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천연가스 시장 '쥐락펴락' / 유럽서 실력행사…동아시아 진출 '눈앞'

 

에너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없으면 아쉬운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에너지는 종종 국제 외교에서 자원빈국을 협박하는 무기가 된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권을 러시아 소치에 빼앗긴 평창 군민들은 가즈프롬이란 생소한 러시아 기업을 잊지 못한다.

 

IOC 위원들의 표심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가즈프롬의 물량 공세와 이 국영기업의 실질 총수인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의 회유 앞에 소치로 마음을 돌렸다.

 

푸틴 뒤에는 가즈프롬이, 가즈프롬 뒤엔 천연가스란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러시아 천연가스 시장 현황과 가즈프롬의 실체를 <이투뉴스>가 들여다 봤다.

 

◆ 세계 천연가스 시장 '쥐락펴락' = 러시아에 매장된 천연가스는 확인 매장량만 약 348억톤(47.65tcm ; 1tcm=7.3억톤). 전 세계 매장량의 26.3%가 러시아 차지다.

 

러시아는 국내 에너지소비의 절반 이상(55%)을 천연가스로 쓰면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매년 1억3100만톤을 수출하고 있다.

 

핀란드와 슬로바키아 등은 전량을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고 불가리아 97%, 터키ㆍ체코 각각 70%, 독일 36%, 이탈리아ㆍ프랑스 등도 각각 26%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전체 가스소비의 25%에 해당한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이유다.

 

러시아는 최근 유럽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즈프롬은 지난해 노르웨이 석유ㆍ가스사인 스타트오일하드로의 지분 24%를 인수한데 이어 지난 1월 세르비아 정유사인 NIS의 지분 절반을 사들였다.

 

오스트리아 OMV의 지분 50%도 가즈프롬 몫으로 넘어온 상태다. 마음만 먹으면 유럽 에너지 시장을 쥐고 흔드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같은 장악력을 바탕으로 최근 주요 수입국에 대한 실력 행사에 나서고 있다.

 

15억달러의 가스 채무를 진 우크라이나는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러시아 측의 경고를 받고 이미 전액 변제를 약속한 상태다.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봐야 득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유럽국가들의 심기는 편치 않다. 우크라이나의 굴욕이 언제든 자신의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국가들이 러시아 중심의 '가스 OPEC'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주시장과 동북아시장도 러시아 천연가스 산업의 영향권 아래 진입하고 있다. 유럽시장은 PNG(파이프라인) 방식으로, 동북아 시장은 LNG 방식으로 시장 다변화가 진행되는 추세다.

 

러시아는 무르크만에서 600km 떨어진 쉬토크만 가스전을 개발, 2014년부터 10bcm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는 북미나 유럽으로 팔려나갈 예정이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을 마케팅 대상으로 개발된 사할린-2 가스전은 올해 말부터 생산에 돌입해 연간 960만톤의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이중 170만톤이 한국으로 수입될 예정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에너지 자원개발을 민간이 아닌 국영기업 주도로 추진되고 있고, 국가의 자원수출 통제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며 "수출 다변화가 추진되는 만큼 세계 시장에서 러시아의 입김은 계속 커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 러시아에서 가즈프롬의 위상 = 가즈프롬은 러시아 에너지 시장의 중심축이다.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ㆍ전략화를 위한 정책 이행기관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세계 가스생산량의 19.4%가 이 회사를 거쳐 생산된다.

 

앞서 러시아는 2005년 정부지분 100%로 설립한 국영기업 로즈네프트를 통해 가즈프롬의 지분 10.74%(약 73억달러)를 사들임으로써 정부 소유분을 38%에서 50.002%로 늘린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3300억달러로 1위 페트로차이나(중국), 2위 엑손모빌(미국) 등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1조달러로 높이는 게 가즈프롬의 당면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러시아의 독점 가스수출사업자로 지정된 가즈프롬은 현재 정부 정책지원을 등에 업고 러시아 석유ㆍ가스 산업의 수직, 수평 통합을 꾀하고 있다.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석유, 전력부문까지 총괄하는 종합에너지사로 군림한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가즈프롬은 2005년 러시아 5위 석유사인 가즈프롬 네트(당시 Sibneft)를 인수한 이래 지난해 5월 국내 2위 석유사인 루코일과 51대 49 비율로 지분을 투자한 가즈프롬 네프츠(Gazprom Neft)를 합자 설립했다.

 

가즈프롬 네프츠는 석유개발 사업권 매입과 탐사, 제품개발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돼 러시아 에너지ㆍ자원 개발에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스공사는 "석유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는 가즈프롬의 석유 생산능력이 2020년까지 160만배럴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가즈프롬은 국영전력사인 'RAO UES of Russsia'의 지분 10.5%와 모스크바 최대 지역전력사였던 모스에네르고 지분 49.9%를 소유한 가운데 2006년 전력부문 자회사 가즈프롬에네르고 등을 설립, 시장 독식을 꾀하고 있다.

 

특히 아르메니아 정부와 아르메니아 최대 발전소 5기 건설에 대한 합자회사 설립에 합의함으로써 동유럽 국가에서 가즈프롬의 입지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가스공사,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 2003년 5월 체결된 '한-러 정부간 가스분야 협력협정'에 따라 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을 양국의 위임기관으로 천연가스 도입 방안에 대해 협의를 벌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PNG든, LNG든 천연가스를 도입할 준비가 돼 있음을 러시아 측에 전하고 공급가능 시기와 물량, 공급방안 등의 구체적 공급조건에 대해 답변을 요청한 상태며, 가즈프롬도 조속한 시일내에 답변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가스공사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원만히 성사시키면 우리나라는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 개발, 오주 탐사광구 입찰로 인해 보다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가즈프롬 창사 15주년 행사에 참석한 이수호 가스공사 사장은 "오는 2017년 천연가스 자주개발률 25%라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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