 일으킨 경우 등도 사례로 거론했다. 화재원인이 각양각색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절연이 파괴된 리튬배터리가 주변 배터리로 열폭주를 일으키며 확산되는 이유가 배터리 내부서 발생한 수소가스 때문이라는 주장도 처음 나왔다. 셀 내부서 과충전 등 전기적 쇼트현상이 일어나면 온도가 급상승하고, 배터리 내부 전해액에서 수소,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하면서 이중 수소가 일정농도(4~75%) 이상 들어찬 상태서 불꽃을 만나 폭발해 다른 ESS로 불길이 급속 확산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런 주장을 편 A사가 제공한 해외 배터리기업 시험데이터에 의하면, 리튬배터리 1Wh당 수소발생량은 0.1cc로, 일반 400Wh급 셀은 열폭주 시 40cc가량의 수소를 생성시킨다. A사 대표는 "열폭주 원인은 수소가스다. 리튬배터리 내부 전해액으로부터 방출되는 다량의 수소가 부피대비 4% 농도만되면 자연발화한다"면서 "하지만 화재사고 후 흔적없이 모두 날아가면서 원인분석을 못한다. 이런 점들을 시험분석 단계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셀(Cell) 별로 온도차가 발생하면 허용 충방전 전압과 전력도 달라지는데, 이를 무시하고 일정량의 전압과 전력을 가함으로써 자기용량을 초과한 과충전이 셀을 과열시켜 화재로 연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배터리 재생전문기업 R사 A연구소장은 "예를 들어 배터리를 25도에서 100% 충전했다가 방전대기 상태에서 영하 7도가 되면 20% 과전력이 돼 셀 파손이 시작되고,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 열화로 화재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R사는 또 ESS 장치는 직렬로 200개 이상의 배터리를 연결하면서 사용횟수(Life-cycle)에 따라 개별 저항(Impedance)차가 발생, 충전량을 70%이하로 줄여도 저항이 높은 셀에선 100%의 전압과 전력이 인가돼 결국 발화로 연결될 수 있으며 모듈과 랙, 컨테이너 내부의 온도 분포가 불균일해 상대적으로 열을 더 받는 부위부터 발열이 시작된다고 지목했다.

A연구소장은 ①배터리 셀을 개별제어가 아닌 중앙제어로 변경하고 ②각 셀을 온도 유추방식으로 개별 제어해 과열을 막아야 하며 ③300사이클 전후로 급격히 나빠지는 셀 특성은 자가성능 복원 기능으로 200개 직렬 셀이 비슷한 저항을 유지토록 하고 ④유동해석을 통해 현행 밀폐식 케이스가 아닌 개방형으로 공기흐름을 순환시켜 컨테이너 내부 온도의 균일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 소장은 "전지회사가 충전용량 제어가 안돼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이 현상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충전용량 상한을 제한하고 있으나 이는 (화재를) 조금 늦추는 것이지 근본대책이 못된다"면서 "결국 기존 BMS회로와 케이스를 완전 변경해야 한다.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면 원인 규명이 어려워진다"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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