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에 '하자여부와 무관, 추가보상 청구불가, 비밀유지" 적시 논란
"이런기업을 어떻게 믿고 15년 돌리나, 정부도 방관" 구매자들 반발

▲LG화학 직원들이 B사 ESS 컨테이너 내부에서 특정 배터리 교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교체 이후 손실보상 합의는 배터리 하자 여부와 무관하고, 더이상 손실 보상을 요구할 수 없으며 합의내용 비밀유지를 요구하는 합의서 서명을 요구해 사업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사진제공 B사
▲LG화학 직원들이 B사 ESS 컨테이너 내부에서 특정 배터리 교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교체 이후 손실보상 합의는 배터리 하자 여부와 무관하고, 더이상 손실 보상을 요구할 수 없으며 합의내용 비밀유지를 요구하는 합의서 서명을 요구해 사업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사진제공 B사

[이투뉴스] “자기들 제품(ESS 배터리) 하자가 아닌데도 셀을 교체해주고 비가동 손실을 보상해 주니 앞으로 책임이 없고 합의내용도 비밀을 유지하라고요? 이건 뭐 ESS 구매자를 개, 돼지로 아는거죠. 이런 기업을 어떻게 믿고 15년간 ESS를 돌린답니까. 다 뜯어가라고 하고 싶네요.”

최근 LG화학이 제시한 'ESS 비가동 손실 보상 합의서'와 '비밀유지계약서'를 받아든 A발전사업자는 합의서와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뒤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화재예방과 산업 보호차원에 배터리제조사의 충전량 제한과 가동중단 권고를 한마디 불평 없이 따랐는데, LG화학이 내민 합의서는 온통 면피성 문구로 채워져 있어서다.

앞서 작년 11월 LG화학은 A사를 비롯한 자사 ESS사업자(구매자)들에 배터리 충전 상한(SOC)을 20% 한시 하향조정(95→75%) 해달라고 공문을 발송했다. 운영조건 변경에 따른 손해배상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조치에도 LG화학 ESS에서 화재가 끊이질 않았고, 결국 올해 1월 중순 전면 가동중단 조치를 내린 뒤 현재까지 운휴상태다.

A사처럼 대출을 받아 태양광연계용 ESS를 설치한 사업장들은 설비 가동여부에 관계없이 투자비를 갚아가며 정부 합동조사 결과와 후속조치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화재 원인조사는 장기화 되고 있고, 그 사이 LG화학은 전국에 설치된 특정 자사 배터리를 신품으로 교체한 뒤 이런내용의 보상합의를 시도해 뒷말을 낳고 있다.

9일 <이투뉴스>가 입수한 LG화학의 '비가동 손실 보상 합의서'에 따르면, 해당문건에서 LG화학은 "양 당사자 합의는 LG화학 배터리 제품 하자 여부와 무관하고", "구매자는 손실금액을 지급받은 뒤 어떤 이유에 의하더라도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없으며", "합의내용 및 합의체결 사실을 공개 또는 누출하지 아니한다"고 계약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SOC 제한과 전면 가동중지로 인한 사업자 피해를 따져 손해배상은 하더라도, 그 이유가 자사 배터리 결함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LG화학은 특히 계약 특약사항에 "구매자는 본 합의가 LG화학이 제조, 판매한 제품의 결함 혹은 하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라는 내용을 추가, 항간의 'ESS 하자설'에서 재차 비켜섰다.    

물론 이는 최근까지 이어진 LG화학의 대대적 배터리 교체작업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배터리 결함과 무관한데 멀쩡한 ESS배터리 수백억원어치를 바꾸고, 굳이 보상내용까지 비밀로 부쳐야 할 이유가 없어서다. 이런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은 일선 사업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LG화학이 책임회피에 급급하다"고 맹성토하고 있다.

충실한 피해보상을 위한 합의서라기보다 향후 전개될 수 있는 양측간 시비나 분쟁에 대비해 배터리 제조사 측의 책임을 최소화하거나 회피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미 다수 ESS사업자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LG화학 측에 내용증명으로 발송했고, 일부 기업은 법리검토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구매자인 사용자 측 반발기류가 이처럼 심상치 않게 흐르자 중간판매책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ESS사업 추진 시 또다른 핵심기기인 전력변환장치(PCS) 업체가 배터리와 PCS를 함께 공급하면, 이 PCS 기업이 중간판매책이 된다. 하지만 배터리 기업이 대기업인 것과 달리 PCS는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 영역이다.

A 발전사업자는 "구매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니 대응이라고 모색한 것이 중간판매책이 구매자로서 합의서 내용과 같은 책무를 다하라는 것"이라며 "사업자 입장에선 힘도 없는 PCS업체가 어려워져 도산하면 누구한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냐. 한마디로 자기들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업자는 "(합의서가)법무팀 농간인지, CEO속내인지 알 수 없지만 소비자를 대놓고 우롱하는 것이다. 배터리를 교체해서 앞으론 화재가 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줘도 부족할 판에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면서 "이런 행동을 보고 어떻게 믿고 장기간 LG제품을 쓰겠냐. 가능하다면 철거하고 경쟁사나 외산을 쓰고 싶다"고 직격했다.

LG화학이 합의서와 함께 사업자 측에 서명을 요구한 '비밀유지계약서' 내용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계약서 제6조 항목에는 "법원 또는 정부기관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밀정보'의 비공개 필요성에 대해 납득하도록 충분히 노력해야 하며, 제공할 경우라도 최소한도 내에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약서는 비밀정보를 도면, 설계 디자인, 실험, 시제품 스펙, 데이터 프로그램, 각종 기록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얼핏 기업 내부정보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볼 수도 있지만,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시 이들 정보가 필수로 요구된 점으로 감안하면 정부차원의 원인규명 조사나 향후 화재 보상 책임분쟁에 대비한 포석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LG화학은 이번 화재조사 결과에 따른 보상에 대비해 최대 1000억원을 충당금으로 설정한 상태다. 

ESS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에 배터리를 판다는 대기업이라면 생산자책임 차원에서라도 문제 원인이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조치했으며, 보상은 어떻게 하겠다는 걸 분명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LG화학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며 "이런 행위를 산업부가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조속한 조치가 없다면 정부 조차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LG화학이 제시한 손실 보상 합의서와 비밀유지계약서 사본
▲LG화학이 제시한 손실 보상 합의서와 비밀유지계약서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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