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저격수'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공공對 민간, 이런 구도로 싸우는 나라 있나" 정쟁화 정부 책임

▲박종운 동국대 교수
▲박종운 동국대 교수

[이투뉴스] ‘탈핵’이란 구호로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놓고 2년째 내전 수준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싸움의 첫 총성이 울린 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 고리원전에서다. 이날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탈핵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원전 중심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천명했다. 적진(敵陣) 한복판에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소위 원자력계와 그들의 공동운명체는 똘똘 뭉쳤다. 야당은 사사건건 에너지전환 정책의 발목을 잡았고, 일부 언론은 아예 최전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쉴 새 없이 화력을 쏟아 부었다. 그렇잖아도 전의가 없던 정부는 만신창이가 됐고, 가짜뉴스가 범람해 진짜뉴스를 뒤덮었다.

지난달 12일 경주 동국대에서 만난 박종운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사진·56>는 "이런 상황이 몹시 짜증난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하고,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직접 원자로 개발에 참여한 원전전문가다. 소셜미디어나 언론을 통해 연일 원자력계에 ‘팩폭(팩트폭격)'을 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에너지정책이 정쟁화 된 건 정부 책임”이라고 했고, 언론 뒤에서 공세를 펴는 찬핵 인사들을 향해선 “국가나 원자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앞가림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또 현 정부서 공공기관 임원이 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향해서는 “앞으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겠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원자력 저격수를 자처하고 나선 그를 만나 교착상태에 빠진 탈원전·에너지정책의 해법을 들어봤다.


-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짜증이 많이 난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에너지전환 쪽과 원자력계 양쪽이 대치상태다. 그런데 원전업계나 학계는 공공성이 강한 집단 사람들이다. 한수원이나 원자력학계라는 서울대·카이스트 역시 그렇다. 다른 쪽은 민간이다. 이상하지 않나. 이런 구도로 싸우는 나라는 없다.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떠나 이렇게 만든 건 정부 책임이다. 에너지산업은 지난 수십년간 정부가 주도해 왔다. 모든 인프라가 거기(공공) 소유다. 그래놓고 공론화를 한다면서 공공과 민간을 싸움 붙였다. 신고리 5,6호기 때는 어땠나. 찬성 측 사람으로 한수원, 원자력연구원, 서울대 교수 등이 나왔다. 왜 이런 싸움을 붙였나. 짓든 안짓든 그렇게 몰아간 과정이 이상하다. 어느 나라가 정부(공공)와 국민을 싸움 붙이나. 민간과 민간이 결정하게 했어야 한다.”


- 공론화 구성이 잘못됐다는 건가, 공론화 자체가 문제라는 얘긴가

“찬성이든 반대든 민간영역에서 했어야 했다. 민간 국민대표끼리 했어야지 왜 당사자를 불렀나. 공공영역에 속한 이들이 양쪽에 너무 많이 들어왔다. 심지어 원전이 죽고 재생에너지가 살아야 돈을 버는 이들도 왔다. 결론을 떠나 잘못된 공론화였다. 사용후핵연료도 곧 공론화 한다는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왜 공론화란 명분으로 국민들에게 이분법적 싸움을 붙이나.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깔끔한 투표가 낫다. 국민이 잘 알든, 모르든, 언론보도를 믿든 말든. 정부가 판단 못하겠다는 것이라면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하는데 자꾸 조정만 하려한다. 이런 방식은 에너지정책을 정하는데 있어 상당히 잘못된 방법이다. 물론 꼭 투표를 해야한다는 건 아니다. 미국은 원전이든 뭐든 시장이 알아서 한다. 국가는 핵폐기물만 책임진다. 원전 건설이나 운영은 민간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탈원전 선언을 안했을 뿐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탈원전이고, 뉴욕이나 시카고처럼 인구가 많은 곳은 보조금을 주고 좀 더 돌리려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처럼 좁은 나라에서 정부가 계획경제로 에너지 정책을 펴다가 어느날 갑자기 너희끼리 정해보라며 공공과 일반인을 싸움붙인 격이다. 누가 이기겠나.”


- 실제 공론화 이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원자력계가 몇몇 언론사를 동원해 ‘탈원전 폐지하라’ 어쩌라 거의 2년간 계속 언론플레이다. 이제 그만 좀 해라. 뻔한 이들이 돌아가면서 발언하던데, 맨날 같은 얘기다. (원자력)산업이 죽는다. 재생에너지가 오락가락이다, 원자력이 안정적이다. 원자력이 싸다. 온실가스 안 나온다 등등. 너댓명이 차례로 얘기하고, 같은 신문들이 폭탄 투여하듯 써대고 있다. 같은 원자력계로서 난 거의 경멸한다. 불쌍하다고 본다. 그들이 원자력계를 위해 그런다고 생각하나? 자기들 앞가림에 안좋다는거다. 연구비 따기도 어려워지고 학생들이 오지 않을 거 같으니까. 단순히 그거다. 그들이 한수원이나 국가를 위해서 그런다고 보지 않는다.”
 

"공론화란 명분으로 국민들에게 이분법적 싸움 붙여. 에너지정책 잘못된 방법
같은 원자력계로 측은, 한수원이나 국가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보지 않아"

 

- 시민사회 진영은 잘하고 있나

“반핵 진영 사람 여럿이 원자력 관련기관이나 한수원 임원으로 들어갔다. 왜 그렇게 했나. 그 자리에 가서 앉아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 환경운동 하던 분들이 그곳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조직을 개혁할 텐가. 정권이 바뀌면 나오지 않겠나. 가고나니 오히려 그동안 했던 주장들을 더 이상 하지 않더라.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진다. (제안을) 거부했어야 한다.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자리를 위해 활동했나,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앞으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겠나. 그런 게 현 정부 정책을 퇴색시키는 인사다.”


- 소위 원자력계가 미덥지 않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이상한 건 원자력안전 전공자들이 다 쫓겨났다는 거다. 원안위원장(강정민 전 위원장)도 그렇고. 그런데 그 자리를 모두 원자력 비전문가들이 채웠다. 한두명이면 몰라도 대부분이 그러면 안되잖나. 정작 원자력전공자는 배제시켜 놓고. 그렇게 해서 지금 원안위가 하는 일이 뭔가. 오히려 신고리 4호기 인허가는 더 잘 내주더라. 비전문 위원들이 뭘 갖고 안전성을 판단하겠나. 나조차도 맨날 연구보고서를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어려운데 생판 모르는 이들이 운영허가 하고 있다. 게다가 책임자(위원장)는 공무원 출신이다. 그렇게 해서 안전강화대책이랍시고 발표한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원전에 40년 운영허가를 줘놓고 10년마다 새 기준을 적용해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하겠단다. 진영을 떠나 몰상식한 접근이다. 안전대책이라고 그렇게 해놓으면 원자력계만 더 좋다. 안전성 높이라고 연구비가 떨어지니.”

▲박종운 교수가 경주 동국대 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운 교수가 경주 동국대 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말대로라면 규제 정상화를 약속한 정부가 단추를 한참 잘못 꿰고 있다는 건데

“원자력이든 안전규제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신한울 3,4호기까지는 (막아서)해놨고, 탈원전은 계속간다고 했으니 산업부가 알아서 해라, 청와대도 손 떼고 정당도 손 떼고 산업부만 대통령 뜻을 구현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에너지란 게 단숨에 되나. 전기요금은 올리지 않으면서 하려니 골치가 아픈거다. 이 와중에 3차 에너지기본계획 위원으로 참여해보니 재생에너지 쪽도 다르지 않더라. 인구 500만명의 덴마크가 풍력이 되니 5000만명인 우리도 된다더라. 그런 논리로 얘길 하니 할 말이 없다. 우린 온갖 공장을 돌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원전을 하든 말든, 덴마크처럼 재생에너지를 할 순 없다. 수력으로 70%를 충당하는 노르웨이 예를 들어 100% 리뉴어블을 말하면 곤란하다. 원자력 쪽에서 거짓말 하는 사람들과 다를 게 뭐가 있나.”


- 원자력 발전의 퇴조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가

“원전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대거 건설됐다. 미래에너지를 해결할 기술이어서 확 늘린 게 아니라 산유국인 중동의 야합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에너지문제 해결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오일쇼크에 대응해 대거 건설된거다. 그때 그 기술이 지금까지 바뀌거나 발전한게 거의 없다. 물속에 있던 양서류가 물 위로 올라오듯, 원래 있던 핵잠수함 기술이 땅위로 올라와 원자력발전이 된 거다. 잠수함 기술이 경수로인데, 크기만 바뀌고 부대시설만 추가된 거다. 그렇게 미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일본, 독일 등이 지금 운영되는 원전 대부분을 그때 지었다. 이후로 건설한 건 얼마 안 된다. 우리나라는 10년 늦게 그걸 따라갔다. 전체 400여기 중 300여기가 그때 건설됐다. 이들 나라를 빼고 나면 사실 새로 건설된 원자로는 거의 없다. 원전은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더 늘어날 여지도 없는 상황이다.”


- 원자력계는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큰 방향은 모두 탈원전이다. 독일은 경제성을 떠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험하다고 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고, 스위스는 신규 건설은 하지 않되 있는 것을 쓸 만큼 쓰겠다고 했다. 그것도 결국 탈원전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54기를 모두 세웠다가 현재 9기만 돌리고 있다. 막대한 안전성 강화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못 돌리는 거다. 재가동 의사가 있는 회사의 원전이 모두 26기라니 다 돌린다 해도 후쿠시마 이전의 절반밖에 안 된다. 10년만에 큰 탈원전을 한 셈이다. 그런데 26기는커녕 지금 9기만 돌고 있고, 모두 소송이 붙어 나머지가 가동될 가능성도 낮다. 그런데 원자력계는 그걸 놓고 일본이 원전을 재가동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학계 출신이 그렇게 주장하고, 언론사는 거기에 부화뇌동하나.”


- 우리도 겉모습은 탈원전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난 탈원전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그런 얘길 하는건 아니다. 나라마다 모두 상황이 다른데 그런 절대 법칙이 어딛겠나. 다만 어느 나라도 탈원전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탈원전을 향해 가고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통령이 먼저 탈원전을 얘기했고, 그것도 60년 동안 서서히 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탈원전인가. 그냥 놔두면 40년이면 사라질 것을 더 수명을 늘려준 꼴이다. 일본처럼 원자력규제와 안전법을 바꾸면 될 일이었다. 아베 정부는 20%까지 원전을 돌린다고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 규제가 강화돼 민간이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그런데 우린 원자력 강화대책이랍시고 사고 나면 무한배상 한다는 것 한줄 넣은 게 전부다. 이런 방식은 전 세계서 유일무이하다. 당장 원전을 다 죽일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제는 5기를 더 건설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말고 핵폐기물 문제부터 다뤘어야 했다. 10년이나 지나 시작되는 미래의 탈원전을 미리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국민들은 핵폐기물 문제가 부각되면 원전건설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약이라고 바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집권 1~2년 뒤 충분히 논의한 뒤 뭐가 최선인지 얘기했어야 했다. 너무 극단으로 가다보니 양쪽 모두가 불만인 정책이 되고 말았다.”
 

- 원자력계는 우리가 새로 짓지 않으면서 어떻게 원전을 수출하냐고 말한다.

“미국은 40년간 130여기를 100여기 이하로 줄이는 실질적 탈원전을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우리나라에 몇 기를 수출했나. 자기들은 짓지 않으면서 우리한테 수출하지 않았나. 우리가 짓지 않으면 수출을 못한다고? 그럼 미국은 어떻게 수출했나. 고리 1~4호기, 영광 1,2호기 등 6기나 수출했다. 중국에 AP1000을 10기나 수출해 지금도 계속 준공 중이다. 우리나라가 UAE 바라카에 수출한 것보다 먼저 준공해 운전하고 있다. 우린 원전 수출했다고 얼마나 자랑했나. 그런데 먼저 가동되는 건 중국에 수출한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자로다. 어떻게 된 건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앞서 말했듯 최고랄 것도 없는 것이 현존 원자력기술은 모두 70년대 기술이다. 고리 1호기 건설 당시의 원자로 계통이나 설계가 용량만 커졌을 뿐이다. 원전에서의 안전성보강은 어떻게 보면 우스울 정도로 쉽다. 냉각을 위한 물과 펌프가동을 위한 전기만 여유 있게 준비하면 된다.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용량이 커질수록 더 위험해질 수 있으니 그걸 보강하면서 출력을 계속 올려온 거다. 70년대 이래로 엄청나게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이 원전에 새로 들어간 게 아니다. 안전성 분석기술만 좋아졌다. 미국은 90년대 들어 연구도 해보고 사고분석도 해보면서 불필요한데 돈을 많이 썼다고 보고, 그런 기술을 이용해 원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 이용률을 높였다. 지금은 90%대로 세계 최고다. 그런데도 가스발전에 밀려 죽을 쑤고 있다.”
 

"우리나라만 대통령이 먼저 탈원전을 얘기, 그것도 60년 동안 서서히 
그게 무슨 탈원전인가. 그냥 놔두면 40년이면 사라질 것을 수명 늘려준 꼴"

 

- 일부 언론은 탈원전으로 원전 이용률이 낮아져 한전과 한수원이 적자를 봤다고 주장한다.

“최근 모 신문이 한전 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고 하기에 과거엔 어떤 입장이었는지 찾아봤더니 2013년 보도기사가 있더라. 모 대학교수 말을 인용해 원전을 무리하게 돌려 위험하다고 썼더라. 낡은 발전기를 짜내듯 해서 이용률을 높이다가 터질 게 터졌다, 안전이 최우선이고 이용률 높은 게 자랑이 아니라고 썼더라. 언론이 어떻게 시류에 맞게 떠들다가 입맛에 맞는 사람 얘기만 옮겨서 적나. 이러니 ‘기레기’라는 소릴 듣는 거다. 그런데도 정부는 해명자료 내기에 급급하다. 자신감이 있다면 왜 선제적으로 국민에게 알리지 못하고 매번 뒷북인가. 원전 가동률이 떨어진 이유가 격납건물에 구멍이 난 것 때문이라고 왜 미리 알리지 않았나. 민간이 영광원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뒤늦게 원안위가 나선 것 아닌가.”
 

-  원자력 안전규제를 바로잡으려는 정부의지는 확고하다고 보나

“과거와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사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 정부가 반대했던 고속증식로와 파이로 프로세싱 연구하던 이를 책임자를 앉혔다. 대체 (인사가)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 실력이나 전문성 관계없이 시끄럽지 않을 사람이면 되는 건가. 이런 말을 하면 내게 자리를 주지 않아 저렇게 비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다. 상관없다. (박 교수는 현 정부서 원자력안전위원장, 원자력안전기술원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른바 있다.) 원안위도 독립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친원전 공무원들이 점령해 있다. 원안위원 몇 명 바꾼다고 개혁되지 않는다. 그나마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전문성이 있지만 힘이 없고 무기력하다. 원안위 아래서 독립시켜야 한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 원자력계 내부자로 적당히 눈감고 지낼 생각은 안해봤나. 다들 그렇게 사는데.

“교수로 와서 10년간은 나도 그랬다. 대부분은 연구과제나 따먹고 조용히 살지 않나. 그런데 참을 수가 없더라. 아무도 여기서 안 나서면, 이들이 스스로 개혁을 하겠나. 절대 안한다. 내 자리에서 이런 일을 해야 충격이 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상당부분 영향을 줬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손해 본 것도 없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갈 때가 어디 있고, 내가 잃을 게 무엇이 있겠나.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팩트를 얘기하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데. 물론 저 사람 탈핵이다, 탈원전이다 이렇게 뒤에서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선배든, 후배든 대놓고 내게 뭐라는 이는 아직 한명도 없다. 그들이 내게 뭐랄 수 있을까?”
 

- 원자력정책이 제자리를 못 잡으면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위정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

“여기서 더 이상 진전되면 정부도 국민도 피해자가 된다. 그런데 정부는 자꾸 위원회를 만들어 면피만 하려 한다. 우린 위원회가 너무 많다. 정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옳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정책이 옳다는 걸 위원회를 통해 정당화하기 일쑤다. 정부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과 기능이 얼마나 있는지 걱정이다. 전문성이 없다고 수시로 외부 위원회를 열지만, 내가볼 땐 전문가들이 오히려 더 편파적이다. 사욕(私慾)이 더 많다. 그렇다고 진짜 중립적인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중립적이라고 위촉해 엉뚱한 결정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신고리 5,6호기가 그런 경우다. 원안위를 예로 들면, 원자력은 기술로 결정할 사안이지 위원들이 손들어 결정할 일이 아니다. 무슨 사회적 기관이 아니잖나. 끝까지 동의할 때가지 가는 거다. 그런데 그걸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월성 1호기건만 해도 그렇다. 새로 부임한 (한수원)사장은 경제성이 없다고 폐로한다고 했는데, 수명연장할 때는 경제성이 있다고 했다. 본질은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다. 안정상 더 가동할 수 없다고 했어야 한다.”

 

- 곧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재공론화도 시작된다.

“미국 역시 발전소마다 난리가 났다. 사용후핵연료가 발전소에 그대로 쌓여있다. 운전을 포기한 발전사들은 미국 연방정부를 향해 방안을 만든다고 하더니 어찌됐냐고 따진다. 원전이 문을 닫아도 사용후핵연료는 사라지지 않는다. 40년째 미국도 대책 없이 오락가락이다. 미국은 왜 공론화를 하지 않을까? 해결책이 없어서 그렇다. 어느주(州)도 영구처분장을 받지 않으려 한다. 네바다주처럼 사막도 받지 않으면 과연 어디로 보내야 할까. 그런데 우리가 공론화를 한다고 하니 걱정이다. 솔루션이 없는 상태서 모여 봐야 싸움만 날거다. 그래서 내가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로 가져가라고 하는 거다. (그는 SNS에 '국민 뜻대로 원전을 짓되 수도권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함께 건설하자'는 글을 올렸다) 에너지문제는 자꾸 삐걱대면 아무것도 못한다. 우린 원자력에 대한 화장실은커녕 오수 처리할 곳도 없는 나라다. 폐기물 때문에라도 감속해야 할 판에 원전만 계속 더 짓겠다는 건가.”

 

- 한국은 공기업 중심 전력산업 구조 탓에 변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에너지를 시장경제에서 상당부분 맡았어야 했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해왔기 때문에 혼돈을 겪는 거다. 미국, 영국, 일본 모두 민간이 잘하고 있다. 삼성이 TV를 팔까말까 공론화하지 않듯,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망하는 거다. 원전을 짓는데 소송을 걸거나 반대하면 접어야 한다. 그런데 대책 없이 자기들끼리 지어놓고 이제와 국민에게 싸움을 붙여서 따르겠다고 한다. 애초 시장논리로 가는 게 맞았다. 정부는 가격, 안전, 제도 등의 규제만 잡고 있으면 된다. 일 잘하는 정부는 국민에게 부담을 안준다. 전기료를 올리지 않아서 부담 안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신뢰성 있게 프로세서를 밟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옛 정부도 그런 일을 안했지만 현 정부도 큰 차이가 없다.”


- 최근 원자력안전연구회를 창립했다. 정부나 원자력계를 향해 계속 쓴소리를 할 생각인가.

“지금까지가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었다면 앞으론 해결책까지 같이 제시하는 일을 하려한다. 원자력안전에 대해 우리만의 솔루션을 내고 논리와 방향도 건네려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해설해주고 판단을 위한 정보도 제공하려 한다.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거짓정보가 너무 횡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우리 원자력기술이 세계 최고란 것이다. 원자력 종사자를 다 합쳐봐야 3만여명이고 매출은 발전매출 포함해 20조원 남짓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직원은 10만명이고 매출은 250조원에 달한다. 그래서 원자력은 자기들끼리 뭉쳐야 사는 조직이다. 그 속에서 난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하지만 지식인은 입을 열어야 한다.”

<경주=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박종운. He is … ]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7년 원자력계 핵심 학맥이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카이스트에서 원자력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원전사업 참여를 위해 설립한 고등기술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 신분으로 3년간 복무했다. 1996년 한전 전력연구원으로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 2001년 발전사 분할 후 한수원 발전기술원(현 중앙연구원)으로 적을 옮겼고, 2009년 발전기술원 부장으로 퇴직해 동국대 교수로 임용됐다. 한전 재직 때 APR1400(1400MW 원자로) 개발을 담당했고, 한수원에선 국내 원전 중대사고관리지침 개발과 원전 주기적안전성평가 및 계속운전 안전평가를 맡았다. 월성1호기 스트레스테스트 민간검증위원을 거쳐 산업부 전력정책심의위원, 에너지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 월성 원자력안전협의회 위원 등으로 활동중이다. 원자력안전 전문가들과 원자력안전연구회를 결성해 대표위원을 맡고 있다. 슬하에 대학생 아들, 딸이 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