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스공사-발전사 연료비 개별요금제 도입 물밑 추진
파급영향 크지만 에너지믹스 논의 등에 묻혀 공론화 제약

▲수도권 한 LNG발전소
▲수도권 한 LNG발전소

[이투뉴스] 소모적인 탈원전 공방에 발목을 잡힌 정부가 실질적인 에너지전환의 기폭제가 될 천연가스(LNG) 수급체계 혁신은 도외시한 채 천재일우의 전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장기믹스(비중) 논의도 중요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넉넉한 전력공급 여력과 국제 LNG시장 재편을 기회 삼아 고착화 된 기존 공급체계와 시장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24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3차 에너지기본계획 정부안 발표를 앞두고 204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어느 수준으로 책정할 것인가에 정부, 시민단체, 산업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정작 한전 발전자회사들과 민간발전사들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스공사 발전용 LNG 개별원료비 제도 도입에 관심이 쏠려 있다.

발단은 2025년 전·후 만료되는 가스공사와 발전사간 장기 연료계약이다.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LNG사용량이 늘어난 발전사들이 구매자 우위 국제시장에서 앞다퉈 직도입을 늘리려 하자, 대규모 물량 이탈에 따른 역할 축소를 우려한 정부와 가스공사가 발전사별 장기 단가계약이란 새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앞서 제13차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 수립을 앞두고 당국이 조사한 결과, 2017년 7개사였던 LNG직수입사는 2025년 17개사로 늘고, 2031년 직수입 비중은 최소 27%에서 최대 43%까지 불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가스공사로부터 LNG를 받아 발전하는 비중은 2018년 55%에서 2031년 14%로 쪼그라 들고, 반대로 직수입 발전기는 45%에서 85%까지 불어날 수 있다. 국가 LNG 수입·저장·유통·가격책정 부문의 큰 손 역할을 하던 가스공사의 존재의미가 크게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다. 가스공사는 대규모 물량도입의 이점을 활용해 도시가스 요금은 저렴하게, 발전용은 상대적으로 높게 공급해 왔다. 

물론 긍정적인 요인도 많다. 장기적으론 직수입 발전사간 연료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하는 전력비용(SMP)도 현행 kWh당 80원대에서 70원대로 하락, 전체 전기요금 원가가 낮아지고 석탄화력에 대한 저탄소 LNG발전기들의 상대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가스공사와 산업부다. 5~6년 시차를 두고 대규모 도입계약을 맺는 가스공사의 기존 물량 처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스공사가 발전용 LNG 공급 시 같은 가격을 매기던 기존 제도를 발전소마다 개별가격으로 적용하는 일명 개별원료비 제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연료공급 계약 만료시점에 가스공사가 발전사와 약정을 맺고 도입물량을 정한 뒤 별도 가격공식을 적용해 저마다 다른 연료가격을 지불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 진입하는 발전사는 자체 직도입을 하거나 가스공사와의 계약 중 선택할 수 있고, 기존 발전소는 20년 단위 기존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2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단 가스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발전사는 약정물량을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물량에 대한 가격 책임을 지는 단서가 달린다. 발전사들은 저마다 주판알을 튕기기 바쁜 모양새다. 발전기 효율, 가스공사 연료계약 기간, 도입시점 등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 있어서다.

큰 틀에서 발전사들은 개별연료비가 발전기간 공정한 경쟁을 해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발전기 효율과 관계없이 도입가에 따라 급전순위가 달라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고효율 발전기가 오히려 저효율 저가 연료 발전기에 밀려 전력생산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저효율 발전기 우선 가동은 온실가스 감축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가스공사에 평균 LNG가격을 내던 기존 발전사 입장에선 기존 신규 발전사만 저가계약 혜택을 누리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이처럼 기존 에너지공급체계에 큰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 변화에 대해 정부는 공론화 대신 쉬쉬하는 분위기다. 산업부는 빠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관련제도 정비를 끝낸 뒤 가스공사-발전사간 협의를 거쳐 개별원료비 계약을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3차 에기본 내 원별 전력믹스와 소모적 탈원전 공방에 밀려 현실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자 에너지전환 가교전원인 LNG발전의 수급체계 개선 논의가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1980년 석유파동 때 만들어진 에너지수급 프레임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제도개선은 곤란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 세계 LNG생산량의 30%가 현물시장에 거래되고 장기물량계약이 지속 감소하는 추세를 받아들여 각 발전사가 해외시장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하게 물량을 직수입 및 유통할 수 있도록 시장구조개편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시장은 보다 개방되어야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석유든 LNG든 가격 불문하고 도입해 그 결과를 모든 국민이 떠안는 투명성과 효율성이 담보되지 않는 의사결정체계였다"면서 "탈원전, 탈석탄처럼 네거티브한 접근도 중요하지만, 보다 저렴하고 자유롭게 LNG를 확보·도입하는 방안을 찾아 그를 통해 환경성과 경제성을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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