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이투뉴스 발행인

[이투뉴스 사설] 잇따른 전기저장장치(ESS) 화재로 중소 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제조업체인 LG화학이 불이 난 배터리를 교환해주는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조건을 요구해 말썽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LG화학은 자사 제품을 설치했다가 불이 난 ESS 배터리를 교체해 주면서 ‘ESS 비가동 손실 보상 합의서’와 ‘비밀유지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 보상 합의서에서 LG화학은 “양 당사자 합의는 LG화학 배터리 제품 하자와 무관하고”, “구매자는 손실금액을 지급받은 뒤 어떤 이유에 의하더라도 추가보상을 청구할 수 없으며”, “합의내용 및 합의체결 사실을 공개 또는 누출하지 아니 한다”고 계약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 조건은 한마디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LG화학의 배터리 제품 하자와 관계가 없다면 무슨 이유로 LG화학은 수천억원을 들여 불이 난 자사제품을 교환해주고 있는가. 또한 손실금액을 지급받은 뒤 어떤 이유에 의하더라도 추가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일방적인 조건을 강요하는 대기업의 횡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특약사항에서 “구매자는 본 합의가 LG화학이 제조, 판매한 제품의 결함 혹은 하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ESS 배터리의 화재 책임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역력하다.

물론 잇따른 화재 원인이 배터리 불량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나름대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재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광사업자 등 ESS 설치를 통해 추가적인 부가이익을 얻기 위해 융자 등을 통해 많은 자금을 투입한 사실을 생각하면 배터리 공급업자로서 이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빠져나가는 데만 골몰하는 것은 대기업다운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ESS 배터리 사업은 LG화학을 비롯한 몇몇 대기업의 과점체제로 산업통상자원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적잖은 혜택을 입었다. 정부 지원을 받을 때는 뭐든지 할 듯하다가 막상 사고가 터지자 나 몰라라 하고 애꿎은 구매자만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ESS 사업을 지원하면서 전기요금을 깎아주고 신재생에너지 공급가중치도 올려주는 등 무리한 행보를 계속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편파적 지원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았다. 이처럼 음양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천억원 어치의 배터리를 국내에 보급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은 응당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LG화학은 그동안 모범적인 대기업으로 튼실한 성장을 해왔다. 비록 ESS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쌓아온 기업의 신뢰와 명성을 하루아침에 스스로 짓밟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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