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찬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강희찬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강희찬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강희찬] 2019년 초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23개 공공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키로 했다. 23개 사업의 면모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여러 번 예타사업을 신청했으나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탈락한 사업들이다. 필자도 그중 몇몇 사업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평가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나, 소위 비용-편익 비율이 턱없이 낮아 탈락시킨 기억이 있다. 이러한 공공사업을 시행하게 되면 투자한 공공예산(비용)에 비해 여기서 얻는 사회적-경제적 편익이 너무 낮아 그 차이만큼을 다시 정부 예산으로 매년 메워나가야 할 사업들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사업들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예타 없이 사업을 시행한다고 한다. 예타제도는 지역균형발전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예타제도를 한국에 들여왔던 건 당시 너무나도 절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의 대형 SOC 사업들이 정치적 파워로 결정되면서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이르는 예산이 투명한 판단 근거 없이 몇몇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들 정부 돈이 지역 개발에 제대로 활용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경제성 없는 사업이 우후죽순으로 차고 들어오면서 제대로 운영도 못되고 일부는 방치되거나 지역의 흉물로 남은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예타제도가 필요한 것은 국가 전체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정부 예산은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돼야 한다.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예타다.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부터 정부예산이 배분돼야 한다. 이런 우선순위를 무시한 채 예산이 배분되어 버리면 국가에서 정말 시급한 부분에 대한 국가 예산이 불충분해 국가의 안보나 장기경쟁력에 그만큼 손실이 되는 것이다.

혹자는 국가 공공서비스 사업을 꼭 경제성의 논리로만 판단해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이는 ‘예타제도=경제성판단’이라는 왜곡된 시각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타제도에는 경제성 항목뿐만 아니라 ‘지역균형’, ‘환경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게 된다. 물론 예타사업에서 경제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만일 그렇다면 예타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수정을 하면 된다.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현재의 예타제도의 문제점에 관해서 연구하게 하고, 이 연구결과를 국민들과 소통하여 지역균형이나 환경영향 부분에 대한 가중치를 조정해 나가면 된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소모적인 절차를 걸쳐 예타제도를 수정하여 국가사업을 평가하여 진행하는 것과 그냥 정부 판단 하에 몇몇 지역균형효과가 있는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주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이 핵심이다. 아무리 시급성도 중요하고 몇몇 지역의 불같은 요구도 중요하다 하더라도 합의와 조정 그리고 설득의 과정 없는 민주주의는 독단에 불과하다. 정부는 초인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므로 민주주의는 사람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절차 혹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사업을 내 맘대로 바꾸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스템을 바꾸고 이를 통해 사업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둘째, 모든 국가사업에는 수혜자가 있으면 피해자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타사업은 이러한 피해자를 꼼꼼히 따지고 이들을 어떻게 보전해줘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계획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과정이 생략돼 버리면 목적 달성에만 매몰되어 이들 피해는 너무 쉽게 간과될 수 있다는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다. 

셋째,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국가사업의 우선순위나 배분순서가 사회 전체적인 편익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몹시 왜곡된 선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리인으로 뽑은 정치인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정치인의 목적함수는 우리의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결정된 국가사업은 특정 지역만의 이익은 대변할 수 있지만,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항상 최선의 결과라고 보장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 추구 속에서 더 많은 이권의 개입 가능성으로 인해 폐해는 역사가 우리에게 물려준 교훈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예타 면제 조치를 거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예타제도에 한계가 있어 공공사업 추진이 어렵다면 이를 수정하려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급성은 이해하지만, 민주주의는 독단이 아닌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