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등 현실적 제약 감안해 조율, 원별 에너지믹스 조차 미공개
2040년 에너지목표수요 2017년 수준으로 감축…도전적 수요관리 제시

[이투뉴스] “상당히 요란하게 움직인 것 치고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여요. 사실상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설정한 에너지전환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조금 보완한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가급적 말썽 없이 에너지전환정책을 단계적으로 끌고 나가겠다는 공무원들의 현실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죠”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공개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 정부안’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전체적으로 에너지전환이라는 정책방향은 유지하면서도 지나치게 과도한 변화는 피했다는 얘기다. 즉 원전-석탄 중심에서 가스와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되, 한 번에 움직이지 않고 단계적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찾은 것 일지도 모른다.

가장 쟁점이 됐던 재생에너지 비중이 딱 그렇다. 산업부는 이번에 내놓은 정부안을 통해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30∼35%로 설정했다. 처음 나온 권고안에선 25∼40%로 넓혔다가 전문가TF가 권고한 중간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 마디로 최소 30%라는 현실적인 도달 가능한 수준을 앞세우면서도, 35%라는 도전적인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결국 3차 에기본 정부안은 에너지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환경·시민단체와 재생에너지업계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강력하게 반대하는 친원전·보수세력 눈치도 살폈다. 석탄발전 감축도 ‘과감하게’라며 선언만 했을 뿐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까지 내놓지 못했다. “에너지전환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에너지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라는 초기 잘못 설정했던 의제에서 여전히 못 벗어난 모양새다.

◆ 깐깐한 수요전망과 오리무중 에너지믹스
정부는 오는 2040년까지 최종에너지 수요전망을 2017년 1억7600만TOE에서 2040년 2억1100만TOE로 19.9%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전력의 경우 4370만TOE에서 6180만TOE로 41.4%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등 전기화 추세를 반영했다. 도시가스와 신재생에너지 증가세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이한 점은 석유만 6140만TOE에서 5710만TOE로 감소할 뿐, 석탄(332만→3900만TOE)마저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과거 정부가 예측한 에너지수요가 과대전망이었다는 지적을 수용, 전망치를 깐깐하게 수정한 것이란 평가다.

최종에너지 소비를 전망치(BAU) 대비 18.6% 감축해 2017년 수요인 1억7600만TOE로 유지하겠다는 과감한 수요관리 계획도 세웠다. 최종소비 에너지원단위를 38% 개선하겠다는 이전보다 높은 목표치다. 에너지 소비구조 혁신을 통해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세운만큼 도전적인 목표를 통해 이를 달성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에너지수요 증가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이 정도로 수요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측이 어긋날 경우 당장 에너지수급안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데도 시나리오 형태가 아닌 단일기준으로 간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목표수요에 대해서도 도전적인 목표는 좋지만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이 있는지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너지믹스는 원전-석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대신 가스와 재생에너지를 늘린다는 8차 전력수급계획의 정책방향을 그대로 유지, 강화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중만 우여곡절 끝에 30∼35%로 설정했을 뿐 나머지 에너지원에 대해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늘리겠다고 명시한 천연가스조차 발전용 에너지원 역할 확대와 수요처 다변화만 언급했다.

아울러 석탄에 대해선 발전용 에너지원으로서 역할을 과감하게 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세부계획은 신규석탄 금지 및 노후석탄화력 폐지, 환경비용 반영 및 상한제약 확대라는 이미 발표했던 내용만 되풀이 했다. 원전 역시 노후원전 수명연장 및 신규원전 건설 금지라는 내용만 앵무새처럼 외칠 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석유는 수송용 에너지로서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석유화학 연료 활용을 확대한다는 윤곽만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원별 믹스에 대해 모호한 형태로 넘어간 것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굳이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보호심리가 작용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1∼2차 계획에서는 에너지원별 믹스를 명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최상위 에너지계획으로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다만 향후 정부가 에너지비전 등 큰 정책방향만 에너지기본계획에 담고, 구체적인 원별 믹스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원별계획을 통해 조정해 나가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엿보인다.

◆ 가격·세제 정책목표는 2차 계획 복사판
에너지가격체계 합리화도 어김없이 담겼다. 전기요금의 경우 원가 및 외부비용을 적기에 반영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얘기다. 가스요금은 연료전지용 요금 신설 등 용도별 요금체계 합리화를 지속 추진하는 한편 발전사간 공정 경쟁을 위한 발전용 개별요금제 도입을 하겠다는 방침. 에너지가격 문제만 나오면 맨날 등장하는 논지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간 게 없다.

에너지 소비구조 혁신 관련해서는 국가열지도를 구축(2021년)해 열이용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지역별 미활용 폐열을 연계하는 열중개 서비스 사업자를 육성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밖에 가스냉방 중·장기 보급 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지역난방 제습냉방기 및 흡수식 냉동기 효율 제고 등 지역냉방 기술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이전에 다 나왔던 정책들을 되풀이 한 수준이다.

남한-북한-러시아와 한국-중국-일본 등을 잇는 동북아 수퍼그리드(전력·가스)에 대한 공동연구 및 조사를 추진하고, 경직된 계약조건 개선 및 수급 비상시 공동대응 등 동북아 천연가스 협력체계도 구축한다. 아울러 에너지 안전관리를 강화해 지하매설시설에 대해 전주기 안전관리(열수송관, 가스배관, 송유관, 전력구 등)를 펼치며, 장기사용시설의 경우 적기 교체를 유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2017년 기준 12%에 불과한 분산전원 비중을 오는 2040년까지 30% 내외로 늘리는 등 분산형 전원 공급체계로의 전환도 꾀한다. 2차 에기본의 정책과제였던 ‘분산형 발전시스템 구축’과 90% 이상 닮은꼴이다. 이를 위해 발전용 연료전지와 열병합발전소를 확대하고, 구역전기사업을 내실화하는 등 수요지 인근 전원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밖에 전력 프로슈머 양성, 태양광 및 ESS, V2G 등 소규모 분산전원을 모아 가상발전소로 참여하는 전력중개시장 도입 등 늘상 거론하는 대책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분산전원 확대에 대응한 계통체계를 정비해 재생에너지 접속용량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직류 전원의 계통 수용성(MVDC 마이크로그리드 전력망 구축)을 제고해 나간다. 또 ‘주간·하루전+당일·실시간’ 입찰 등 통합운영발전계획시스템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통합관제시스템도 구축한다.

참여·분권형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선 주민참여 및 이익공유형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재생에너지 계획입지제도 도입 등 지역·지자체 역할과 책임을 강화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산업의 경우 탄소인증제 도입, REC 경쟁입찰 전환 등을 통해 품질기반의 경쟁구도로 전환한다는 ‘재생에너지 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이 그대로 담겼다. 수소 역시 수소경제로드맵 등을 통해 나온 2040년까지 수소차 290만대 보급 및 연료전지 10.1GW 보급을 목표로 내걸었다.

◆ 달라진 점과 향후 남은 과제는?
3차 에기본은 전원믹스 중 재생에너지를 30%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만 변화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립한 뼈대를 그대로 유지했다. 여기에 에너지전환 및 재생에너지 반대파를 의식, 나머지 에너지원 비중에 대해선 행간 속에 숨겨버렸다. 결국 에너지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많은 정보를 줘 말썽이 일어날 소지를 최소화 한 셈이다.

다만 에너지수요전망을 보수적으로 한 것은 물론 2040년 최종에너지 소비를 2017년 실적과 동일한 1억7600만TOE 수준으로 잡겠다는 의욕적인 정책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최종소비 에너지원단위를 38% 개선하겠다는 수치까지 제시하는 등 에너지소비구조를 혁신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것은 이전과 다른 점이란 평가다. 분산전원 목표치(2040년 30%)도 소폭이나마 늘려, 분산전원 확대기조를 유지한 것도 눈에 띤다.

▲최연혜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3차 에기본 정부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연혜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3차 에기본 정부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3차 에기본이 순탄한 길을 걷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자유한국당이 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를 원천무효라고 정의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3차 에기본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에너지법, 전기사업법, 원자력진흥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시작 자체가 에너지전환 로드맵이라는 불법적이고 근거도 없는 정부 계획에서 출발한 ‘위법 계획’이라는 것이다.

3차 에기본은 오로지 탈원전과 신재생 확대에만 올인한 ‘엉터리 계획’이라는 비판도 내놨다. 기저발전원인 원자력과 석탄을 쏙 빼고 신재생에너지 계획만 제시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엄청난 환경 파괴를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다. 야당들은 여기에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해선 결국 전기요금 등 국민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여기에 신울진 3∼4호기 등 건설이 취소된 지역을 중심으로 원전재개에 대한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국민청원도 44만명을 넘어섰다. 범국민서명운동본부는 망국적인 탈원전 에너지기본계획을 막기 위해 결사항전의 자세로 임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반대로 시민·환경단체와 재생에너지 업계는 정부가 에너지전환에 대해 보다 확실한 목표를 제시, 국민을 설득해 나가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역으로 비판하고 있다. 특히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석탄 전략에 대해 명확한 정책목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반론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해관계자의 비판에 정부가 너무 일희일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 최상위 계획의 에너지믹스를 범위로 설정, 재생에너지만 목표비중이 나왔을 뿐 나머지 에너지원은 오리무중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잘못된 정책결정이라는 얘기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에기본을 구체적인 목표수치를 내놓는 계획이 아닌 장기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는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는다. 20년 이상의 장기계획임에도 불구, 너무 수치에만 연연하는 만큼 외부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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